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절기, 몸과 마음을 치유하는 밥상의 지혜

2025-06-06

[전남인터넷신문]계절이 봄에서 여름으로 바뀌고 있다. 기온과 습도의 상승, 일조량의 변화는 생체리듬에 영향을 미쳐 자율신경의 균형이 흔들리기 쉽다. 이 시기는 한의학에서 ‘간’과 ‘심’, 즉 간장과 심장의 기운이 번갈아 주도하는 전환기다. 이러한 전환기에 우리 조상들은 음식을 통해 몸을 다스리고 마음을 안정시키는 생활의 지혜를 실천해왔다. 한식은 바로 그 계절의 흐름과 인체의 리듬을 고려해 만들어진 치유의 밥상이다.

겨우내 움츠렸던 몸이 풀리며 신진대사가 활발해지고, 체내에 쌓였던 노폐물을 배출하려는 생리적 움직임이 강해지는 봄철에는 간 기능을 돕고 기의 순환을 원활하게 해주는 나물류가 으뜸이다. 쑥, 냉이, 달래, 씀바귀 같은 봄나물은 단순한 계절 음식이 아니라, 간의 기운을 북돋우고 무기력과 피로를 완화해주는 자연의 선물이다. 봄철 나물무침, 된장국, 봄나물을 활용한 비빔밥은 담백하고 생생한 맛으로 몸을 가볍게 해준다.

봄이 지나는 길목인 단오 때가 되면 전남 지역에서는 예부터 찔레꽃 떡을 만들어 먹는 풍속이 있었다. 이는 단순한 명절 음식이 아닌, 봄에서 여름으로 바뀌는 계절의 변화에 맞서 몸의 불균형을 조화롭게 맞추기 위한 민간 치유의 전통이었다. 찔레꽃은 열을 내려주고 신경을 안정시킨다는 효능이 있어, 단오 떡은 환절기에 쉽게 나타나는 두통, 기침, 기력저하를 예방하는 데 쓰였다.

단오를 지나 여름의 열기가 밀려오는 요즘은 몸의 양기(陽氣)는 급속히 확장되고, 심장의 부담이 커지며 신경계와 순환계에 불균형이 발생할 수 있다. 특히 초여름은 심장의 계절로, 더위와 불면, 기력저하, 무기력증이 겹치기 쉬운 시기다. 이때 필요한 것은 ‘식이 수렴’과 ‘심신 안정’이다. 수분을 보충하고 체온을 조절하며, 자극을 줄인 조리법을 통해 위장을 보호하는 방향으로 식단을 구성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초여름의 대표 식재료로는 오이, 가지, 토마토, 애호박, 수박 등을 들 수 있다. 이것들은 수분이 풍부하고 체온을 낮추는 효과가 있어, 무더위로 인한 신체 스트레스를 완화하는 데 유익하다. 오이는 오이냉국이나 오이무침, 오이소박이로 만들어 입맛을 살리고, 가지는 가지나물이나 가지볶음으로 담백하고 부드럽게 섭취할 수 있다. 수박껍질 장아찌나 토마토숙채는 식탁에 청량함을 더한다.

여름 채소들은 단순히 수분 보충에 그치지 않고, 비타민과 미네랄을 보충하고, 열을 내리는 효과도 겸비하고 있다. 또한 위장이 예민해지는 여름철에는 생채소보다 살짝 익히거나 데쳐서 먹는 것이 소화에 부담을 덜어준다. 조리된 채소는 열에 의해 식물성 섬유가 부드러워져 흡수율도 높아진다. 물김치나 냉국, 데친 나물, 찜 요리 등은 더운 날씨 속에서도 몸을 차분히 가라앉히는 데 도움이 된다.

음식은 이처럼 몸을 조율하는 동시에 마음을 안정시키는 작용을 한다. 여름이 다가오면 불면과 불안, 기분의 기복이 커질 수 있는데, 이때는 결명자차, 감잎차 등 전통차 한 잔이 자율신경을 안정시키는 좋은 대안이 된다. 뜨거운 차를 조금씩 음미하며 마시는 행위 자체가 마음을 가라앉히고 심신의 긴장을 완화시킨다. 아울러 굴, 정어리, 아몬드 등은 ‘심(心)’을 보하고 우울과 걱정을 덜어주는 약선 식재료로 알려져 있다. 여름철에 자주 등장하는 정어리찜이나 굴무침 등은 바로 이러한 이유에서 환절기 보양식으로 손꼽힌다.

현대인은 냉방 기기와 인공조명에 둘러싸인 환경에서 생활하며, 계절의 리듬과 점점 멀어지고 있다. 그러나 여전히 계절은 몸에 말을 건다. 식욕이 떨어지고 피로가 쌓이며 이유 없이 마음이 가라앉는다면, 그것은 몸이 자연의 흐름을 따라가지 못하고 있다는 신호일 수 있다.

이럴 때야말로 계절에 순응하고, 음식으로 조화와 균형을 회복하려는 태도가 필요하다. 제철 식재료를 소박하게, 자연의 맛을 살려 조리한 한 끼 식사는 우리 몸의 자율신경계를 다독이고, 스스로를 회복시킬 수 있는 가장 현실적인 치유이자 예방이다. 자연의 흐름에 순응하는 밥상, 그것이야말로 환절기 건강을 지키는 가장 따뜻한 지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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