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프로농구 KBL은 올 여름 에이전트 시장의 문을 활짝 열었다. 외국 선수처럼 국내 선수들도 연봉 협상에서 대리인이 대신 협상을 나설 수 있도록 허락하면서 큰 변화가 나올 수 있다는 기대감이 안팎에서 나왔다.
뚜껑을 열어본 결과는 달랐다. 예상과 달리 극소수의 선수만 에이전트의 도움을 받은 것으로 드러났다.
KBL 내부 사정을 잘 아는 관계자는 11일 기자와 통화에서 “KBL이 2025~2026시즌 국내 선수 등록을 마감한 결과 단 13명의 선수만 연봉 협상 과정에서 에이전트의 도움을 받았다”면서 “전체 등록 선수가 160명 남짓하다는 사실을 감안하면 10%도 안 되는 비율”이라고 귀띔했다.
KBL은 규정상 국내 선수도 종전에도 에이전트(FIBA 자격증 소지자 또는 변호사)의 도움을 받을 수 있었지만 에이전트가 연봉 협상에 직접적으로 나설 수 있도록 허락한 것은 올해가 처음이다. KBL은 선수가 체결한 계약서에 에이전트 관련 서류도 첨부하라고 요구하면서 국내 선수 에이전트 시장의 규모가 드러나게 됐다.
지난 8일 KBL 재정위원회에서 2025~2026시즌 보수 조정안이 통과된 4명(두경민·배병준·이호현·전성현)이 아직 계약서를 제출하지 않았기에 최대 17명까지 늘어날 여지는 있지만 그 가능성은 희박하다.
4명의 선수들이 재정위원회를 준비하는 과정에서 에이전트의 조력은 받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기 때문이다.
올 여름 이적시장에서 에이전트의 도움을 받은 이들은 역시 자유계약선수(FA) 자격을 얻은 대어들이었다.
KBL 간판스타인 김선형(KT)과 허훈(KCC) 등이 대표적이다. 프로농구 에이전트 업계에서 선두 주자로 알려진 ㄱ사는 두 선수를 포함해 최다인 7명의 선수와 계약을 맺은 것으로 확인됐다.
김선형은 FA 협상을 앞두고 취재진과 만난 자리에서 “에이전트를 선임하면서 가장 달라진 부분은 농구에만 집중할 수 있다는 게 가장 크다”면서 “선수마다 견해의 차이는 있겠지만 농구 선수라면 운동에 전념할 수 있는 환경이 만들어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올해 에이전트를 선임하면서 마음 편하게 시즌을 치렀던 것 같다. 지난 두 번의 FA 협상에서 한솥밥을 먹고 있는 구단과 선수가 비즈니스인 협상을 직접 진행하면서 감정적인 소모가 있었다”는 긍정적인 평가를 내놓았다. 서울 SK의 프랜차이즈 스타였던 김선형은 올 여름 통신사 라이벌 수원 KT의 유니폼을 입었는데, 허훈과 함께 연봉 8억원을 보장받으면서 연봉킹이 되는 성과도 누렸다.
다만 농구 현장에선 복수의 에이전트가 등장해 본격적인 경쟁 구도가 만들어졌다는 사실에 긍정적으로 평가하면서도 전문성은 아직 부족하다는 지적도 나왔다. 익명을 요구한 한 농구단 사무국장은 “선수와 연봉 협상을 벌일 땐 데이터가 필수적이라고 생각한다”며 “우리 구단은 선수의 스탯 뿐만 아니라 기여도까지 세세하게 따져서 에이전트에게 제시했다. 하지만 해당 에이전트는 선수의 노력과 의지 같은 정형화되지 않은 부분으로 연봉 인상의 필요성을 이야기했다. 프로축구나 프로야구와 비교하면 아직 시간이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또 다른 구단의 사무국장도 “김선형이 FA 협상에서 좋은 결과를 가져온 것은 맞다. 하지만 이 협상이 성공한 것은 허훈과 김선형의 동일한 에이전트를 선임하는 상황이 만들어낸 것”이라며 “앞으로도 선수들이 에이전트에 지불하는 비용 이상의 성과를 거두려면 에이전트들도 더욱 노력할 필요는 있다”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