턴 투워드 부산

2025-11-02

이재명 대통령 등 우리나라 대통령이 미국에 갈 때 빠지지 않고 방문하는 곳이 있다. 미국 버지니아주에 있는 알링턴 국립묘지다. 이곳은 워싱턴 DC 중심가에서 지하철로 20분쯤 걸린다. 1864년 세워진 이곳에는 미 남북전쟁, 제1·2차 세계대전, 한국전쟁, 베트남전쟁 등에 참전해 목숨을 잃은 40만 영령들이 잠들어 있다.

알링턴 국립묘지는 한 해 300만~400만 명이 찾을 정도로 전 세계에서도 가장 방문객이 많은 묘지 중 하나다. 추모공간이기도 하면서 동시에 문화공간으로 손색이 없을 정도로 잘 꾸며져 있어서다. 특히 이곳에 묻힌 영령들은 신분의 구분이 없는 것으로도 유명하다. 장군과 병사 등이 차별받지 않고 죽어서는 똑같은 한 평 반 넓이에 사망 순서대로 묻힌다. 같은 날 숨지면 알파벳 순서를 따른다. 미국 전역의 국립묘지가 이런 평등 정신이 담겨 있다고 한다.

미국뿐 아니라 프랑스 국립묘지인 파리의 판테온도 이런 평등 정신이 구현된 곳이다. 이곳은 다른 국립묘지와는 달리 공직자 외에도 학자·문인·예술가 등 살아생전에 인류와 프랑스를 위해 헌신한 사람들을 모셔 놓았는데 입구에 ‘조국이 위대한 사람들에게 사의를 표하다’는 문구가 새겨져 있다. 이곳 역시 모든 묘의 형태가 동일하다.

우리나라에는 부산시 남구 유엔기념공원이 죽음의 평등성이 잘 구현된 묘지로 손꼽힌다. 1951년 1월 한국전쟁 중에 유엔군사령부가 이 일대에 묘지 조성을 시작했고, 이후 1955년 12월 유엔총회에서 이곳이 전 세계에서 처음으로 유엔군 묘지로 지정됐다. 현재 유엔군 전몰 용사 2300여 명이 모셔져 있는데, 묘역은 나라별로 구분돼 있지만, 개별 묘소의 면적과 묘석의 크기, 명패 등은 모두 동일하다.

이곳에서는 해마다 특별한 행사가 열린다. 2007년 캐나다 참전용사인 빈센트 커트니의 제안으로 시작된 ‘턴 투워드 부산(Turn Toward Busan)’이다. 해마다 11월 11일 11시에 유엔기념공원을 향해 1분간 묵념을 하는 추모행사다. 숫자 1은 국경을 초월해 전 세계인들의 염원이 하나가 된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최근에는 시민단체인 ‘영웅을 위한 세상’이 턴 투워드 부산 행사의 전국적인 확대를 위해 현재 부산에만 울리는 사이렌을 전국에 울리게 해달라고 호소하고 나섰다. 턴 투워드 부산 행사는 2008년 정부 주관 행사로 격상됐고, 2020년 법정 기념일로 제정되기도 했지만, 아직 추모 사이렌이 부산에만 울리고 있다는 이유에서다.

이해인 수녀의 시 ‘님들의 이름을 감사로 새깁니다’의 마지막 부분에는 이런 내용이 있다. ‘우리의 가슴에 님들의 이름을 감사로 새깁니다’는 구절이다. 우리나라를 위해 목숨을 바친 유엔군 전몰용사를 위해 그날 1분간 묵념을 올리는 것은 이런 의미를 가슴에 되새기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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