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돌 무렵 소아마비 바이러스 감염으로 중증 지체장애인이 되었지만, 그는 누구보다 자기주도적인 길을 걸었다. 국내 최초의 장애인 대학 수석 졸업생, 최초의 휠체어 장애인 방송인, 최초의 장애인 예술 박사 학위. 그리고 1991년 우리나라 최초의 장애인 문예지 ‘솟대문학’을 만들어 100호까지 발간한 그의 궤적은 한국 장애 예술 성장사와 하나로 포개진다.
한국장애인예술협회를 통해 장애 예술의 발전을 도모하고, 세계 유일의 장애예술인지원법이 제정되는 데 이바지한 그가 지난 3월 한국장애인문화예술원(이하 장문원) 이사장으로 취임했다. 늦은 감은 있지만 최적의 타이밍이라는 평가가 나오는 건 그만큼 기대가 크기 때문이다. 장문원 설립 10주년을 맞아 지난 10월28일 대학로 이음센터에서 장애예술인의 대모로 불리는 방귀희 이사장(68)을 만났다.
‘장애인 최초’ 타이틀 써왔던 삶
문화 소비자와 가교 마련 ‘포부’

2015년 서울 대학로에 문을 연 이음센터는 장애예술인들에게 새로운 출발점이었다. 공연장과 갤러리, 연습실을 갖춘 이곳은 휠체어를 타고도 무대에 오를 수 있는 국내 최초의 장애인 문화예술 공간이다. 2023년에는 모두예술극장, 2024년에는 모두미술공간이 문을 열었다. 이음센터의 예산 확보 단계부터 힘을 보탰던 방 이사장은 “꿈만 같다”는 짧은 소감으로 소회를 대신했다.
선진국에서는 1900년대 초 시작된 장애인 예술이 우리나라에 공식화된 것은 불과 2008년, 문체부 장애인체육과가 장애인문화체육과로 개편되면서부터이다. 출발은 늦됐지만, 장애예술인 당사자들이 중심이 되어 이뤄낸 유무형의 성과는 해외에서 견학을 올 정도로 단단하다. 그럼에도 방 이사장은 아직 풀지 못한 숙제가 있다고 말했다.
“작품도, 공간도 준비돼 있는데 관객의 인정을 받지 못하고 있다는 게 가장 어렵습니다. 이번 장문원 10주년을 장애예술인 예술의 뛰어남을 보여드리는 계기로 삼고 있습니다. 일단 한번 경험하시면 ‘장애예술이 이런 거구나’ 느끼실 겁니다.”
- 방귀희 한국장애인문화예술원 이사장


장문원은 창립 10주년을 맞아 한국·캐나다 장애예술 교류전, 장애인 문화예술 동아시아포럼 등 특별 기념 행사를 마련했다. 특히 11월11일 모두예술극장에서 열리는 기념행사는 내부 공모로 제작된 캐릭터와 슬로건이 공개되는 동시에 클래식, 대중음악, 무용 등 다양한 장르의 공연을 통해 장애예술의 예술적 수월성을 확인할 수 있는 자리로 꾸며진다. 세계의 주목을 받고 있는 최초의 K팝 수어 아이돌 빅오션도 만날 수 있다.
“법철학자 마사 누스바움이 ‘인류의 불행은 소수자 집단에 대한 편견에서 시작됐다’고 했습니다. 그 편견의 이유가 ‘투사적 혐오’, 그러니까 그냥 싫은 거예요. 장애인이 피해를 줄 것 같다는 막연한 생각이죠. 그런데 경험하면 괜찮습니다. 경험하지 않으면 혐오가 생겨요. 그걸 없애는 가장 좋은 도구가 예술입니다. 제가 장애예술을 하는 이유가 거기 있습니다.”

방 이사장은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장애예술인을 알리는 데 진심이었다. 방송작가 시절 클로징 멘트로 모은 역사 속 장애예술인 목록은 한 권의 책으로도 묶였다. 최초의 여성 노벨 문학상 수상자인 스웨덴의 셀마 라겔뢰프가 지체장애인이었다는 것도 그의 칼럼 덕분에 알게 된 사실이다. 그는 장애예술의 수월성을 오래전부터 강조해왔다. 장애예술인지원법을 꾸릴 때에도 장애인의 예술을 여가 활동이나 치료 활동이 아니라 완전한 예술 활동으로 인정하자는 데에 힘을 실었다. 복지적 관점으로 접근한 일본의 장애예술활동지원법과 확연히 다른 지점이다.
“장애예술 콘텐츠의 특별함은 작가의 생애와 세계가 담긴 스토리에 있습니다.
물론 작품 자체의 힘도 강하죠. 요즘 미술계에서는 발달장애인의 작품이
돋보입니다. 사물을 보는 시각이 남다르고 색감도 굉장히 화려합니다.
작은 점처럼 보여도 확대해보면 그 안에 특별한 내용이 담겨있기도 해요.
다른 사람들이 생각지 못한 것을 그려내니 호기심을 자극하죠.”
- 방귀희 한국장애인문화예술원 이사장
장애인의 작품이라는 편견을 거두면 무궁무진한 예술세계와 만날 수 있다. 방 이사장은 이를 위해 장애예술인의 정체성 확립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장애인 체육이 장애인 올림픽과 같은 대회를 통해 하나의 영역으로 자리 잡으며 발전했듯, 장애인예술도 그만의 영역을 확보한 후에 수월성을 인정받아 비장애인 예술과의 경계를 허물고 사회에 녹아들 수 있을 거라고 그는 말한다. 장애예술을 대중의 삶 속으로 끌어들이기 위한 ‘과도기’를 건너기 위해 그는 직접 예술가를 발굴하고 인적 네트워크를 구축해왔다. 한국장애예술인협회 시절 만든 장애예술인 수첩에는 문학, 미술, 음악, 대중예술 등 분야별로 일정 기준을 갖춘 장애예술인 550여명의 경력이 수록돼 있다.

방 이사장은 장애예술인과 문화 소비자를 위한 가교를 자임하며 장문원의 5대 중점 추진 과제를 정립했다. 장애예술인의 역량 강화를 위한 기회 제공, 전문 인력 양성 확대, 지역 활성화 지원 등이 주요 내용이다. 또한 대통령 문화특보 등을 거치며 쌓은 행정적인 노하우를 바탕으로 장애예술인 지원제도의 활성화, 장문원의 법정 법인화 등 실질적 활성화를 추진할 계획이다.
“장애예술인지원법 덕분에 ‘장애예술인 창작품 우선구매제도’나 ‘의무공연·전시제도’가 시행되고 있습니다. 중요한 건 장소만 내주는 것이 아니라 기회를 제도적으로 보장하는 겁니다. 이를테면 열린음악회에서 장애예술인이 한 명 자연스럽게 출연하는 것, 드라마나 영화에 장애인 연기자가 출연하는 것 같은 변화가 필요합니다.”
그는 아직 미비한 점으로 ‘창작기금 부문’을 꼽는다. 법 제정 당시 시급한 통과를 위해 제외된 부분이지만, 장애예술인을 개발하는 데 실질적으로 지원하기 위해 반드시 복원돼야 한다는 것이다. 이를 위해 그는 ‘모두의예술후원회’ 설립을 추진 중이다.
“시인 구상이 기부한 2억원으로 만든 ‘구상솟대문학상’이 매년 걸출한 수상자를 배출하며 장애문학의 성장에 기여하고 있습니다. 그런 사례를 더 늘려가고 싶습니다.”

방 이사장의 휴대전화에는 “어디에 내놔도 손색없는” 장애예술인 1000여명의 연락처가 저장돼 있다. 그는 “내 힘은 여기서 나온다”며 웃었다. 며칠 전에는 발달장애인 어머니들이 찾아와 교육 상담을 나누고, 젊은 유튜버가 “크리에이터도 장애예술인 카테고리에 넣어달라”고 제안하기도 했다. 장문원의 이사장실은 언제나 열려 있다.
방 이사장은 이번 10주년은 장애예술인의 정체성 확립과 수월성 도약을 동시에 보여주는 출발점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엠블럼의 나이테가 상징하듯 장문원의 10년은 장애예술인들이 함께 쌓아올린 성장의 기록입니다. 이제는 그 결을 따라 새로운 10년의 예술사를 써 내려가야 할 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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