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한부 전처 죽고 정신이상 온 임채무, 재혼할 수밖에 없었던 사연

2025-06-28

1970년대 중반 데뷔해 몇 년의 무명생활을 거친 뒤 1980년대에 이르러 전성기를 맞이한 임채무. 그는 중후하고 남성적인 이미지로 많은 사랑을 받으며 여성들 사이에서 엄청난 인기를 끌었다. 특히 1984년 당대 최고의 드라마 ‘사랑과 진실’에서 주연을 맡으며 최고 스타의 반열에 올랐다. 하지만 거의 30대가 될 무렵에야 인기를 얻은 탓에 전성기가 그리 길지는 못했다. 게다가 결혼을 일찍 한 것도 짧은 전성기에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인다.

1978년 당시 무명이었던 임채무는 자신보다 7살이 어린 성우 박인숙과 결혼했다. 박인숙은 MBC 성우극회 7기 출신으로 다수의 애니메이션과 라디오 드라마의 더빙을 맡으며 깊은 인상을 남겼다.

지인의 소개로 만난 두 사람은 슬하에 1남 1녀를 뒀다. 임채무는 과거 한 방송을 통해 박인숙과의 결혼 스토리를 공개한 바 있다. 당시 임채무는 “아내를 처음 본 지 15분 만에 청혼했고 3시간 만에 장인어른을 설득해서 결혼 승낙을 받았다. 그리고 만난 지 3개월 만에 결혼했다”라고 밝히며 직진남의 면모를 보였다.

그렇게 저돌적으로 결혼한 두 사람이지만 박인숙이 결혼 37년 만인 2015년 59세의 나이에 췌장암으로 별세하면서 이별을 맞았다. 그리고 지난 6월 17일이 고인의 사망 10주기였던 가운데 임채무의 인생 스토리가 재조명되고 있다.

아내 박인숙은 결혼 생활 중 췌장에 혹이 생겨 3개월 시한부 판정을 받았다. 임채무는 그런 아내를 정성껏 간호하며 곁을 지켰지만 박인숙은 조용히 병마와 싸우다 남편의 곁을 떠났다.

임채무는 2015년 12월 SBS ‘한밤의 TV 연예’를 통해 고인을 떠나보낸 심경을 조심스레 전했다. 임채무는 “아내가 6개월 전 좋은 곳으로 갔다”면서 “아내는 자신이 암 투병 중인 사실을 외부에 알리고 싶어 하지 않았다. 그래서 가까운 지인들조차 아내의 병을 몰랐다. 가장 힘든 순간까지 아내는 혼자서 묵묵히 견디려 애썼다”라며 먼저 간 아내를 담담하게 회상했다.

하지만 아내가 떠난 뒤 임채무는 깊은 상실감에 빠져 우울증과 환각 증세를 겪으면서 고통의 시간을 보냈다. 이에 그는 “정신적으로 힘들어서 재혼을 결심했다”라고 털어놨다.

2017년 10월 MBN ‘속풀이쇼 동치미’에 출연한 임채무는 “아내가 암에 걸리고 2개월 정도 지났을 무렵 주치의가 날 부르더니 부부 사이가 좋았냐고 묻더라. 그래서 ‘나는 좋았다고 생각하는데 아내가 어떤지는 잘 모르겠다’라고 대답했다. 그러자 의사가 ‘부부 관계가 좋았다면 재혼을 꼭 하세요’라고 하더라. 그때는 이게 무슨 말인가 하고 단호하게 싫다고 거절했다. 하지만 아내가 떠나고 3개월 뒤에 정신에 이상이 생겼다. 버티기 힘들었다. 점점 무너지더라. ‘나도 따라갈까, 여기서 뛰어내릴까’란 생각까지 했다. 차즘 피폐해져 갈 때쯤 ‘아, 내가 건강하고 행복해야 주변도 건강해지는구나’라는 걸 깨달았다. 그래서 재혼을 하게 됐다”라고 재혼의 배경을 솔직하게 밝혔다. 임채무는 아내를 보낸 지 1년 만인 2016년 김소연 씨를 소개받고 재혼했다.

한편 임채무는 34년째 경기도 양주시 장흥면에 놀이공원 ‘두리랜드’를 운영 중이다. 어릴 적 꿈이었던 ‘놀이공원 사장님’이 되고 싶어 전 재산을 털어 사업을 시작했다. 하지만 현재 빚만 수십억이다. 그의 표현을 빌리자면 정확히 ‘140억’ 정도라고 한다.

‘두리랜드’는 1990년 개장할 때부터 대출을 받아 시작한 데다가 IMF가 터지면서 상황이 더 악화됐다. 게다가 입장료도 받지 않았던 탓에 수입은 줄고 운영비는 쌓여 결국 빚만 늘었다. 하지만 계속되는 적자를 안고도 임채무는 ‘두리랜드’의 운영을 포기하지 않았다. 그는 “다른 걸 해볼까도 생각했지만 재미있는 게 없었다. 역시 이게 제일 재밌다”라고 그 이유를 밝혔다. 워낙 아이를 좋아했던 그이기에 사업을 접을 수 없었던 것.

이러한 와중에도 임채무는 ‘두리랜드’ 직원들에게 18평 아파트를 한 채씩 선물한 것으로 알려졌다. 임채무는 과거 채널A ‘풍문으로 들었쇼’에 출연해 “당시에는 그래도 빚이 이 정도로 많지는 않았다. 충분히 갚아 나갈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오픈할 때 직원들한테 ‘3년 이상 근무하면 아파트를 사주겠다’고 약속한 게 있었다. 그 약속을 어길 순 없지 않나. 그렇게 총 26명한테 아파트를 선물했다. 지금도 그 아파트에 사는 직원이 있다”라고 전했다.

하지만 결국 빚에 쪼들린 그는 자신이 소유하고 있던 여의도의 67평 고급 아파트 두 채를 급매로 정리했다. 그리고 자신은 재혼한 아내와 함께 두리랜드 화장실 한편에서 군용 침대를 놓고 노숙 생활을 했다.

이에 대해 임채무는 “서글프고 비참한 생각도 들었지만 그때부터 사랑이 싹텄다”라며 “매일 가까이 붙어 있고 마음에 있는 얘길 숨김없이 나누면서 사랑이 더 깊어졌다”라고 털어놨다.

임채무는 “아내와 첫 데이트에서 김밥 한 줄을 먹었고 며칠 후 같이 살자고 고백했다. 꽃 한 송이도 안 받고 김밥 한 줄에 넘어온 여자다. 그렇지만 아내는 지금도 후회하지 않는다고 하더라”라며 미소 지었다.

사연이 알려진 후 두리랜드에 많은 사람들이 방문하면서 현재는 인기를 누리며 적자를 줄여가고 있다. 심각한 재정난으로 2017년 문을 닫기도 했지만 2020년에 재개장해 정상 운영 중이다. 이전까지는 가난한 아이들을 위해 입장료를 받지 않았지만 시설 유지를 위해 부득이하게 지금은 입장료를 받고 있다. 중학생 이상의 대인은 2만원, 24개월~초등학생까지의 소인은 3만원, 만 65세 이상의 노인은 1만원, 24개월 미만의 영유아는 무료인 것으로 알려졌다.

김수진 기자 sjkim@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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