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해 정부의 의대 증원 정책에 반발한 전공의의 집단 사직으로 전국 상급종합병원의 주요 수술 건수가 급감했지만, 건강보험이 적용되지 않는 비급여 로봇수술은 오히려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정부가 비급여 관리에 손 놓은 사이 병원들이 수익 보전을 위해 고가의 로봇수술을 대폭 늘린 것이라는 추정이 나온다.
14일 중앙일보가 손해보험업계 자료를 입수해 분석한 결과, 지난해 10개 손해보험사(메리츠·한화·롯데·MG·흥국·삼성·현대·KB·DB·농협)에 접수된 로봇수술 관련 실손보험금 청구 건수는 총 3만6155건, 청구액은 3920억 원에 달했다. 의정갈등 이전인 2023년과 비교하면 청구 건수는 28.2%, 청구액은 35.6% 증가했다. 올해 상반기엔 더 늘었다. 특히 상급종합병원에서 많이 시행되는 4개암(갑상선암ㆍ전립선암ㆍ자궁암ㆍ담낭암)에 대한 로봇수술만 떼어봐도, 지난해 실손보험 청구 건수는 1만961건, 청구액은 1170억원으로 2023년 대비 8.9%, 17.2% 각각 늘었다.
건강보험심사평가원 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2월부터 11월까지 상급종합병원 주요 암 수술 건수는 전년보다 16.8% 감소했다. 건강보험이 적용되는 수술만 집계한 수치다. 의정갈등으로 의료 공백이 길어지며 전반적인 암 수술이 줄었음에도, 비급여 로봇수술은 증가한 셈이다.
이를 두고 의료계 안팎에선 병원들이 의정갈등 기간 진료 수익 감소분을 메우기 위해 이전보다 로봇수술을 환자에게 더 적극적으로 권했기 때문이라고 풀이했다. 건강보험이 적용되는 개복수술이나 복강경(내시경) 수술은 수가가 정해져 있지만, 로봇수술은 비급여라 병원마다 책정한 수술비용이 제각각이다. 최소 10배 이상 비싼 로봇수술을 늘릴수록 병원 수익이 커지는 구조다.
A대학병원 교수는 “이전보다 환자들에게 로봇수술을 더 적극적으로 권하는 분위기다. 병원 운영을 고려하지 않을 수 없는 게 현실”이라고 말했다. 이 병원 관계자는 "병원 차원에서 권장한 건 아니지만, 지난해 운영난을 겪으면서 의료진도 신경쓰지 않을 수 없었을 것"이라고 전했다. 지난해 갑상선암 진단을 받은 정모(43)씨는 갑상선 절제 로봇수술을 받았다. 정씨는 “일반 수술로 하면 7~8개월 대기해야 하고, 로봇수술은 한 달 뒤 가능하다고 했다. 오래 기다리기 불안했고, 흉터가 덜 생긴다고 해 로봇을 택했다”라고 말했다. 남은경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경실련) 사회정책국장은 “일반수술이 주는데 로봇수술만 늘었다는 건 의료적 필요성보다 병원 수입 보전 측면이 작용한 것으로 볼 수 있다”라고 지적했다.

의료 인력 부족 문제도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인다. 지난해 의정갈등 기간 전국 수련병원에서 전공의가 대거 이탈하면서 수술 보조 인력 공백 사태가 벌어졌다. PA(진료지원) 간호사가 빈자리를 채웠지만, 역부족이었다. 로봇수술은 몸에 작은 구멍을 내고 카메라·수술기구를 넣은 뒤 의사가 게임기처럼 조정장치로 기구를 조작해 수술을 한다. 3D 고화질로 수술 부위를 크게 확대해 보여주고, 손 떨림 등을 보완해주는 게 장점이다. B대학병원 관계자는 “로봇수술은 수술을 도울 인력이 비교적 적어도 가능해 지난해 비중이 많이 늘어난 걸로 보인다”라고 말했다.
환자들의 인식 변화도 한몫했다. ‘로봇수술이 더 정교하고 회복이 빠르다’는 인식이 퍼지면서, 고가임에도 로봇수술을 선택하는 환자가 늘었다. 실제 전립선암 로봇수술은 출혈이 적고, 발기신경 보존에 유리하다는 점이 입증돼 대세로 자리잡고 있다. 여기에 실손보험이 대부분의 수술비를 보장해준다는 점도 환자들의 선택에 영향을 미쳤다.
병원마다 제각각…최대 3800만원까지
문제는 로봇수술이 급증하는데도 비급여라는 이유로 관리가 전혀 이뤄지고 있지 않다는 점이다. 수가로 수술비가 엄격하게 통제되는 일반 수술과 달리 병원마다 부르는 게 값이다.
지난해 C대학병원에서 갑상선암 일반 수술을 받은 환자의 수술비는 약 200만원, 이 중 환자 부담은 11만 원(5%)이었다. 그러나 같은 해 D대학병원에서 로봇수술을 받은 환자는 850만원을 냈다. E대학병원은 같은 로봇수술에 대해 3800만 원까지 청구한 것으로 확인됐다. 같은 수술임에도 수백만 원에서 수천만 원까지 차이가 났다.

로봇수술이 비싼만큼 값을 하는지, 비용 효과성에 대한 입증은 아직이다.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서명옥 의원(국민의힘)이 보건복지부에서 제출받은 ‘2023년 로봇보조수술 재평가 보고서(한국보건의료연구원)’에 따르면 34개 로봇수술 적용분야 중 악성부인과질환, 전립선암 등 10개 분야에 대해서만 ‘조건부 권고’ 결론을 내렸다. 나머지는 수술시간이나 수술 효과 등에서 일반수술과 유의미한 차이를 확인할 근거가 불충분했다.
서명옥 의원은 “로봇수술이 비급여라는 이유로 20년째 사실상 방치돼 있다”며 “복지부가 관리 기준과 가이드라인을 마련하고, 급여화 여부도 근본적으로 재검토해야 한다”고 말했다. 남은경 경실련 국장은 “정부가 정확한 로봇수술 실태부터 파악해야 한다. 수술 효과가 있는 질환엔 가격을 통제하는 대신 건강보험을 적용하고, 효과가 없는 쪽엔 사용을 최대한 줄이는 쪽으로 기준을 마련해야 할 것”이라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