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금 규정 악용해 임금체불 후 신고 ‘악덕 사업주’
이재명 대통령 “임금 떼먹고 출국시키면 나라 망신”
구금 대신 피해회복 지원하는 ‘구금대안법’ 첫 발의

현행 출입국관리법은 체류 자격이 없는 외국인이 적발되면 강제퇴거 전까지 외국인보호소에 수용하도록 하고 있다. 법률상 표현은 ‘보호’지만 사실상 구금 조치다.
이 규정은 사업주가 미등록 이주노동자를 고용해 임금을 체불한 뒤 오히려 출입국에 신고하는 방식으로 악용되고 있다. 노동자가 “장기간 구금되느니, 못 받은 임금은 포기하고 본국으로 돌아가겠다”고 할 수밖에 없는 점을 노린 것이다.
국가인권위원회는 2023년 연구용역과 최근 사례에서 사업주가 체불 임금 지급을 피하려고 노동자를 경찰이나 출입국에 신고하겠다고 위협하는 사례가 반복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필리핀 출신 미등록 이주노동자 솔로몬은 경기 용인시의 한 공장에서 10년간 일하고 약 5000만원의 퇴직금을 받지 못해 고용노동부에 진정을 냈다. 그는 지난 4월 진정인 조사를 마치고 나오던 길에 경찰에 출입국관리법 위반 혐의로 체포됐다. 고기복 모두를 위한 이주인권문화센터 대표는 “사업주 쪽 신고가 의심되는 상황”이라며 “임금 체불 피해자들은 진정을 제기하면서도 신고당할까 불안해해야 한다”고 말했다.
구금 상황을 틈탄 퇴직금 미지급 사례도 나타났다. 카메룬 출신 A씨는 난민 신청이 거부된 후 미등록 상태로 충남 소재 공장에서 6년 넘게 일했지만, 지난 7월 단속돼 구금되자 회사 측이 돌연 퇴직금을 줄 수 없다고 했다. 그는 수용 중이라 노동부에 직접 진정을 내기도 어려웠고, 부인이 대신 신고했지만 실질적 도움을 받지 못했다.

대법원은 체류 자격이 없는 외국인이라도 근로기준법의 보호를 받는 근로자라고 판단하고 있다. 퇴직 후 14일 안에 임금을 받지 못하면 정부가 사업주 시정지시 등을 통해 지원해야 한다는 의미다. 그러나 외국인노동자에게는 보호장치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고 있다.
2007년 외국인보호실에서 체불임금 문제로 방화 사건이 발생한 후, 법무부와 고용노동부는 근로감독관이 보호시설을 정기적으로 방문해 임금 체불 상담을 실시하기로 협의했다. 그러나 2021년 법무부 감사에서 이 조치가 제대로 운영되지 않은 것이 드러났다. 법무부는 올해 국정감사에서도 “코로나19로 파견이 중단됐으며 재개 협의 중”이라고만 밝혔다. 18년간 상담 지원이 없었던 셈이다.
법무부가 직권으로 구금을 해제할 수 있는 ‘보호일시해제’도 유명무실했다. 2018년부터 지난해까지 한 건도 없다가 이재명 정부 출범 후 3건이 집행됐다. 이 대통령이 지난 9월 국무회의에서 “임금을 떼먹고 신고해서 강제 출국시키는 건 나라 망신”이라고 질타한 뒤에야 움직였다는 지적이 나온다.
국가가 손 놓은 사이 이주노동자의 임금 체불 규모는 2019년 이후 매년 1000억원대를 기록 중이다. 지난해 임금 체불 피해자 28만3212명 중 8.2%인 2만3254명이 이주노동자였다. 전체 취업자 중 이주노동자 비중이 미등록자 포함 4~5%인 점을 감안하면 돈을 떼일 위험이 훨씬 크다고 볼 수 있다. 감사원도 2021년 강제퇴거 대상 외국인 359명 중 29명이 임금 체불 상태였으며, 상당수는 지원 제도를 몰라 회수를 포기했다고 지적했다.
법무부는 지난달부터 임금 체불 피해 외국인에 대해 공무원의 출입국 당국 ‘통보 의무’를 면제하기로 했다. 노동자들이 신고를 망설이지 않도록 하겠다는 취지지만, 사업주가 신고하면 보호소에 수용되는 현행 규정은 그대로여서, 실효성이 제한적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이런 문제를 해소하기 위해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소속 이성윤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10일 임금 체불 피해 이주노동자의 구금을 금지하는 ‘구금대안법’(출입국관리법 개정안)을 발의했다. 개정안은 피해 복구 절차가 완료될 때까지 노동자가 임금 수령 현황과 거주지를 정기적으로 보고하도록 하고, 정부는 무단이탈 방지 조치와 국선노무사 지원 등을 할 수 있도록 했다.
앞서 구금 대안 제도를 도입한 미국, 독일, 프랑스, 영국 등에서는 무단이탈률이 낮은 것으로 확인됐다. 미국은 2016~2017년 난민 신청 가족을 대상으로 사례 관리 프로그램을 진행한 결과 99%가 출석했다. 2015년 국제구금연합이 전 세계 60개국을 분석한 연구에서도 지역사회 기반의 ‘참여 중심’ 모델을 적용할 경우 95% 이상의 높은 절차 준수율을 보였다.
이주구금대응네트워크 소속 이상현 변호사는 “국가가 사람을 하루 가두는 데 15만원 정도가 든다고 한다”며 “도주 우려가 낮은 노동자에게는 구금보다 사례 관리와 노무 지원을 제공하는 편이 비용 면에서도, 인권 보호 측면에서도 더 합리적”이라고 말했다.
이 의원은 “구금 대안 제도는 이미 글로벌 스탠다드로, UN 등 국제기구는 우리 정부에 제도 도입을 지속해서 권고해왔다”며 “이번 개정안은 이주노동자의 인권을 보호하는 법안인 동시에 국격을 지키는 법안”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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