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련군 다음엔 미군과 춤췄다…원산 여인들 ‘서글픈 댄스파티’ <끝>

2025-03-05

쇳물은 멈추지 않는다

김책제철소 얻을 수 있었다, 북녘의 기억

우리 또래의 노인들은 북한을 보는 시선이 착잡할 수밖에 없다. 한국전쟁에다 저마다 가슴 아픈 사연이 있기 때문이다. 함부로 털어놓지 못하는 비밀이 내게도 있다. 나는 북한 뉴스가 나오면 외삼촌과 원산부터 떠올린다.

우리 집안에서 가장 똑똑한 사람은 외삼촌이었다. 1945년 3월 초 와세다(早稻田)대에 합격한 뒤 처음 뵈었던 분이다. “장한 우리 조카 축하하려고 목숨 걸고 현해탄을 건너왔어.” 빈말이 아니었다. 당시 미군 기뢰(機雷)에 관부연락선이 침몰하는 참극이 빚어졌고, 미군 비행기가 도쿄(東京)를 무차별 폭격하고 있었다.

울산에서 고등학교를 나온 외삼촌은 눈빛과 말씨가 가지런했다. “일본이 곧 항복할거야. 일본에 미군이 진주하고 만주에 러시아 군대가 들어오면 조선은 복잡해질 테지….” 난생 처음 듣는 정치 이야기였다. 그가 사회주의 사상을 품은 것을 느낄 수 있었다. 그렇게 헤어진 외삼촌은 광복 후 잠깐 얼굴을 봤지만 곧 연락이 끊겼다. 월북한 것이다.

한국전쟁 때 우리 부대는 포항까지 밀려났다가 곧바로 북상해 원산을 접수했다. 그러나 밀려드는 중공군 때문에 발길을 돌렸다. 조금 더 올라가면 37년 일본 미쓰비시(三菱)가 세운 청진제철소(현 김책제철소)까지 손에 넣을 수 있었는데…. 나는 원산만과 명사십리, 그 아름다운 풍경을 잊지 못한다.

원산에서는 착잡한 광경도 목격했다. 아직도 뒷맛이 씁쓰레하다. 당시 미군 장교들이 승리 자축연을 했다. 원산 일대의 노동당 간부나 인민군 장교의 젊은 처자들이 동원돼 댄스 파티가 벌어졌다. 다행히 미군 장교들이 신사답게 굴었기에 망정이지…. 이야기를 들어 보니 소련군이 점령했을 때 소련군 장교들과 어울리면서 댄스를 배운 여성들이라고 했다. 나라 힘이 없으니 연약한 여성들이 소련군 장교들과, 다음에는 미군 장교들과 춤을 춰야 하는 현실이 서글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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