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선우 여성가족부 장관 후보자의 지명과 사퇴 과정에서 불거졌던 ‘보좌관 갑질’ 문제는 벌써 지나간 이슈가 됐다. 당시 쏟아진 보도와 사회적 관심으로 본다면 차제에 국회 보좌관들의 노동 실태를 조사하고 개선할 만도 하건만 그런 움직임은 안 보인다. 이 점만 봐도 보좌관들이 어떤 처지에서 일하고 있는지 알 수 있다.
지난 몇년간 일자리를 연구하며 대기업과 공공기관 청년 직원들을 인터뷰해 보니 상사의 갑질은 직장을 떠나고 싶게 만드는 가장 큰 사유였다. 갑질은 크게 두 방식이 있다. 하나는 앞서 강선우 전 후보자 사안에서처럼 사적 잡일을 시키는 것이다. 다른 하나는 상사의 말 한마디로 업무가 휙휙 바뀌는 것이다. 이 둘은 현실에서 대체로 중첩된다. 직원을 각자의 고유한 전문성과 능력에 따라 일하는 존재로 인정해주지 않을 때 두 가지가 함께 나타나기 때문이다.
그런데 인터뷰 중 의외의 발견을 했다. 많은 직원들이 이 현상을 만드는 중요한 행위자를 지목한 것이다. 그 상사를 가장 자주 대면하는 바로 아래 직책의 관리자다. 갑질의 주체가 특정 임원이라 한다면 그 직속 본부장 또는 부장이 그를 위해 ‘입안의 혀’처럼 굴 때 이 갑질은 개인 차원이 아니라 조직적 차원이 된다.
이 관리자의 특징은 첫째, 상사가 지나가듯 한 사적인 이야기도 포착해서 조직의 일로 만든다. “아니, 바쁘신데 왜 그런 일을 직접 하세요” 하는 식이다. 둘째, 이 일을 자기가 하는 게 아니라 휘하 직원을 불러서 시킨다. “김 대리, 여기 와서 이것 좀 해 드려!” 하면서. 셋째, 이럴 때 능동적으로 나서는 사람들을 파악해 줄 세워 놓는다. 원래부터 인격이 부족해 갑질을 일삼는 상사도 있겠지만 이런 행위자로 인해 갑질을 당연시하고 지속하는 경우가 더 일반적이다. 이 과정에서 해당 관리자는 임원이 가진 권한과 자원이 자신에게로, 그리고 자기 뒤에 줄 선 직원에게로 흐르도록 만든다.
10년간 고위 공무원으로 일하다 퇴직하고 책 <나라를 위해 일한다는 거짓말>을 쓴 노한동씨는 이렇게 윗사람을 ‘심기 보좌’하는 공무원이 승진하고 핵심 부서에 포진하는 것이 한국 공직사회의 현실이라고 꼬집었다. 이는 공무원이 아이디어를 내고 혁신을 지향하며 일하기보다 보수적이고 회피적인 태도를 가지게 만드는 핵심 원인이라고도 했다.
한편으로는 중요한 위치에 있는 ‘윗분’이 일을 잘하도록 돕는 게 왜 문제냐고 반문할 수 있다. 이 생각의 기저에는 조직은 상명하복식으로 일사불란하게 굴러가는 게 최선이며, ‘윗분’은 능력 때문이건 출신 때문이건 일반 직원과는 신분이 다른 게 사실이고, 일반 직원들이 하는 일이란 어차피 거기서 거기라는 인식이 깔려 있다. 이는 다름 아니라 ‘독재자’를 합리화하는 논리다. 이 시대 어떤 조직에서건 독재의 방식이 긍정적 성과를 낼 리 없다.
이런 면에서 최근 조금씩 걱정되는 것이 여당의 행보다. 실로 오랜만에 ‘일다운 일’을 하는 대통령 덕분에 계엄 이후 구겨졌던 국민들 마음이 좀 펴지는 중인데, 한쪽에서 ‘명심’ ‘찐명’ ‘원팀’과 같은 구호가 연일 들려오니 불안해진다. ‘일다운 일’을 하려는 리더일수록 ‘심기 보좌’보다는 건강한 비판과 토론을 원한다는 것을 정부·여당부터 보여주면 좋겠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