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모 위해 선뜻 간 떼준 대학생 조카…기적처럼 피어난 삶

2025-05-15

서울아산병원, 간이식 9000번 달성

지난해 8월 황달 증상으로 처음 병원을 찾은 윤모(43·여)씨는 ‘알코올성 간경화’ 진단을 받았다. 상태가 심각해 당장 간이식을 받아야 하는 상황. 이때 흔쾌히 간기증 의사를 밝힌 건 다름 아닌 대학생 조카 정모(20)씨였다. 윤씨와 정씨는 어린시절 동고동락하며 가깝게 지내온 사이로, 어머니로부터 이모의 상황을 전해 들은 정씨는 스스로 검사를 받아 기증 명단에 이름을 올렸다.

지난달 30일 오전 8시, 마침내 서울아산병원 간이식 수술방 네 곳이 동시에 열렸다. 이날 이모 윤씨를 살리려는 조카 정씨와 함께, 간암과 간경화를 앓고 있는 고모에게 건강한 간을 내어줄 또 다른 조카도 있었다. 기증자들의 수술방에선 간을 절제하는 수술이 시작됐고, 수혜자들의 수술방에선 건강한 간을 이식받기 위한 준비가 진행됐다. 11시간이 넘는 수술 끝에 의료진이 혈류를 개통한 순간, 회색빛 간에 붉은 생기가 돌았다. 서울아산병원이 단일 의료기관으로 세계 처음으로 간이식 9000번을 달성하는 순간이다.

지난 15일 서울아산병원 관계자는 세계일보에 ‘9000번째 간이식 달성’ 소식을 전하며 “1992년 8월 처음으로 뇌사자 간이식 수술을 시행한 이후 32년8개월 만이며, 2022년 9월 간이식 8000번 기록을 세운 이후로 2년 반 만에 이룬 성과”라고 소개했다. 지난 30여년 동안 간이식을 통해 한 살배기 시한부 아기는 어느덧 건강한 청년이 됐고 죽음 앞에 섰던 마흔 살 가장은 손주를 맞는 노년의 기쁨을 누리게 됐다.

간이식 중에서도 뇌사자가 아닌 살아있는 사람의 간 일부를 떼어내 환자에게 이식하는 생체 간이식은 뇌사 장기기증자가 부족하기 때문에 차선책으로 개발된 간이식 방법이다. 현재 우리나라에서는 간이식의 70%가 생체 간이식으로 시행되고 있다.

생체 간이식은 뇌사자 간이식에 비해 수술이 까다롭고 합병증 발생 위험도 크다. 그러나 의학기술이 발전하면서 생존율을 높여나가고 있다. 아산병원의 전체 간이식 생존율은 98%(1년), 90%(3년), 89%(10년)를 기록하고 있다. 우리나라보다 간이식 역사가 깊은 미국 피츠버그 메디컬센터와 샌프란시스코 캘리포니아대학 메디컬센터의 간이식 1년 생존율이 평균 92%라는 점을 고려하면 매우 우수하다는 평가다.

특히 9000번째 생체 간이식 사례인 이모 윤씨와 조카 정씨의 경우 서로 혈액형이 달라 거부반응이 발생할 위험마저 컸다. 간이식팀은 이식 전 환자에게 항체 형성 억제제를 투여하고 혈장교환술(혈장에 존재하는 질병 유발 항체를 제거해 다시 환자의 혈액으로 주입)을 시행했다.

이승규 서울아산병원 간이식·간담도외과 석좌교수는 “간이식팀이 간이식 9000번을 달성할 수 있었던 원동력은 환자들이었다”며 “또 간이식·간담도외과 집도의뿐만 아니라 마취통증의학과, 영상의학과, 소화기내과, 감염내과, 소아외과, 소아청소년전문과, 수술실, 중환자실, 병동, 장기이식센터 등 수많은 의료진이 협진해온 결과”라고 밝혔다.

이진우 기자 realstone@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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