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물원에 가면 ‘숲’도 있다
숲길의 평안 알면, 어른도 즐기는 동물원

청주동물원이 환경부 거점동물원으로 지정된 지 1년이 지났다. 그 역할이 알려지면서 진료 의뢰가 종종 들어온다. 세종시 수목원에 사는 반달가슴곰이 밥을 먹지 않고 기력이 쇠한다고 연락이 와서 차에 마취 장비를 싣고 갔다. 입구의 큰 나무들이 수목원의 세월을 말해주고 있었다. 곰사로 안내하는 수목원 직원의 차가 비상등을 깜박이며 앞서간다. 오솔길을 따라가니 곰이 사는 건물이 나왔다. 곰 외에도 여러 동물이 함께 살고 있었지만, 얼마 전 “낡은 건물 속 동물들이 가엽다”는 민원이 다수 접수되면서 다른 동물원으로 옮겨갔다고 한다.
곰의 몸무게를 가늠해보니 150㎏ 정도였다. 주사기를 불어 뒷다리 근육에 마취약을 놓고 기다렸다. 쓰러진 곰은 하얀 거품을 물더니 호흡이 불안정했다. 급한 마음과 달리 들어갈 수 없는 상황에서 조바심을 내봐야 소용이 없었다. 차분히 다음 스텝을 준비하는 것이 생산적인 일이라 기관삽관을 위해 튜브에 윤활 젤을 바르고 후두경 램프가 들어오는지 확인했다. 초조한 마음에 서둘러 막대기로 곰을 건드려보니 미동이 없었고 바로 달려 들어가 입안 가득한 거품을 거즈로 닦아냈다. 기도를 확보해 기관 튜브를 삽관하고 호흡 마취기에 연결했다. 산소로 부풀린 리저버백(Reservoir Bag)을 짜기 시작하자 얼마 후 마취 모니터의 바이털이 정상으로 돌아왔다. 나도 모르게 안도의 한숨이 나왔다.
청주까지 달려야 하기에 화물칸에 누워 있는 곰의 자세를 다시 잡고 출발신호로 운전석 뒤쪽의 칸막이를 두드렸다. 좁은 화물칸에서 곰과 붙어 있으니 특유의 체취가 났다. 몸 어딘가의 통증으로 식욕마저 없었을 곰이 이제야 좀 편하게 잠들어 있다. 긴장도 풀리고 곰의 규칙적인 호흡음을 듣고 있으니 엷은 졸음이 몰려왔다. 가늘게 뜬 눈으로 작게 나 있는 차창 밖을 보니 봄날의 파스텔 색조 나무들이 빠르게 지나간다.
■동물에 가려 안보이던 풍경
과거 전국 수목원들은 산림동물원이라는 이름으로 토종 야생동물들을 전시했었다. 지금은 야생동물 보호 업무가 산림청에서 환경부로 이관됐고 야생생물법과 동물원법도 마련됐다. 그에 따른 영향인지 지금은 대부분의 산림동물원이 폐원했거나 그 과정에 있다.
청주동물원의 시작도 청주시 녹지과에서 운영하던 야생조수관람장이었고 시민들에게 인기를 끌면서 동물원으로 확장됐다. 그런 이유로 당시 지역의 동물원들이 산을 깎아 만든 평지에 들어선 반면 청주동물원은 산에 자리 잡게 되었다. 산에 있어 유아차를 밀어야 하는 젊은 부모들의 원성을 알고 있지만 지형을 어쩔 수는 없다면 현재 상황을 긍정하는 수밖에 없다. 동물원에 갇혀 평생 살아야 하는 토종 야생동물들은 원래 살던 산에서 편안함을 느낀다.
또 방문객들의 시선도 자연스럽게 위를 향하게 되어 보여지는 동물들은 보다 안정감을 느낀다. 대부분의 동물원은 유아와 초등학교 저학년을 지나면서는 가지 않는 곳이 된다. 동물원 운영 방향도 그 연령에 주로 맞춰져 있다. 그러나 전 연령층을 오게 하는 동물원이라면 총방문객 수가 늘어나 경영에도 도움이 될 것이다. 유아차를 벗어난 아이가 부모와 숲길을 걷고, 청소년이 되어 생명의 신비를 배우며, 성인이 되어서는 지친 삶을 치유받는 자연 친화적인 동물원이라면, 모든 연령층이 찾는 공간이 될 수 있다!
숲에서의 편안함은 야생동물만 느끼는 것일까? 인간도 700만년 전 땅에 내려오기 전에는 나무 위에 살았다. 긴 팔과 구부러지는 손가락은 나뭇가지를 잘 잡을 수 있다. 정면에 나란히 있는 두 눈은 나무 틈새에 있는 맛있는 곤충을 입체적으로 보고 집어 올릴 수 있고 망막의 원추세포는 과일이 잘 익었는지를 알 수 있다. 나무는 육식동물을 감시하고 피할 수 있게 해주는 안식처였다. 어린 시절 시골집 다락방은 사다리를 놓고서야 간신히 올라갈 수 있는 곳이었다. 작은 키마저 숙여야 하는 낮고 작은 공간이었는데 들어가 앉아 있으면 왠지 마음이 편했다. 허클베리 핀과 톰 소여가 올라가 놀던 나무 위 오두막집은 어린 시절 로망이며 피터 팬과 아이들이 나무 위에 사는 것은 우연이 아니다.
동물원 입사 후 줄곧 동물만 보고 다녔다. 풀과 작은 나무는 동물이 먹는 먹이였고 가끔 중독을 일으켜 해결해야 하는 원인이었다. 큰 나무는 동물이 올라가 쉬는 목재였다. 살아서 그 자리에 늘 서 있던 나무는 그저 스쳐가는 배경에 불과했다. 그래서인지, 한동안 나무의 이름이 궁금하지 않았다. 그러던 어느 날 트럭이 후진하다가 나무를 받아 상처를 낸 적이 있다. 껍질이 벗겨지고 나무에 구멍이 났다. 한참이 지나고 우연히 본 나무는 스스로 구멍을 메우고 있었다. 한번은 유럽 산양인 무플론이 방사장에 있는 나무의 껍질을 벗겨 먹더니 급기야 나무가 달고 있는 잎이 전부 말라 죽었다. 나무가 쓰러져 동물사를 덮칠 수 있다고 해 결국 베어냈다.
거의 매일 보는 나무인데 이름조차 모르는 것에 마음이 쓰이기 시작했고 공주대 예산캠퍼스에 있는 충남야생동물구조센터에 자문하러 갔다가 수목 치료기술자 양성과정에 대해 듣게 되었다. 직장인도 가능한 주말반이라 바로 등록했다. 금요일은 밤늦게까지 온라인으로, 토요일은 대면으로 종일 수업을 들었다. 오전 수업에 늦지 않으려면 토요일은 새벽에 일어나야 했다. 주말 밀린 잠을 포기하기 쉽지 않았지만 날이 갈수록 모르던 나무에 대해 알아가는 것이 즐거웠고 달리는 차의 환풍구로 들어오는 아침 공기에선 가로수가 내뿜는 나무 향이 나는 듯했다. 수강생들의 절반 정도는 생업과 관련 없이 그냥 나무가 좋아서 오신 분들이었다. 함께 배우고 밥 먹고 차 마시고 나무에 대해 이야기했다. 좋은 것을 보고 듣다 보니 마음도 밝아졌다. 4개월 과정 중 한 달이 남았는데 헤어짐이 벌써 아쉽기만 하다.

이제는 동물원을 돌며 자주 눈에 띄는 나무의 이름을 안다. 물과 양분을 전하는 길이 껍질 부분에 있고 세포가 죽고 쌓이면 안쪽에서부터 두꺼워져 우리가 목재로 알고 있는 나무가 된다. 출근길 아침, 주차장에서 처음 마주치는 청단풍은 손바닥 같은 잎을 인사하듯 흔들어댄다. 붉은색 날개를 단 시과는 씨앗을 조금이라도 멀리 보내려는 청단풍의 고민이다. 정문 앞 매표소에는 큰 상수리나무가 문지기처럼 자리를 지키고 있다. 큰 키로 방문객들을 안내하고 넉넉한 잎과 가지로 기다리는 시간에 그늘이 되어준다.

입구에 들어서면 수달사를 지나 호랑이사까지 촘촘한 잎을 단 느티나무가 뜨거운 햇볕 아래 짙은 터널을 만들었다. 스라소니가 옆 덱길을 지나니 스라소니 수염 같은 두 잎 길쭉한 소나무가 시원한 바람 소리를 낸다. 졸참나무 아래에 사는 염소와 돼지는 낙엽 속을 뒤지며 작년 도토리를 감질나게 찾고 있다. 하지만 가을이 되면, 하늘에서 마구 떨어지는 도토리 덕분에 몸도 마음도 즐거워질 것이다. 물새장 옆 다리에선 낙엽송 고목이 손에 닿을 듯 가깝다. 봄부터 쇠딱따구리가 짝을 찾는 드러밍(drumming)을 하더니 지금은 높이가 다른 여러 개 구멍이 산새들의 다세대주택이 되었다.

지리산에 갔을 때 그해 도토리 수확량을 측정하는 깔때기 모양의 무명천을 본 적이 있다. 양에 따라 반달가슴곰들이 겨울을 잘 날 수 있는지를 가늠해볼 수 있다고 했다. 동물원에도 도토리가 열리는 상수리나무, 졸참나무, 갈참나무, 신갈나무가 있다. 도토리만으로도 동물원에 갇혀 사는 동물들의 간식뿐 아니라 먹고 지방을 축적한 다람쥐가 겨울잠에서 깨지 않고, 도토리거위벌레가 도토리를 육아방으로 활용해 생을 이어간다. 동물원 속 나무숲은 알면 알수록 다양한 생물들로 가득 차 있어 더욱더 활기차다!
김정호 수의사
야생동물의 구조와 보호를 주목적으로 하는 ‘특별한 동물원’ 청주동물원에서 20년 넘게 수의사로서 일하고 있다. 야생동물 수의사가 되고 싶었으나 수의대 졸업 당시 야생동물을 치료하며 사는 직업이 없어 대안으로 동물원에 입사했다. 동물원이 갈 곳 없는 야생동물들의 보호소이자 자연 복귀를 돕는 야생동물 치료소가 되기를 희망한다. 저서로는 <코끼리 없는 동물원>(2021)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