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구에게, ‘새해’가 된다는 것

2026-01-02

새해가 되면 우리는 서로에게 “복 많이 받으세요”라고 인사를 건넨다. 하지만 고 신영복 선생은 그보다 “복 짓는 새해가 되세요”라는 인사를 즐겨 했다고 한다. 남이 주는 복을 기다리기보다 내가 먼저 타인과 세상에 복이 되고 희망이 되라는 뜻이었을 것이다.

지구적 관점에서 생각해보면, 우리는 필연적으로 누군가의 ‘새해’다. 우리가 살아가며 남긴 흔적이 다음에 살아갈 이들이 맞이할 새날의 토양이 되기 때문이다. 2025년, 유례없이 길었던 산불과 점점 더 견디기 어려워지는 폭염은 앞서 살아간 이들과 오늘의 우리가 남겼던 ‘새해’다. 즉 상호 연결돼 영향을 미치는 우리는 스스로 복을 짓겠다는 각오를 다지지 않는 한, 남겨질 세계에 도리어 불운과 불행을 떠넘길 수도 있다.

처음으로 하늘을 만나는 어린 새처럼, 처음으로 땅을 밟는 새싹처럼 우리는 하루가 저무는 겨울 저녁에도 마치 아침처럼, 새봄처럼, 처음처럼 언제나 새날을 시작하고 있다. 산다는 것은 수많은 처음을 만들어가는 끊임없는 시작이다.

독일의 철학자 한스 요나스는 저서 <책임의 원칙>에서 기술 문명 시대의 새로운 정언명령을 제시했다. “너의 행위의 결과가 미래의 인간 삶의 가능성을 파괴하지 않도록 행위하라.” 그는 인간의 능력이 향상된 만큼 우리의 행위가 미치는 시간과 범위 또한 과거와 비교할 수 없을 만큼 확장됐다고 보았다. 기후위기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주어진 정언명령은 아직 도착하지 않은 생명이 숨 쉴 수 있는 ‘기후적 공간(Climate Space)’을 남겨줄 책임일 것이다.

그러나 현실을 직시할수록 우리는 종종 무력감에 빠진다. “이미 늦었다”는 생각은 책임을 감당하기 어려운 무게로 다가오기도 한다. 새해와 새날에 관한 글을 유독 많이 남긴 신영복 선생은 이런 마음을 향해 이렇게 말한다.

“처음으로 하늘을 만나는 어린 새처럼, 처음으로 땅을 밟는 새싹처럼 우리는 하루가 저무는 겨울 저녁에도 마치 아침처럼, 새봄처럼, 처음처럼 언제나 새날을 시작하고 있다. 산다는 것은 수많은 처음을 만들어가는 끊임없는 시작이다.”

저무는 겨울 저녁이라도 우리의 의지에 따라 아침이 될 수 있다. 지구의 위기에 조금 더 마음을 기울이고, 이웃과 생명을 존중하는 감각으로 나의 일상을 다시 짜는 바로 그 순간이 곧 ‘새해’일 것이다.

그렇다면 올 한 해, 뜨거워진 지구에 서늘한 바람이 되기 위해 최선을 다한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할까. 아마도 절망하지 않고 하루하루를 새날로 만들어가는 일일 것이다. 거대한 위기 앞에서 서로를 포기하지 않겠다는 가장 강력한 연대의 표현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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