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생성형 인공지능(AI) 수요의 전세계적인 폭증에 데이터센터에 충분한 전기를 공급하기 위한 다양한 전력원이 검토되고 있다. 그중 소형모듈원자로(SMR)가 재생 에너지와 함께 데이터센터 전력원의 새로운 해법으로 부상하면서 관심이 쏠린다. 우리나라도 최근 국회에서 SMR 특별법을 발의하고, 이재명 정부도 SMR 개발을 지지하는 입장이다.
SMR은 일반적으로 전기출력 300메가와트(MWe) 이하 성능의 원자로다. 원자로, 증기발생기, 냉각재 펌프, 가압기 등 원자력발전소의 구성요소를 소형화하고 공장에서 사전 제작한 후 현장에서 설치할 수 있는 모듈형으로 설계, 공급된다.
기존 대형 원자력 발전소에 비해 출력이 작고, 공장에서 모듈화해 생산해 단 시간 안에 구축할 수 있다. 자연 순환 냉각과 수동 냉각 시스템을 활용해 대형 원전보다 안정성이 높다는 평가를 받는다. 초기 투자비가 적고 필요한 경우 단계적으로 확장할 수 있어 비용 효율성과 확장성도 좋다. 특정 지역에 한정적으로 건설하지 않고 산업 단지 근처에도 설치할 수 있는 유연성도 장점이다
SMR은 전력을 생산하거나 난방, 해수 담수화 등에 적용 가능하다.
단점과 우려도 있다. 단위 발전량 당 비용이 기존 대형 원전보다 비쌀 수 있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각국 원자력 규제 기관에서 SMR 규정을 제대로 구축하지 못해 규제 미비가 지적된다. 소형이라도 핵폐기물을 배출하기 때문에 대형 원전과 동일한 수준의 사후 관리를 해야 한다. 도심 인근 지역에 설치 가능하다는 부분에 대해서도 환경단체는 안정성과 방사선 노출을 지적하고 있다.
- 전세계 SMR 기술 개발 동향
SMR은 1990년대 들어 본격적으로 개발됐다. 미국은 2000년대 SMR이란 용어를 정립했다.
세계 각국은 독자적인 상용 SMR 기술 개발에 투자하고 있다. 미국은 에너지부(DOE)와 민간 기업이 선도적으로 나섰다. 미국의 NuScale은 전기출력 77~300MWe의 상용 SMR 모델인 ‘VOYGR’를 개발 중이다. 냉각에 복잡한 펌프를 사용하지 않는 자연 순환 냉각 방식을 활용한다. 미국 원자력규제위원회(NRC)는 2022년 NuScale에서 신청한 설계 인증을 승인했다. 그러나 개발비용 증가와 유타 지역 SMR 건설 프로젝트 철회 때문에 주춤한 상황이다. NuScale 외에도 GE히타치(GEH), X-Energy, 홀텍(Holtec) 등 독립 민간기업이 경쟁적으로 기술을 개발하고 있다.
마이크로소프트 창업자인 빌 게이츠도 SMR 개발사 ‘테라파워’를 2008년 설립했다. 테라파워는 최근 6억5000만달러 규모의 새 투자금 모집을 완료했다. 지금까지 20억달러의 투자금과 20억달러 정부 보조금 등의 자본을 확보했다. 특히 엔비디아 자회사 엔벤처스와 한국의 HD현대가 테라파워에 투자해 국내에서 유명하다.
중국은 SMR 상용 운영을 세계 최초로 시작한 국가다. 중국의 HTR-PM은 고온용 가스로 냉각하는 모듈형 원자로를 하이난성 창장에 설치해 2021년 그리드 연결을 완료했다. 2022년부터 상용 운영 중이다.
러시아는 선박용 SMR을 개발하고 있다. 떠다니는 원자로로서 북극 쇄빙선과 페베크 부유식 SMR을 운영중이다.
캐나다는 GEH의 SMR 기술을 활용해 온타리오에 2022년부터 발전시설을 건설중이다. 2028년 상업 운영을 목표로 하고 있다.
프랑스는 정부 차원에서 ‘프랑스 2030 투자 계획’에 SMR 개발을 핵심 프로젝트로 포함시켜 10억~11억 유로를 지원하면서 기술 개발을 독려하고 있다. 프랑스 전력공사 EDF가 ‘Nuward’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고, 경수로 기술을 활용하는 170MWe급 원전을 설계해 2030년대초 상용 운전을 목표로 한다.
폴란드, 루마니아, 우즈베키스탄, UAE 등은 SMR을 에너지 전환 수단으로 채택하고 SMR 선진국과 협력하고 있다.
SMR을 구현하는 방식은 노형 설계, 수동 안전계통, 연료 기술, 열 제거 및 냉각 기술 등에 따라 나뉜다.
노형별로 냉각제로 물을 사용하는 기압수형(PWR)과 비동수형(BWR)이 있다. 헬륨으로 냉각하는 고온가스로형(HTGR), 납을 활용하는 납냉각형(LFR), 플루오르염을 사용하는 융용염형(MSR) 등도 있다.
수동 안전계통 별로 펌프 없이 열 차이로 냉각수를 순환시키는 자연 순환 냉각 방식과 사고 시 중력으로 냉각수를 공급하는 중력 구동 냉각 탱크 방식, 외부 충격 등의 위험을 최소화하는 지하화 설계 방식 등이 있다.
연료 기술 별로 이산화우라늄(UO2)을 사용하거나, 세라믹 구형 고내열 연료로 TRISO를 사용하기도 하고, 고농축 저농도 우라늄(HALEU)을 사용하기도 한다.
SMR은 노형 설계, 수동 안전, 모듈화, 연료, 다목적 활용, 디지털 제어 등의 기술을 조합한다.
- 한국의 SMR 산업 현황
황정아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이달 ‘소형모듈원자로 기술 개발 촉진 및 지원에 관한 특별법안’을 대표 발의했다. 이 법안은 ▲기술 개발 기본 계획 수립 ▲관련 제도 개선의 행정·재정 지원 명문화 ▲민간 기업 육성 및 실증 사업 지원 근거 ▲인력 양성 정책 근거 ▲사회적 수용성 확보 시책 수립 근거 등을 담고 있다.
산업통상자원부는 올해 1000억원 규모의 원전펀드를 조성해 국내 SMR 기술과 수출을 지원한다는 계획이다.
국내에서 SMR 개발은 공기업 중심으로 이뤄지고 있다. 한국전력기술, 한국수력원자력, 한국원자력연구원 등이 SMR 기술 개발과 상용화를 주도한다.
한국전력기술은 혁신형 SMR(i-SMR)을 개발하고 있다. 한국의 SMR 상용화는 미국과 러시아의 원전 기술을 이전받는 과정의 일환으로 이뤄지고 있다. 한국전력기술은 2021년부터 개념설계와 기본설계를 수행했고, 2023년부터 표준설계와 인허가를 위한 2단계 사업을 진행중이다. 상용화 목표는 2031년이다. 한국전력기술은 i-SMR 이전에 중소형 원전인 SMART 원전을 개발했다. SMART형 SMR 개발에 민간기업 컨소시엄도 참여한다.
- 왜 지금 SMR인가
SMR에 대한 관심이 폭발적으로 증가한 건 지난해 대형 클라이드 기업들이 AI 인프라를 수용하는 데이터센터의 전력 공급원으로 검토하면서다.
챗GPT 등장 후 전세계적으로 생성형 AI 수요가 폭증했다. 생성형 AI는 구글 검색의 10배에 달하는 전력을 소모하는 것으로 평가된다. 국제에너지기구(IAEA)는 2026년 AI 데이터센터에 소비되는 전력이 2022년 대비 2.3배 증가할 것으로 전망했다.
클라우드 기업들은 그동안 탄소제로 달성을 목표로 친환경 재생에너지 투자에 적극적이었다. 탄소배출을 최소화하는 것을 넘어 아예 탄소를 배출하지 않는 걸 목표로 한다. 태양광, 풍력 등의 전력 공급원은 각 클라우드 데이터센터의 주요 전력원으로 자리잡았다.
그러나 적어도 메가와트급, 많으면 수기가와트급의 전력을 요구하는 AI 인프라를 대규모로 추가 건립하면서 기존의 재생에너지만으로 전력을 안정적으로 공급하기 어려워졌다. 빅테크들은 이에 안정적인 전력 수급에 초점을 맞추고, 그 해법으로 SMR을 선택했다.
아마존웹서비스(AWS)는 미국 ENW와 협력해 워싱턴주에 X-Energy SMR 건립을 추진중이다. 3억 3400만달러를 투입할 계획이다. 또한 미국 탈렌에너지로부터 데이터센터 단지를 인수해 전력 구매 계약을 체결하고 SMR 도입을 진행중이다. 아마존은 워싱턴, 버지니아, 펜실베니아 등의 주에서 3건의 SMR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다.
구글은 미국 SMR 스타트업인 카이로스파워와 SMR 원자력 구매 계약을 체결하고 500MW의 전력을 공급받기로 했다. 구글은 2030년까지 첫 SMR을 가동하고, 2035년까지 용량을 확장한다는 계획이다.
마이크로소프트는 SMR 및 마이크로원자로(MR) 기술 전문가를 채용했다. 작년 미국 콘스텔레이션에너지와 20년 간 835MW 전력을 공급하는 전력 구매 계약을 체결했는데, 콘스텔레이션에너지는 미국 최대 원전을 소유한 기업이다.
오라클도 최대 3기의 SMR을 사용하는 데이터센터 건설을 추진중이다.
- SMR은 친환경 에너지인가?
SMR은 기본적으로 탄소를 배출하지 않는다. 때문에 빅테크 기업은 SMR을 탄소제로 전력의 일환으로 추진한다.
하지만, RE100 기준에서 재생에너지 전력으로 인정되지 않는다.
RE100은 재생에너지를 태양광, 풍력, 지열, 수력, 지속가능한 바이오매스 등으로 정의한다. 핵에너지는 포함되지 않으며, 핵을 인정할 계획없다고 공개적으로 밝히고 있다.
만약 RE100 기준을 충족해야 하는 기업이라면 SMR을 도입해 전력을 확보하더라도 100% 재생에너지 달성 조건을 충족하지 못하게 된다.
또 다른 친환경 에너지 인증 프로그램인 UN에너지청의 CFE 24/7 인증의 경우 핵에너지도 탄소제로 전력으로 인정한다.
글. 바이라인네트워크
<김우용 기자>yong2@byline.network