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 키 잡은 KGC 안빈 대표, '수탁사업' 실적반등 열쇠 될까
홍삼 시장 점유율 1위인 KGC인삼공사가 건강기능식품(이하 건기식) 수탁사업에 뛰어든다. KGC인삼공사가 보유한 고도화된 홍삼 제조 기술과 품질 관리 역량을 기반으로 OEM(주문자 상표 부착 생산)·ODM(제조자 개발 생산) 회사로 성장하겠다는 전략이다. 홍삼 매출 성장세 둔화가 장기화되고 있는 가운데 새로운 성장동력을 마련하기 위해 신사업 추진에 나선 것이다. 지난 4월 취임한 안빈 대표가 화장품 산업에서 쌓은 오랜 경험을 바탕으로, 사업 구조를 다각화하려는 움직임으로 해석된다.
22일 관련 업계에 따르면 KGC인삼공사는 이달부터 국내 최대 규모의 건기식 제조시설을 갖춘 제조공장을 수탁사업에 활용해 사업영역을 확장할 계획이다. 수탁사업을 통해 다양한 건기식 기업과 교류해 소재나 제형 다변화 등 새로운 건기식 트렌드를 선도하며 시너지를 창출해 낸다는 전략이다.
수탁사업은 다른 회사가 제품의 제조, 개발, 관리 등을 의뢰하면 이를 대신 수행하는 사업 모델을 말한다. 흔히 OEM(주문자 상표 부착 생산, Original Equipment Manufacturing)이나 ODM(제조자 개발 생산, Original Design Manufacturing) 형태로 이뤄진다. 제조 전문성을 가진 수탁자가 브랜드 기업인 위탁자 대신 제품을 생산하거나 설계하는 방식이다. 수탁사업은 제조사와 브랜드사 간의 협업을 통해 이뤄지며, 양측 모두 비용 절감과 효율성 증대를 도모할 수 있다. 건기식과 제약, 화장품 브랜드들이 제조 공정을 전문 수탁업체에 의뢰하는 게 대표적이다.
KGC인삼공사 제조기획부 관계자는 "KGC인삼공사는 다품종 소량 생산이다 보니 매일 돌아가지 않는 설비들도 있다"며 "아이디어는 있는데 제조 시설이 없어 사업을 시작하기 어려운 분들에게 도움이 될 것이다"고 말했다.
KGC인삼공사는 국내 홍삼 시장의 선도 기업이지만, 최근 몇 년간 매출 성장세가 둔화되고 있다. KT&G의 올해 반기보고서에 따르면 상반기 건강기능식품 사업부문(KGC인삼공사) 매출은 5,735억원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11% 감소했다. KT&G의 건기식 매출은 ▲2021년 6,706억원 ▲2022년 6,632억원 ▲2023년 6,449억원으로 최근 4년간 계속 감소했다.
매출 하락 요인으로 내수 감소가 꼽힌다. KGC인삼공사의 내수 매출은 2021년 상반기 5,625억원에서 올 상반기 4,016억원으로 3년새 약 28.6% 줄어들었다. 이러한 내수 부진은 소비자들의 건기식 선택지가 다양해지면서 건기식 시장 경쟁이 치열해진 탓이다. 홍삼의 주요 소비층인 중장년층의 수요가 감소한 반면, 젊은 소비층은 비타민과 유산균 등 다양한 대체 건강식품으로 관심을 돌리고 있는 상황이다.
한국건강기능식품협회에 따르면 2021년 1조4,710억원이던 국내 홍삼 시장 규모는 2022년 1조2,933억원, 지난해 1조1,675억원으로 매년 10%가량씩 줄어드는 추세다. 반면 비타민 시장 규모는 2021년 7,716억원에서 지난해 9,424억원으로 2년 새 22% 증가했다. 이에 KGC인삼공사는 기존 사업의 한계를 넘어설 신성장 동력이 절실한 상태다.
실적 부진이 지속되자 KGC인삼공사는 지난 4월 안빈 대표이사를 선임하며 경영진 교체를 단행했다. 허철호 전 대표는 임기 4년을 채우지 못하고 2년 만에 자리에서 물러나게 됐다. 박정욱 전 대표이사(2014년 10월~2018년 3월), 김재수 전 대표이사(2018년 3월~2022년 3월) 모두 4년간 자리가 바뀌지 않았던 것과 대조적인 인사다.
업계 안팎에선 KGC인삼공사가 수탁사업에 진출한 배경에 안 대표의 역할이 크다고 보고 있다. 지난 4월 취임한 안 대표는 KGC인삼공사에서 화장품 사업을 진두지휘한 인물이다. 2000년 KGC인삼공사에 입사해 브랜드실장, 화장품사업실장 등을 역임했다. 이후 KT&G 계열사인 뷰티 기업 코스모코스 대표이사를 맡으며, 경영을 총괄했다.
코스모코스는 국내외 화장품 시장에서 ODM(제조자 개발 생산)과 자체 브랜드 사업을 병해해온 기업이다. 코스모코스의 매출액은 2019년 715억원에서 코로나가 본격적으로 유행한 2020년 660억원으로 감소하며 연 매출이 600억원대로 내려앉았다. 하지만 이후 ODM 사업을 강화하면서 700억원대로 매출이 회복됐다.
화장품업계 관계자는 "화장품 산업에서 수탁사업이 성공적으로 자리 잡았던 사례를 경험한 만큼, KGC인삼공사가 보유한 제조 역량을 새로운 시장에 활용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정확히 꿰뚫어 본 것 같다"고 말했다.
건기식 시장 성장에 따라 수탁 생산 수요도 증가하고 있다. 국내 건기식 시장 규모는 2022년 기준 약 6조원을 넘어섰다. 이는 4년 전인 2019년(약 4조8,000억원) 대비 약 25% 성장한 수치다. 특히 중소 브랜드와 스타트업들이 제품 개발과 생산을 위해 수탁 제조를 활용하는 사례가 늘어나고 있다. 이에 따라 수탁사업 시장도 전체 시장 성장률에 비례해 확대되고 있는 것으로 예상된다.
수탁사업은 KGC인삼공사가 보유한 고도화된 제조 기술과 품질 관리 역량을 기반으로 한다. 이미 오랜 기간 홍삼과 건강기능식품 제조 과정에서 쌓은 경험은 신뢰성을 보장하는 자산으로 평가된다. 기존 설비를 활용하면서도 글로벌 기준의 품질을 보장할 수 있다는 점에서 경쟁력이 높다. 특히 국내외 건기식 브랜드들의 품질 보증이 뛰어난 제조 파트너를 찾는 수요가 증가하면서 KGC인삼공사의 수탁사업은 시장에서 경쟁력을 가질 것으로 기대된다.
수탁사업이 안정적인 성과를 거둘 경우 홍삼 의존도를 낮추고 새로운 수익을 창출할 수 있을 것으로 예상된다. KGC인삼공사는 관계자는 "건기식 시장의 전반적인 상황을 고려해 KGC 경쟁력 강화를 위해 수탁사업을 추진하게 됐다"며 "KGC는 다양한 글로벌 제품을 생산, 국내 건기식 사업의 해외 진출 및 판로 확장을 지원하고 건기식 시장 활성화에 기여할 것이다"고 말했다.
다만 일각에선 KGC인삼공사의 수탁사업 진출이 중소 제조사 생태계를 흔들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건기식 대표 기업의 신사업 진출은 대체로 브랜드 파워, 자본력 등을 기반으로 이뤄지기 때문에 중소 기업들이 경쟁에서 불리한 위치에 놓이는 경우가 많다. 가격 경쟁 압박, 고객사 이탈, 시장 점유율 감소로 이어져 중소 제조사들이 입을 타격은 적지 않을 것으로 예상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