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라크부터 찾아간 이란 대통령, 경제제재 완화에 전력

2024-09-19

이란 개혁파 대통령, 중동 정세 막힌 돌파구 여나

이란의 새로운 대통령 마수드 페제시키안이 지난 11일 이라크를 방문했다. 취임 후 첫 방문지로 이웃 이라크를 선택한 데에는 페제시키안 대통령의 외교 노선과 국제질서, 중동 지역 내 국가 간 역학에 비춰 여러모로 중요한 뜻을 내포하고 있다.

무엇보다도 먼저 이라크는 이란의 안보와 경제에 가장 중요한 나라다. 이란은 1979년 이란 혁명 직후 1980년부터 1988년까지 이라크와 전쟁을 치렀다. 하지만 2003년 미국의 이라크 침공으로 사담 후세인 정권이 붕괴한 이후에는 친이란 시아파 정권과 긴밀한 관계를 유지하며 이란에서 이라크를 거쳐 시리아·레바논으로 이어지는 ‘시아파 초승달 지역’을 완성했다.

페제시키안 이란 신임 대통령, 취임 후 첫 방문지로 이라크 선택

유연한 외교 행보 관심, 소수민족 쿠르드 지도자와도 친밀감 표현

미국은 인도~중동~유럽으로 이어지는 전략적 경제회랑 추진 중

중앙아시아서 러시아 영향력 견제하는 미국·이란 협력 가능성도

미군의 이라크 주둔과 이란에 대한 미국과 서방의 제재로 최근 몇 년 동안 이란과 이라크 관계가 더 발전하지 못하였지만, 양국 모두 서로를 전략적 우선순위로 두고 있다. 특히 이웃 이라크와 좋은 관계를 유지하려는 이란의 열망이 여느 때보다 크기에 페제시키안의 이라크 방문은 새로운 돌파구를 마련하리라는 기대를 받고 있다.

수출 대금 110억 달러 회수도 현안

이란이 이라크에 상당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고들 평가하지만, 이라크에 군을 주둔하면서 이란을 제어하려는 미국 때문에 이란은 사실 심한 경제적 고통을 겪고 있다. 미국은 이라크가 이란에 줘야 할 110억 달러(약 14조6000억원)가 이란으로 가지 못하도록 틀어막고 있다. 페제시키안 대통령이 고위급 대표단을 이끌고 이라크에 온 가장 중요한 목표 중 하나가 바로 110억 달러를 돌려받는 것이다.

이라크 은행에 묶인 돈은 이란이 이라크에 수출한 상품과 전기·가스 대금이다. 이라크 정부 역시 이란에 돈을 주고 싶어도 미국의 경제제재를 무시할 수 없어 전전긍긍하고 있다. 우리가 미국의 제재로 이란에 줘야 할 70억 달러를 주지 못했던 것과 같은 상황이다. 따라서 이번 이란 대통령의 방문에서 양국이 어떤 방식으로 문제를 해결할지, 어떤 의견을 나눴는지 관심이 쏠린다.

이란 언론 “놀라운 공공외교” 평가

이란과 이라크의 경제적 현안은 110억 달러에 그치지 않는다. 이란이 그리는 지정학·지경학적 큰 그림에서 이라크는 이란의 가장 중요한 이웃으로 거듭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기 때문이다. 페제시키안 대통령은 이라크 방문 첫날 바그다드에서 수다니 이라크 총리와 회담을 연 뒤 쿠르드애국연합당(PUK)의 압둘 라티프 라시드를 만났다. 이튿날 아르빌에서는 이라크 쿠르드 자치정부 대통령인 네치르반 바르자니, 쿠르드민주당(KDP) 지도자 마수드 바르자니와 대화를 나눴다.

쿠르드 지역을 방문하는 외국 정부 관리는 보통 아르빌만 방문하는데, 페제시키안은 이례적으로 술라이마니야까지 가서 PUK 지도자 바펠 탈라바니를 만났고, 고인이 된 PUK 지도자 잘랄 탈라바니의 무덤까지 방문했다. 아르빌의 KDP와 술라이마니야의 PUK는 경쟁 관계로 서로 사이가 좋지 않다. 그런데도 두 지역이 모두 중요하기에 페제시키안은 양측을 모두 방문했다. 쿠르드 정치평론가들은 페제시키안의 방문을 긍정적으로 보면서 이라크 쿠르드 지도부와 페제시키안이 개인적인 관계를 맺는 기회를 잡았다고 평가했다.

무엇보다도 이번 쿠르드 지역 방문에서 페제시키안의 매력이 돋보였다. 페제시키안 대통령은 아제르바이잔 출신인 아버지와 쿠르드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났다. 쿠르드 지역인 마하바드 태생으로 쿠르드어를 할 줄 안다. 역대 이란 대통령으로는 역사상 처음으로 이라크의 쿠르드 지역을 방문한 페제시키안은 쿠르드어로 묻는 기자의 질문에 쿠르드어로 대답하여 쿠르드 사람들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게다가 시아파 전승에서 코란과 예언자 언행집 다음으로 중요한 이맘 알리의 어록인 나흐줄 발라가를 인용해 “모든 무슬림은 동등하다”며 늘 차별에 고통받는 쿠르드인에게 감동을 선사했다. 이란 언론의 표현을 빌자면 ‘놀라운 공공외교’다.

이라크는 이스라엘과 맞붙는 전선

이란은 이라크의 안보를 자국의 안보와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로 보고 있다. 국경을 맞댄 이라크가 혼란에 빠지면 이란 역시 불구덩이로 빠지기 때문이다. 테러단체 이슬람국가(IS)의 발흥으로 이미 홍역을 크게 치른 바 있기에 더욱 그렇다. 이 때문에 이미 이란은 이라크 정부와 안보 협정을 체결한 바 있다. 아울러 이라크 쿠르드 지역은 이스라엘과 맞붙는 전선이기도 하다. 이란이 시아파 초승달 지역을 이용해 반이스라엘 저항 전선을 구축한 것처럼 이스라엘도 이란과 국경을 맞댄 나라에서 이란을 괴롭히는 반이란 전초기지를 운영하고 있다.

쿠르드인들은 국가를 이루지 못한 채 이란·이라크·시리아·튀르키예 국민으로 살고 있는데, 이란 쿠르드 지역에서 독립운동을 하는 반정부 쿠르드인들이 이라크 쿠르드 지역에서 이란으로 공격을 가하기도 한다. 이스라엘이 모른 체할 리 없다.

이란이 지난 1월 쿠르드 아르빌 지역으로 탄도 미사일과 자살 드론 수십 발을 발사해 저명한 쿠르드인 사업가를 포함하여 적어도 네 명이 사망하고 여러 명이 다쳤는데, 이란은 공격 목표물이 이스라엘 모사드 기지라고 밝힌 바 있다. 물론 이라크와 쿠르드 자치정부는 이를 부인하며 이란을 비난했다.

아울러 이라크 쿠르드 지역은 에너지 통로로 지경학적 고속도로다. 미국과 중국, 미국과 러시아의 갈등 속에서 중동과 중앙아시아를 두고 국제적인 경제회랑 확보 전쟁이 물밑에서 치열하게 벌어지고 있다. 이란은 미국의 제재로 경제가 어려운 상황에서 페제시키안 대통령 취임 이후 어떻게 해서든지 제재를 우회하거나 완화하고자 여느 때보다 더 전력을 기울이고 있다.

삐걱거리는 이란·러시아 관계

지난해 9월 주요 20개국(G20) 정상회담에서 미국이 인도·사우디아라비아·이스라엘 등과 야심 차게 추진하던 인도~중동~유럽 경제회랑(IMEC)이 이스라엘·하마스 전쟁으로 잠정 중단된 상태지만, 미국은 이를 다시 살리기 위해 애쓰고 있다. IMEC는 중국의 일대일로를 무력화하는 경제회랑인데, 회랑에서 제외된 이란 역시 반길만한 무역로는 아니다.

이라크와 시리아를 거쳐 지중해에 도달하려는 이란의 전략적인 계획은 이라크와 시리아에 미군이 주둔하면서 현실화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그러나 이라크 쿠르드 지역과 이라크가 안정되면 이란에서 출발해 바그다드와 이라크 쿠르드 지역, 시리아 북부 지역을 거쳐 시리아의 라타키아 항구까지 도달할 수 있다. 따라서 페제시키안의 이번 이라크 방문은 이란이 이라크 쿠르드 지역과 이라크와 긴밀하게 안보와 경제 관계를 유지하고 심화시키는 초석을 다지는 일이다.

이란은 또한 아르메니아를 통과하는 흑해~페르시아만 회랑을 아제르바이잔을 통과하는 국제 남북 회랑과 연결하려고 하는데, 이를 위해서는 이란에서 아제르바이잔 땅인 나흐츠반을 거쳐 아르메니아로 이어지는 철로를 놓아야 한다.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에서 러시아에 드론을 제공하였음에도 이란은 최근 러시아에 볼멘소리를 하고 나섰다. 러시아가 아제르바이잔이 추진하는 장게주르 회랑에 대한 긍정적인 발언으로 흑해~페르시아만과 국제 남북 회랑을 연결하려는 이란의 노력에 찬물을 끼얹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장게주르 회랑은 아제르바이잔에서 아르메니아를 거쳐 나흐츠반을 거쳐 튀르키예로 연결하는 철로를 말한다. 이 회랑이 건설되면 이란이 꿈꾸는 전략적 회랑이 무산될 뿐만 아니라 러시아군이 이란 국경 근처에 주둔한다. 이란이 반길 수 없는 일이다.

미국과의 관계 개선 성공할까

아르메니아의 러시아 에너지 의존도를 줄이기 위해 미국은 아르메니아와 원자력 발전소 건설 협상을 진행 중이다. 이란은 친이스라엘 행보를 보이는 아제르바이잔보다는 아르메니아에 가깝다. 미국은 궁극적으로 아르메니아가 러시아 가스를 대체해 이란산 가스를 받고, 반대급부로 향후 원자력 발전소에서 생산한 전기를 이란에 공급하도록 허용할까? 러시아·중국·이란을 겨냥한 미국의 중동 및 중앙아시아 정책이 이란에 계속 불리하게 작동할지, 아니면 페제시키안의 유연한 외교 노력으로 새로운 돌파구를 열 수 있을지 관심을 끈다.

다만 현재 페제시키안의 열정적인 노력과는 별개로 이란이 러시아에 탄도 미사일을 공급할지 모른다는 보도가 나왔다. “사악한 계략이자 노골적인 거짓말”이라며 이란은 부인하지만, 만에 하나라도 사실이라면 페제시키안의 외교적 노력은 물거품이 될 전망이다. 이란을 둘러싼 현란하게 복잡한 국제정세는 드라마처럼 흐르고 있다.

박현도 서강대 유로메나연구소 대우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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