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인공지능(AI)이 화두가 되면서 글로벌 기업 간(B2B) 플랫폼 사업도 AI 중심으로 재편되고 있다. AI 플랫폼은 업무에 수반되는 비용을 줄이고 생산성을 증가시키기에 효율적이다. 기존 정형화된 프로그램에 비해 변화 적응도 빠른 편이라 단기간 내 신기능 출시도 가능하다는 장점이 있다. AI 플랫폼 기업으로의 전환에 성공한 대표적인 사례가 미국 팔란티어다. 이 회사는 원래 미국 정부기관의 데이터를 통합·분석하는 소프트웨어 회사였으나 2023년 AI 플랫폼 회사로 변신해 현재 미국 시가총액 20위권 기업으로 성장했다.
국내에선 금융·테크 기업으로 업을 전환한 현대카드가 비슷한 사례라 할 수 있다. 현대카드의 AI 플랫폼 ‘유니버스’는 ‘태그(Tag)’ 개념을 이용해 고객 데이터를 정의하고 구조화한다. 단순 인구통계학적 분류가 아닌 실제 행동 패턴을 분석해 초개인화된 마케팅이 가능하다. 이 회사는 19개의 PLCC(Private Label Credit Card·상업자표시신용카드) 파트너사들과 데이터 동맹을 구축, 총 3억명에 달하는 동맹 회원을 대상으로 3000건이 넘는 마케팅 협업을 진행했다. 지난해 10월 유니버스를 구매한 일본 신용카드사 SMCC(Sumitomo Mitsui Card Company)는 AI와 데이터 과학에 기반한 세밀한 타게팅을 통한 가맹점 판촉 고도화를 진행했다. 여신 업무, 고객 상담, 부정 사용 감지 등의 영역에도 유니버스의 AI를 도입할 계획으로 알려졌다. 북미와 유럽, 중동 등에서도 유니버스에 대한 문의가 이어지고 있다고 회사 측은 밝혔다.
금융회사 대다수가 AI 플랫폼을 도입하고 있지만, 자체 업무에 한정돼 있다는 점에서 AI 플랫폼을 판매해 대형 수익을 올린 현대카드의 사례는 주목할 만하다. 미국과 유럽의 금융 그룹들이 AI 신용평가, 리스크 분석 등 일부 기능을 B2B 파트너에게 공급하고 있지만, 전문 핀테크 및 IT 솔루션 기업이 아닌 금융회사가 플랫폼 전체를 상품으로 외부에 판매하는 비즈니스 모델은 찾아보기 힘들다.
이는 10년 전부터 데이터의 중요성을 인식하고 1조원 넘게 투자한 정태영 현대카드 부회장의 경영 판단이 주효한 결과라고 회사 관계자들은 말한다. 디지털 분야에 대한 막대한 투자 규모에 대해 의문을 제기하는 사람도 많았지만, 정 부회장은 “우리에게 디지털화는 선택이 아니었다. 오히려 그것을 회피했을 때의 고통이 훨씬 클 거라 판단했다”며 혁신을 이끌었다. 현재 현대카드 직원 4분의 1이 디지털 관련 인력으로, 앞으로 글로벌 데이터 플랫폼을 구축하고 이를 해외 카드 및 결제 사업자들에게 제공하는 것이 회사의 단기 및 중기 목표라고 한다.
정 부회장은 “디지털 전환은 끊임없이 진화하기 때문에 완성이란 개념은 존재할 수 없다”며 “마케팅, 금융, 디지털 영역에서 이뤄낸 디지털 혁신을 앞으로의 도약을 위한 강력한 기반으로 삼겠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