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네오콘 일본의 탄생
서의동 지음
너머북스 | 304쪽 | 2만6000원
제2차 세계대전에서 패전했지만, 일본에 그 책임을 묻는 청구서는 바로 날아들지 않았다.
공산주의라는 ‘공공의 적’이 확실한 냉전체제에서 일본은 미국의 묵인 아래 아시아의 대장 노릇을 했다. 한국과 중국 등 자신들이 침략한 이웃 국가에 대한 사죄와 책임을 회피했다. 이 체제가 붕괴한 1990년대, 탈냉전 시대가 도래하며 한국을 필두로 아시아 곳곳에선 식민주의의 봉인된 기억이 해방됐다. 일본군 ‘위안부’ 문제 등 전쟁 범죄에 대한 사과 요구가 속출했다.
가해자로서의 자기 인식을 잊어버린 일본은 당혹감에 휩싸였다. 거품 경제의 호황이 무너진 것도 같은 시대의 일이다. 인터레그넴(권위 부재기간) 속 찾아온 취직 빙하기에, 일부 청년들은 ‘패배주의에 빠질 필요가 없다’는 우익의 목소리에 경도됐다.
경향신문 기자로 도쿄 특파원(2011~2014년)을 지낸 저자는 2011년 3월11일 동일본 대지진과 후쿠시마 원전사고가 이러한 일본 우경화에 제동을 걸었을 수도 있었다고 본다.
동일본 대지진 이후 일본에선 ‘전후’가 아닌 ‘재후(재해 이후)’라는 조어가 등장하며 대국주의가 아닌 ‘작고 안전한 나라’라는 비전이 제시된다. 하지만 이는 2년을 채 가지 못했고, 일본은 역사수정주의와 국가주의의 길을 걷는다.
저자는 아베 신조 전 총리로 대표되는 보수 우익 그룹을 ‘네오콘’이라고 지칭하며, 동일본 대지진이 왜 새로운 미래의 시작이 아닌 퇴행의 변곡점이 되었는지를 설명한다. 저널리스트로서의 경험과 연구자로서의 분석을 간명하게 담아냈다. 사회당 등 좌파 리더십이 왜 실패했고, 2002년 북·일 정상회담에서 북한이 과거 일본인 납치 사실을 인정한 것이 어떻게 일본인들에게 ‘피해자성’을 심어줬는지를 논한다. 그 위에 형성된 ‘네오콘 일본’이 장차 국제사회에서 점하려 하는 위치가 어디인지를 내다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