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법원 “출산휴가 계획 반드시 내라”…모든 재판연구원에게 요구

2025-01-17

전출 희망 법원 받으며 “출산휴가 계획 제출”

불확실한 향후 출산 여부···인사상 불이익 우려

대법원 “업무공백 대비 차원···표현 수정 검토”

대법원이 전국 법원에 소속된 재판연구원들에게 전출 희망 법원을 조사하면서 ‘출산휴가 계획’을 반드시 적으라고 한 것으로 확인됐다. 3년 계약직인 재판연구원 사이에선 출산휴가 여부에 따라 은연중에 인사상 불이익을 받을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대법원은 장기간 휴가 계획을 미리 파악해 인력 공백에 대비하기 위한 취지라고 설명했지만 출산휴가의 자유로운 사용을 억제하는 요소로 작용할 수 있다는 비판이 제기됐다.

18일 경향신문 취재를 종합하면, 대법원 법원행정처는 지난 6일부터 오는 27일까지 전국 법원 소속 재판연구원들로부터 인사희망원을 받고 있다. 법원행정처는 인사희망원에 전출을 희망하는 법원을 1~5지망까지 적도록 했다. 그러면서 “출산휴가 등의 계획이 있는 경우 반드시 기재하라”고 요구했다. 재판연구원들에게 보낸 제출 공지 메일에 “항목을 누락하지 말고 빠짐없이 기재하라”고 당부하기도 했다.

재판연구원은 판사들의 재판 업무를 보조하기 위해 주요 법원에 3년 계약직으로 임용되는 전문 인력이다. 대법원장이 변호사 자격이 있는 사람을 선별해 임용한다. 이들은 각 사건 판결에 필요한 법리와 판례를 연구하고, 판결문 초고도 작성한다. 2012년 처음 도입한 이후 최근 3년간 총 347명이 임용됐고, 이 중 여성이 227명으로 65%에 달한다.

미국식 이름인 ‘로클럭’이라고 불리기도 하는 재판연구원은 판사들과 직접 접촉하며 법원 내 실무 경험을 쌓을 수 있는 핵심 경력으로 꼽힌다. 재판연구원 근무 기간 내 인사평정은 향후 로펌이나 법관으로 지원할 때 중요한 요소로 작용한다. 재판연구원들이 강한 업무 강도를 무릅쓰고 서울고법 등 주요 사건이 많은 법원을 대체로 선호하는 이유다.

이런 환경에서 ‘출산휴가 계획을 반드시 기재하라’는 문구는 ‘출산휴가를 사용하면 인사에 불이익이 된다’는 압박감을 줄 수 있다는 지적이 법원 안팎에서 나온다. 출산휴가 계획이 있는 인원은 인력 공백의 영향을 덜 받고 사건이 적은 ‘비선호 법원’으로 배치한다는 의미로 읽힐 수 있기 때문이다. 올해 임신을 계획 중인 재판연구원 A씨는 “출산휴가 계획을 고지하는 경우 비선호 재판부에 배치되는 등 인사평정상 불이익이 있다는 염려가 크게 들었다”고 했다.

출산휴가 계획을 선제적으로 묻는 행위 자체가 불평등하다는 비판도 나온다. 인사 결과가 출산휴가 사용 여부를 기준으로 달라지면 일부 인원이 법적으로 보장된 제도를 사용하면서도 불이익을 감수해야 하는 셈이기 때문이다. 허민숙 국회입법조사처 입법조사관은 “사람들은 공공기관에서는 그나마 안정적으로 출산휴가 제도를 사용할 수 있다고 알고 있지만 현실은 그렇지도 않다는 것”이라며 “가장 평등해야 할 곳에서조차 차별이 발생하고 있다”고 말했다. 앞서 서울고법도 2017년 여성 재판연구원들에게 임신 또는 출산 계획이 있는 경우 대략적 기간을 제출하라고 해 논란이 일었다.

임신과 출산은 언제나 가능성 있는 일이라는 점을 고려했을 때 시대착오적인 문구에 불과하다는 지적도 있다. 이경하 한국여성변호사회 변호사는 “아이는 자연스럽게 생기기도 하고, 출산 또는 출산휴가 계획은 따로 낼 수 있는 개념이 아니다”라며 “시대에 뒤떨어진 내용”이라고 말했다.

법원행정처 관계자는 “업무공백 발생에 대비하려는 취지였다”고 설명했다. 이어 “성별 상관없이 장기간 휴직을 앞둔 인원을 파악하려던 것인데, 문구에 출산휴가를 앞세우면서 지적을 받은 것 같다”며 “더 적절한 표현을 검토하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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