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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로골퍼 리디아 고(28·뉴질랜드)의 오른쪽 옆구리에는 자그마한 문신이 선명하게 새겨져 있었다. 자신의 올림픽 출전 역사가 고스란히 담긴 기념 타투. 2016 리우올림픽 은메달과 2020 도쿄올림픽 동메달 그리고 2024 파리올림픽 금메달을 기념하기 위해 각 도시를 상징하는 예수상과 후지산, 에펠탑을 일렬로 연결해 새겨 넣었다.
‘아무나 할 수 없는 문신’으로 화제가 된 여자골프 세계랭킹 3위 리디아 고를 26일 싱가포르 센토사 골프클럽에서 만났다. 미국여자프로골프(LPGA) 투어 HSBC 여자 월드 챔피언십 개막을 하루 앞두고 코스에서 샷을 가다듬은 리디아 고는 “문득 올림픽 금·은·동 메달을 기념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과거 인연이 있던 국내 타투이스트에게 연락해 세 도시를 상징하는 디자인을 제안 받아 예수상과 후지산, 에펠탑을 각기 다른 크기로 새기게 됐다”면서 “다음 올림픽은 2028년 미국 LA에서 열린다. LA 하면 할리우드 사인이 떠오르는데 일단 지금은 출전하겠다고 밝히기가 조심스럽다. 현재로선 파리올림픽이 마지막이라고 말하고 싶다”고 했다.
리디아 고는 LPGA 투어를 대표하는 정상급 선수다. 10대 시절에만 14승을 거뒀고, 2018년부터 지난해까지 8승을 추가해 통산 22승을 수확했다. 화려한 발자취는 LPGA 투어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모두 3차례 출전한 올림픽에서 금메달과 은메달, 동메달을 모두 따내는 새 역사를 썼다. 특히 지난해 파리올림픽 제패로 역대 최연소 LPGA 투어 명예의 전당 입성에도 성공했다.
이처럼 10년 넘게 정상의 자리만 지킨 리디아 고는 그러나 파리올림픽 직후 은퇴를 암시하는 발언을 여러 차례 남겨 주변의 궁금증을 샀다. 이전에도 서른 살을 전후해 필드를 떠나겠다고는 했지만, 발언 시점이 올림픽의 모든 메달을 수확한 뒤라 여러 추측을 낳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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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날 인터뷰에서 리디아 고는 “최고의 위치에서 내려오겠다는 생각에는 변함이 없다. 후배들에게 밀려 은퇴하기보다는 나 스스로 그 시기를 정하고 싶다”고 잘라 말했다. 이어 “그런 의미에서 예상 시기를 서른 살로 잡았다고 보면 된다. 그러나 서른 살 역시 내게는 아직 먼 이야기처럼 느껴진다. 일단은 내일 개막하는 대회에만 집중하려고 하고, 또 다음 대회를 열심히 준비하고 싶다. 선수로 뛰는 동안에는 당연히 최고의 경기력을 유지하겠다”고 말했다.
지난해 LPGA 투어 3승과 파리올림픽 금메달로 수차례 눈물을 흘린 리디아 고는 지난 비시즌에는 외부활동을 통해 색다른 추억도 쌓았다. 지난해 12월에는 뉴질랜드 정부로부터 역대 최연소 최고시민훈장을 받았고, 최근에는 한 패션잡지를 통해 과감한 분위기의 화보도 공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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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디아 고는 “아직 서른 살도 되지 않았는데 정말 큰 훈장을 받았다.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기분이 들었다”면서 “화보 촬영도 이색적인 경험이 됐다. 주변에서 사진을 보고 ‘같은 사람이냐?’고 묻더라. 그만큼 머리부터 발끝까지 제대로 변신했다는 느낌이라 뿌듯했다”고 웃었다.
리디아 고가 우승을 벼르는 HSBC 여자 월드챔피언십은 27일부터 나흘간 센토사 골프클럽에서 열린다. 이 대회는 한국과 연이 깊어 통산 16회 중 8차례 우승을 한국 선수들이 가져갔다. 2022년과 2023년 챔피언인 고진영(30)과 2021년 우승자 김효주(30)가 출격하고, 올 시즌 개막전을 제패한 김아림(30)을 비롯해 LPGA 투어에서 활약하는 양희영(36)과 최혜진(26), 유해란(24) 등이 출전한다. 세계랭킹 1위 넬리 코다(27·미국)는 결장하지만, 2위 지노 티띠꾼(22·태국)과 4위 인뤄닝(23·중국), 5위 릴리아 부(28·미국) 등 정상급 선수들이 우승을 노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