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사주 소각까지 가야 '진짜' 밸류업

2025-05-09

"자사주를 단순히 매입하는 것이 아니라, 소각을 목적으로 취득해야 진정한 주주환원이라고 생각합니다."

이동섭 국민연금공단 수탁자책임실장은 최근 열린 자본시장포럼에서 주주환원 정책과 관련해 이같이 말했다. 주가 안정과 주주가치 제고를 내세우는 자사주 매입이 실제 그 목적을 제대로 달성하지 못하고 있다는 지적에 대한 답변이다. 소각이라는 행동이 동반되어야만 진짜 주주환원이라는 의미인 셈이다.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시스템(DART) 집계를 보면 2024년 코리아 밸류업 로드맵이 발표된 이후 지난 7일 기준 총 150개 기업이 기업가치 제고 계획을 공시했다. 이 가운데 상당수는 주주환원 정책을 포함하고 있으며 특히 자사주 매입은 그 대표 수단처럼 쓰이고 있다.

하지만 자사주를 매입에만 그치고 소각까지 이어지는 기업은 드물다.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올해 들어 자기주식취득 보고서를 제출한 상장사는 181개사에 달한다. 이들 기업 중 대다수가 주가 안정과 주주가치 제고를 이유로 들었다. 하지만 소각을 실행했거나 소각 목적을 명확히 밝힌 상장사는 34개사로 전체의 18.78%에 불과했다.

이 숫자는 시장이 자사주 매입을 '주주환원'이 아닌 '전략적 수단'으로 인식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분명 일부 기업은 진정성 있는 주주환원 목적일 수 있지만 많은 경우 자사주가 경영권 방어 수단으로 활용되거나 시장에 다시 출회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결국 자사주 매입이 오히려 주주 간 힘의 불균형을 유발할 수 있다는 우려도 제기된다.

네이버가 자사주 활용이 가장 활발한 기업 중 하나다. 2021년 캐나다 웹소설 플랫폼 '왓패드'를 인수할 당시 인수대금의 25%를 자사주로 지급했고 우호지분 확보나 임직원 보상 등의 목적에도 자사주를 적극 활용해왔다. 이 같은 사례는 자사주가 주주환원이 아닌 기업의 전략적 수단으로 쓰이는 현실을 보여준다.

소각 의지가 없는 자사주 매입은 '일시적 주가 부양'에 그칠 뿐이며 진정한 코리아 밸류업을 이룰 수 없다. 시장에서도 자사주 매입 후 곧바로 소각을 실행했거나 명확한 소각 계획을 사전 공시한 경우에만 이를 '주주환원'으로 인정하는 분위기가 형성되고 있다. 이런 이유로 국민연금 등 주요 기관투자자들은 자사주 매입 결정 시 소각 여부를 투자 핵심 평가 기준으로 삼고 있다.

주주환원은 기업이 보유 자산을 시장과 나누며 신뢰를 쌓는 일이다. 자사주 매입이 진정한 환원으로 기능하기 위해선 그 끝은 소각이어야 한다. 코리아 밸류업의 본질은 단순한 주가 부양이 아니라, 기업 신뢰 회복과 자본시장 체질 개선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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