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해, 어떤 불길이 진짜이고, 어떤 불길이 가상인지 혼란스럽다. 1월6일부터 새빨간 불길로 뒤덮인 캘리포니아의 처참한 모습은 마치 한편의 블록버스터 영화가 아닌지 의심마저 들게 만든다. 한편에선, 트럼프 당선인의 2번째 취임식을 앞두고 성대한 불꽃놀이 행사가 그의 버지니아주 골프클럽에서 진행됐다. 하늘을 수놓은 불꽃들을 바라보는 트럼프 부부의 모습은 4년 전인 2021년 1월7일 트럼프 지지자들이 미국 연방의회 의사당을 난입하며 폭력시위를 자행하는 모습을 지켜볼 때만 하더라도 상상조차 하지 못했을 것이다.
진정 가상보다 더 비현실적인 날들이다. 한국 안에서 바라본 바깥세상은 온통 아마겟돈과 같다. 연이은 대형 자연재해, 세계 3차대전의 불안감을 퍼트리는 잇따른 전쟁소식들. 하지만 바깥세상에서 본 한국 안의 모습 또한 그리 달라 보이지 않는다. 독재와 군사정권의 계엄을 소재로 한 한강의 소설이 노벨 문학상을 수상한 지 채 두 달도 안 돼 계엄이 선포되지 않았던가! K팝과 K드라마 등 창의적 상상력이 샘솟는 나라에서 무력으로 국민의 기본권을 짓밟는 일이 기획되고 실행되었다는 사실을 과연 외국인들은 상상이나 할 수 있었을까. 그 결과 헌정사상 최초로 현직 대통령이 구속되고, 그의 지지자들이 법원에 폭력적으로 난입한 일이 벌어질 것이라곤 상상조차 못했을 것이다. 나라 안팎 어떤 불길이 더욱더 비현실적일까!
지난 12월 계엄이 실패하고 4일째 되는 날 한국과학기술학회 국제학술대회가 열렸다. 학회 이튿날 펜실베이니아 대학 인류학자 아드리아나 페트리나가 기조강연으로 기후변화에 관한 자신의 책 <Horizon Work>에 대해 발표했다. 페트리나는 미국의 대형산불에 대한 현장조사를 중심으로 예측 불가능해진 환경 재난에 대해 새로운 시각을 제시했다. 여기서 그녀는 두 개의 세계를 제시한다. ‘제1세계’는 자연재해가 통제 가능하며 예측이 유효한 세계이며, ‘제2세계’는 그러한 통제가 불가능한 예측 불가능의 세계이다. 제1세계가 크고 작은 수평선들을 기준으로 안정적으로 항해할 수 있는 세상이라면, 제2세계는 좌표가 될 수평선 없이 불확실성 위에서 각종 재앙의 충격 속에 휩싸이는 곳이라고 보았다. 그녀는 인류가 이미 제2세계에 돌입했지만, 여전히 제1세계에 살고 있다고 믿고 있는 ‘인지적 부조화’에 빠져 있다고 비판했다.
이런 현실에서 페트리나가 요청하는 것은 바로 이미 예측불가능해진 미래의 재앙을 현재의 사고와 개입의 대상으로 가져오는 실천이었다. 그녀는 이것을 ‘수평선 작업’(horizon work)이라 부른다. 나는 그녀의 발표 이후 이렇게 묻고 싶었다. 통제되지 않는 인간의 욕망이 자연재해보다 더욱 예측불가능하지 않은가 하고 말이다. 제2세계에 살고 있지만, 아직 제1세계라며 더 많이 생산하고, 더 많이 자연을 착취하고 욕망하라고 가짜뉴스를 퍼트리는 권력자가 있지 않냐고 말이다. 즉, 예측과 통제가 불가능한 것은 자연이 아니라 인간(의 욕망)이지 않을까 되묻고 싶었다.
4년 전 미국 의사당을 난입한 시민과 1월19일 새벽 법원에 난입한 시민은 과연 어떤 세계 속에 머물며, 어떤 수평선을 바라보며 나아가는 것일까. 혐오의 언어에 함몰된 파시즘적 세력을 바라보고 있자니 오랫동안 자신을 대변할 언어를 갖지 못했던 소수자들이 떠올랐다. 영국 철학자 미란타 프리커는 자신을 증언할 힘도 없고, 해석할 언어도 부정당한 소수자들의 현실을 가리켜 ‘인식적 부정의’(epistemic injustice)라 정의했다. 인식적 부정의로 인해 언어를 잃은 이들은 정반대로 혐오의 언어를 휘두르는 세력의 먹잇감이 되어 왔다. 소수자가 빼앗긴 목소리는 극단적 세력의 목소리를 키우는 원료였다. 그리고 그 세력 앞에는 언제나 혐오를 선동하는 메시지와 메신저가 존재했다. 그 결과 우린 폭군과 폭민의 출현을 마주하고 있다.
그렇다면, 혼돈의 시대에 생존하기 위한 정의로운 수평선은 어디에서 찾을 수 있을까. 그것은 어떠한 이데올로기도, 소수의 구원자도 아닐 테다. 오히려 지난 한 달 사이 한국의 거리 위에서 목격한 놀라운 집단지성의 불빛이 바로 그 수평선이지 않을까. 키세스 시위대, 그리고 남태령고개와 광화문, 국회 앞 거리 등을 가득 채웠던 시민들이 만든 풍경이 우리가 나아가야 할 수평선일 테다. 시민이 빛으로 수놓은 수평선 위에선 인식적 부정의로 배제당했던 모두의 목소리가 편견 없이 울려 퍼졌다. 그곳에선 혐오에 갇힌 세력이 그 어디에도 발붙일 자리가 없었다. 미래세대를 위해 진정 우리가 지향해야 할 수평선은 바로 광장에 선 평화적인 인간 불빛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