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어제도 민원인이 제출한 자료 수백 쪽을 전산화(스캔)하다가 하루가 다 갔습니다.”
서울 일선 경찰서에서 근무하는 수사관 A씨는 17일 중앙일보에 이같이 토로했다. “형사 전자소송 제도가 도입된 이후부터 수백장에 달하는 서류를 일일이 스캔해 형사사법정보시스템에 등록해야 해서 일하기가 상당히 힘들어졌다”고 부연하면서다. 이어 그는 “AI 시대가 도래했는데, 이제서야 수사 기록을 전자화하는 것이 늦은 감이 있다”면서도 “지난달 초과 근무 시간이 80시간이었는데, 아무래도 이번 달엔 100시간을 돌파할 것 같다”고 말하며 한숨을 쉬었다.
지난달 10일부터 시범 도입된 형사 전자소송 제도는 ‘형사사법 절차의 완전한 전자화’를 위해 도입됐다. ‘형사사법 절차에서의 전자문서 이용 등에 관한 법률’에 따라, 경찰은 사건을 송치하기 전부터 종이 기록을 모두 스캔해 전자 기록으로 변환한 다음 검찰로 보내고 있다. 검찰도 별도의 수사 개시 사건이나 특별사법경찰이 송치한 사건 등에 대해선 전자화 작업을 추가로 진행하고 있다. 형사 전자소송 제도는 12월 15일부터 전국으로 확대될 방침이다.

전자소송 제도 도입으로 모든 사건 기록이 전자화된 문서(PDF)형태로 변환·등록되면, 재판부·변호인·피고인·검사가 동시에 기록을 검토할 수 있게 된다는 점이 장점이다. 수만 쪽에 달하는 수사 기록을 경찰→검찰→법원 순으로 옮기던 소위 ‘트럭 기소’ 관행도 사라질 전망이다. 변호인들의 경우 기록 복사에만 수일을 매달리던 문제도 해결되고, 전자소송 포털을 통해 서류 제출도 가능해지게 된다.
다만 제도 도입에 앞서 이뤄졌어야 할 실무적인 준비나 배려가 부족했다는 지적도 나온다. 일선 수사관들 사이에선 특히 ‘업무 과중’을 호소하는 분위기가 감지된다. 수도권 일선서에서 근무하는 수사과장 B씨는 “수사관들이 많게는 40건에서 적게는 20건의 사건을 동시에 배당받는 등 업무 과부하에 시달리고 있는데, 스캔 작업까지 추가돼 애를 먹고 있다”며 “오히려 고소장을 USB로 제출해주는 경우가 정말 고맙게 느껴질 때도 있다”고 말했다. 경찰청에 따르면, 올해 8월 기준 수사관 1인당 보유 사건 수는 27.6건에 달했다. 검찰 관계자도 “CD의 경우엔 스캔이 일괄적으로 되지 않아 하나하나 열어서 문서화한 후 다시 업로드 하고 있는 실정”이라고 밝혔다.
스캔 전담 인력 채용 예정…수사 보안 유지 관건
업무 부담을 호소하는 목소리가 이어지자 결국 경찰·검찰은 서류 스캔을 전담할 인력을 채용하겠다는 방침을 세웠다. 국회 예산결산특별위원회의 ‘2026년도 세입·세출 예산안’ 분석 자료에 따르면, 경찰은 ‘스캔 시스템 사업’ 예산으로 63억6300만원을 편성했다. 이 중 48억7000만원을 들여 전국 152개 관서(시·도청 15곳, 일선 경찰서 137곳)에 관련 인력을 채용·배치한다는 계획이다. 검찰도 32억6400만원을 들여 71명의 인력을 뽑을 예정이다.

최근 서울남부지검과 인천지검 등에서 용역 사업을 시범 실시한 결과, 1인당 하루 평균 3488쪽(연간 87만3923쪽)을 스캔할 수 있다는 결과가 나왔다. 약 80억7000만원에 달하는 검찰·경찰의 예산은 스캔 1쪽당 단가를 113원으로 계산한 결과로, 1년간 7141만5929쪽을 전자화할 수 있는 금액이다.
다만 인력 수급 대책에 대해서도 우려가 나온다. 스캔해야 할 서류에 개인 정보나 수사 기밀이 포함돼 있는데, 스캔에 필요한 인력은 정규직이 아닌 용역을 주는 형태로 충원할 예정이라 유출의 위험성도 적잖기 때문이다. 김영식 서원대 경찰행정학 교수는 “채용 인원에 대한 주기적인 보안 교육이 필요하고, 민감한 자료는 수사 담당자가 직접 다뤄야 수사 밀행성 훼손이 없을 것”이라며 “각 조사실에 스캐너를 추가 배치하는 등의 조치도 병행해 업무 부담을 줄여야 한다”고 지적했다. 나아정 국회 행정안전위원회 전문위원도 “본격 시행 전까지 보안 등급 부여 및 인력 출입 통제 관리방안 등 세부 기준을 정확히 마련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