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약 대용품이 된 먼지제거제

2025-02-23

스트레스는 만병의 근원이다. 너무 많아도 너무 적어도 병이 된다. 그래서, 우리는 일상생활 속에서 발생하는 스트레스의 양을 조절하기 위해 다양한 방법을 개발해 왔다. 마취 진통제, 알코올, 니코틴, 카페인은 그 대표적인 예이다. 이들 중 일부는 오남용 때 중추신경계를 손상시켜 흥분·발작·환각과 같은 부작용을 초래할 수도 있고, 내성이 생길 수도 있다. 중독성 약물, 즉 마약류로 분류돼 그 유통 및 사용이 엄격히 규제되는 이유다.

싼값에 손쉽게 구할 수 있어

그런데 언제부터였을까. 마약은 우리에게 익숙한 단어가 되었고, 대한민국은 2016년을 기준으로 마약청정국 지위를 상실하게 되었다. 거래수단이 지능화하면서 마약중독 사건 발생은 더욱 빈번해졌다. 급기야 정부는 2022년 말 ‘마약과의 전쟁’을 선포하고 4대 권역 검찰청에 설치된 마약범죄 특별수사팀을 중심으로 대대적인 마약류 거래 단속에 나섰다. 그러나 이미 중독된 환자들은 재투약의 유혹을 뿌리치기 어려웠을 것이다. 이때였다. 젊은 중독자들 사이에서 컴퓨터 키보드 틈에 쌓인 먼지를 제거하는 데 사용하는 먼지제거제가 마약과 유사한 환각작용을 나타낸다는 소문이 퍼졌다. 특히 이 제품은 소변검사에서 환각물질이 검출되지 않고, 마트나 문방구에서 손쉽게 구할 수 있어 중독자들에게 더욱 매혹적이었다. 그뿐인가. 가격도 2000~5000원으로 너무 착했다. 소문이 확산하자 정부는 2023년 9월 시장에서 판매되고 있던 먼지제거제의 판매를 전면 중단했다. 먼지제거제의 주성분은 액화석유가스(LPG)였다.

한국 청정국 지위 2016년 상실

접착제·해피벌룬도 질식 위험

드라마 등 마약 노출이 부채질

잠재적 중독 물질 사전 검증해야

여기서 떠오르는 그것, 부탄가스. 그렇다. 부탄가스의 성분이 바로 LPG다. 1980년대 우리는 부탄가스나 본드 흡입 후 환각에 빠진 청소년 기사를 자주 접했다. 사건의 빈도와 심각성이 증폭되자 1997년 정부는 19세 미만 청소년에겐 부탄가스를 판매할 수 없게 했다. 이듬해 산업통상자원부는 ‘액화석유가스 안전 및 사업관리법 시행규칙’을 개정해 모든 제품에 쓴맛을 내는 고미제(苦味劑) 첨가를 의무화했다. 흡입 즉시 발생하는 역겨움으로 인해 청소년들 스스로 부탄가스 흡입을 중단하게 하겠다는 것이 목적이었다. 실제로 부탄가스 흡입으로 인한 청소년 범죄사건은 우리의 기억 속에서 조용히 사라져갔다. 그런데 이 LPG가 먼지제거제라는 새로운 유형의 제품에 활용되었고, 좁은 틈 사이의 먼지를 제거하기 위한 집중 분사용 빨대가 추가되었다. 흡입하기 더 편리해진 신제품이 개발된 것이다.

놀라운 것은 마약 대용품으로 이용되는 생활화학제품이 먼지제거제에 그치지 않는다는 것이다. 2023년 미국 국립약물남용연구소는 톨루엔·부탄·아산화질소와 같은 휘발성 화학물질이 향정신성 약물과 유사한 효과를 가진다고 발표했다. 2021년 한 해 동안 12세 이상 미국인의 약 0.8%가 쾌락을 목적으로 접착제, 매니큐어 제거제, 스프레이 페인트, 탈취제와 같은 생활화학제품을 흡입하였고, 약 0.1%가 심장마비·질식과 같은 심각한 건강문제를 경험했다는 조사 내용도 보탰다.

흡입제 뇌세포 직접 손상

흡입제는 기체 또는 에어로졸 상태다. 흡입하면 중추신경계인 ‘후각망울(olfactory bulb)’를 통해 직접 뇌세포를 손상할 수 있고, 호흡기를 통해 전신적인 영향을 나타낼 수 있다. 일례로 아산화질소(N2O)를 채운 해피벌룬을 18세부터 약 10년간 매주 480개씩 흡입한 영국의 한 남성은 심각한 신경 손상과 아급성 척수 퇴행으로 인해 몸이 마비되고 똑바로 설 수도 없게 되었다. 미래에 대한 불안감이나 현실의 막막함에서 벗어나기 위해, 무료함을 달래기 위해, 단순한 호기심으로…. 환각 물질에 빠지는 이유는 다양하다. 그러나 그 결과는 잔인할 만큼 가혹하다.

2017년 우리 정부는 해피벌룬을 흡입한 남성이 사망한 사건을 계기로 해피벌룬의 원료인 아산화질소를 환각 물질로 지정하였다. 그러나 우리는 해마다 해피벌룬을 유통하고 흡입한 범죄 사건을 보도를 통해 접하고 있다. 흡입제의 용도는 매우 다양하다. 아산화질소 판매 중지 때 휘핑크림을 제조하는 커피숍 운영자가 어려움을 겪은 것은 잘 알려져 있다. 유통 및 사용에 대한 법적 규제보다는 위험성에 대한 지속적인 경고가 효과적일 수 있는 이유이다.

최근 마약을 드라마나 영화의 핵심 소재로 이용하는 일이 유행처럼 늘고 있다. 남부러울 것 없는 재벌 3세들이 환각에 빠져 웃고 흐느적거리는 장면은 사건 전개에서 빠지지 않는다. 열 번 찍어 안 넘어가는 나무가 없다고 했던가. 마약을 소재로 하는 미디어가 증가할수록 환각 상태를 직접 경험해 보고 싶은 젊은 시청자들의 호기심은 강해질 것이다. 2023년에 검거된 마약사범 2만 7611명 중 약 35%가 10~20대라는 대검찰청 발표는 이를 잘 입증한다. 미디어는 간접적인 사회경험을 위한 대표적인 도구이고, 호기심은 청소년들의 심리 상태를 표현하는 키워드 중 하나다. 작품의 흥미를 높이는 도구로만 이용하기엔 마약의 늪은 너무 깊다.

지난해 방영된 드라마 ‘커넥션’에서 주인공은 범죄 집단에 의해 강제로 마약에 중독된다. 급박하게 돌아가는 사건들 속에서 주인공의 몸은 잔인하게 망가진다. 다행히 드라마는 처절하리만큼 긴 싸움을 끝낸 주인공이 치료를 통해 건강을 되찾는 것으로 마무리된다. 이젠 신종 마약뿐 아니라 생활화학 신제품들 속에도 마약에 준하는 성분들이 어렵지 않게 발견되는 세상이 됐다. 도시 전체가 마약에 취해 흐느적거리는 악몽이 이 땅에서 재현되는 것을 막으려면 잠재적 중독성 화학물질을 스크리닝할 수 있는 사전검증제의 도입이 필요하다.

박은정 경희대 의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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