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뉴 부대 한국 파병 74주년 [김태훈의 의미 또는 재미]

2025-05-13

흔히 아프리카 하면 유럽 강대국의 식민지로 있다가 20세기 중반 독립한 신생국들을 떠올린다. 하지만 아프리카 국가라고 해서 다 서방의 지배를 받은 것은 아니다. 동아프리카의 에티오피아가 대표적이다. 이 나라는 3000년 가까운 오랜 기간 동안 독립국 지위를 유지했다. 그런데 19세기 후반 에티오피아 인근의 에리트레아와 소말릴란드를 식민지로 거느린 이탈리아가 에티오피아 땅에 눈독을 들이며 암운이 드리웠다. 1895년 마침내 이탈리아군은 에티오피아를 상대로 공격을 감행했다. 하지만 전쟁은 예상과 달리 이탈리아의 참패로 끝났고, 이는 아프리카 군대가 유럽을 상대로 거둔 최초의 승리 중 하나로 기록됐다.

옛 로마 제국 재건의 미몽에 사로잡힌 베니토 무솔리니 총리 시절인 1935년 이탈리아는 다시 에티오피아를 침공했다. 국제적 망신을 당한 1차 전쟁 때와 달리 이번에는 탱크 약 800대, 군용기 600대를 비롯해 50만 대군을 투입하고 총력전을 펼쳤다. 전차와 비행기가 한 대도 없던 에티오피아는 개전 7개월 만에 무너졌다. 당시 에티오피아는 오늘날 유엔의 전신에 해당하는 국제연맹 회원국이었으나, 국제법을 어긴 명백한 침략 행위에도 국제연맹은 수수방관만 했다. 나라를 빼앗기고 영국으로 망명을 떠난 에티오피아 황제 하일레 셀라시에 1세를 스위스 제네바 국제연맹 본부로 초청해 세계 각국 대표들 앞에서 이탈리아를 규탄하는 연설을 하도록 주선한 것이 고작이었다.

제2차 세계대전 당시 나치 독일 편에서 참전한 이탈리아가 붕괴한 뒤 에티오피아는 그 식민지에서 벗어나 독립을 되찾았다. 1950년 한반도에서 북한의 기습 남침으로 6·25 전쟁이 터지자 하일레 셀라시에는 한국을 돕기 위한 파병을 결심했다. 과거 이탈리아의 침략으로 겪은 고통을 떠올린 그는 한국으로 갈 강뉴(Kagnew) 부대원들을 향해 “살아 돌아올 생각을 하지 말라”며 “너희의 죽음의 대가로 자유라는 것을 저들(한국인)의 손에 꼭 안겨주거라”라고 당부했다. 강뉴란 ‘격파한다’는 뜻의 에티오피아어로 황실 근위대에서 차출된 병사들이 주축을 이뤘다. 1951년 5월 부산에 도착한 강뉴 부대는 1953년 7월까지 연인원 6000여명의 장병이 북한군·중공군과 싸웠고, 그중 122명은 장렬히 전사했다. 에티오피아군은 특이하게도 포로가 단 한 명도 없었는데, 이는 ‘죽지 않고 적에게 붙잡히는 것은 곧 불충(不忠)’이라는 황실 근위대의 전통 때문이라고 한다.

지난 3일 에티오피아 수도 아디스아바바에서 6·25 전쟁 참전 74주년 기념식이 열렸다. 이제는 고령이 된 에티오피아 참전용사 및 그 가족들이 함께한 이 뜻깊은 행사에 백승주 전쟁기념사업회장도 참석해 축사를 했다. 그는 “대한민국의 자유를 위해 참전을 결심한 하일레 셀라시에 황제와 목숨을 바친 참전용사에게 경의를 표한다”며 “대한민국은 영원히 그들을 기억할 것”이라고 말했다. 1974년 군부 쿠데타로 하일레 셀라시에가 축출되고 사회주의 공화국 정권이 들어서며 꽤 오랫동안 소원했던 한국·에티오피아 관계가 1991년 민주주의 연방공화국 수립 이후 정상화의 길을 밟고 있으니 참으로 다행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친북 정책으로 일관한 사회주의 정권 시절 핍박에 시달리며 고초를 겪은 참전용사들이 생존해 있는 동안 한국 정부가 물심양면으로 지원하고 보살피는 것이 진정한 보은(報恩)이라고 하겠다.

김태훈 논설위원 af103@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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