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국에서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로 자국 정부 반대 활동을 한 캄보디아인을 법원이 난민으로 인정했다.
25일 법조계에 따르면 서울고등법원 제9-1행정부(재판장 김무신 부장판사)는 캄보디아 국적 활동가 A(37)가 서울출입국·외국인청장을 상대로 낸 ‘난민불인정결정취소’ 소송에서 1심 판결을 뒤집고 난민으로 봐야 한다고 지난 6월 판결했다. 앞서 1심은 “캄보디아 내 정치 활동이 미미하고, 원고 개인을 특정한 체포영장이나 박해의 정황이 부족하다”며 A의 청구를 기각했다.
이후 출입국이 상고하지 않으면서 판결은 그대로 확정됐다. 이에 따라 “박해 가능성이 충분하지 않다”는 이유로 서울출입국·외국인청이 2023년 2월 A에게 내린 난민불인정결정은 취소됐다.
항소심 판결문 등에 따르면 A는 2016년 이주노동자로 한국에 입국한 뒤부터 본격적으로 반정부 활동에 나섰다. 캄보디아에선 반정부 시위 참여자에 머물렀던 A는 한국의 민주주의와 한국 내 캄보디아 민주화 활동가에 정치적으로 고무됐다고 한다. 캄보디아는 훈센 전 총리가 이끄는 캄보디아인민당(CPP)이 40년 동안 독재 체제를 이어가고 있다.
A는 2018년 캄보디아 반정부 야당인 구국당(CNRP)의 해외 청년조직인 구국당 청년운동(CNRP Youth Movement)에 가입해 대변인이자 온라인 홍보담당자로 활동을 시작했다. 그는 SNS를 이용해 한국 내 캄보디아 민주화 지지 집회 참가자를 모집하고, 집회 영상을 개인 SNS 계정에 올려 캄보디아 정부 관계자가 시위 영상을 볼 수 있게 공유를 요청했다.

이런 반정부 활동을 통해 A는 지난 24일 기준 페이스북 5만3000명, 틱톡 34만3000명 팔로워를 지닌 유명인사가 됐다. A가 지난 2021년 8월 캄보디아 정부의 미숙한 코로나19 대응을 비판하면서 올린 게시글은 611만 조회 수를 기록하는 등 큰 호응을 얻었다.
"적극적 정치활동…부당 처벌 우려"
재판부는 “A가 전개한 정치 활동은 단순 참여자로서 소극적으로 가담한 게 아니라 객관적으로 캄보디아 정부가 주목할 정도로 적극적이고 주도적인 활동”이라고 평가했다. 이어 재판부는 캄보디아 정부가 CNRP를 강제해산시킨 뒤 관계자를 체포, 구금하여 처벌한 사례를 언급하면서 “A가 캄보디아로 돌아갈 경우 부당한 처벌을 받을 수 있다고 우려할 만한 객관적 상황에 놓여 있다”고 판단했다.
재판부는 캄보디아 정부가 한국 정부에 반정부 인사 송환을 요구하고 있다는 사실도 지적했다. 지난 3월 캄보디아 정부는 캄보디아에서 체포된 한국인 사기 범죄 피의자를 인도하는 대신 한국에서 반정부·민주화운동을 주도하는 캄보디아 국적 인플루언서 B를 송환해달라고 요구한 바 있다.
재판부는 “A가 단지 난민 인정을 받아 체류자격을 얻는 방편으로 정치 활동을 한 것이 아닌지 의심하는 시각이 있을 수 있다”면서도 “외국 활동가들에 대한 캄보디아 정부의 탄압 사례 등을 고려해볼 때 A가 위험을 감수하면서까지 정치 활동을 가장했다고 상정하긴 어려우며, 섣불리 그 진정성을 부정할 수는 없다”고 밝혔다.
소송을 대리한 권영실 변호사(재단법인 동천)는 “이번 판결은 한국 내 반정부 정치활동과 SNS 활동이 본국에서의 박해 위험으로 이어질 수 있음을 인정한 판례로 향후 난민 소송 실무에서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고 말했다.

2024년 인정률 0.57%…난민 인정 딜레마
법무부에 따르면 지난해 난민 신청자는 1만8336명이다. 이중 난민 인정자는 105명으로 0.57%에 불과하다. 이 때문에 시민사회에선 한국의 난민 인정 요건이 지나치게 까다롭다는 주장이 꾸준히 제기돼왔다.
반면 엄격한 난민 심사를 유지해야 한다는 주장도 팽팽히 맞서는 중이다. 횟수에 제한이 없어 체류 기간 연장 목적 등으로 난민 신청을 남용하는 사례가 적지 않다고 보기 때문이다. 지난 12일 유상범 국민의힘 의원이 대표 발의한 난민법 일부 개정안에 이 같은 시각이 담겼다. 이 개정안은 난민 불인정 결정 후 재신청 심사에서 기존 신청 당시 사정과 비교해 중대한 변경이 있는지 따지는 ‘적격 심사’ 도입을 핵심으로 한다.
하지만 심사 강화에 대한 신중론도 만만치 않다. 지난 2021년 12월 법무부도 난민 재신청을 제한하는 내용을 골자로 한 난민법 개정안을 발의했지만 법원행정처는 ‘신중 검토’ 의견을 내고 사실상 반대했다. 당시 법원행정처는 “난민 지위와 관련해 중대한 영향이 생기는 점을 고려할 때 개정안의 적격 심사 제도 도입을 신중히 검토할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