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커밍 어스
페리스 제이버 지음
김승진 옮김
생각의힘
먼 옛날 지구가 젊었을 때, 심해 해양지각에 사는 미생물들은 무거운 현무암을 산과 효소로 녹여 분쇄하면서 에너지와 양분을 얻었다. 분쇄한 광물들은 점토가 되고, 점토는 물기를 많이 머금은 채 지각의 물질 순환에 빨려 들었다가 가벼운 화강암이나 여러가지 다양한 광물이 되었다.
현재 화강암질 대륙지각은 현무암질 해양지각 위에 떠있다. 달이나 다른 행성들과는 달리 현재 지구에는 화강암이 풍부하고 광물의 종류도 극도로 다양한데, 이는 생물들의 활동이 만들어낸 결과이다.
이 책의 구성은 반복적이다. 물질의 총량이 많은 순서대로로 암석, 물, 대기에 대한 이야기를 3부로 구성하고, 각 부의 첫 장은 미생물이 땅과 물과 대기의 층에 어떻게 작용했고 작용하고 있는지, 둘째 장은 더 크고 복잡한 생명체들이 어떻게 현재의 핵심적 변모를 일으켰는지, 셋째 장은 최근 우리 인류가 지구를 얼마나 빠르게 변화시켰는지를 이야기한다.
이를테면 식물은 뿌리로 빨아들인 물을 잎사귀에서 수증기로 방출한다. 그래서 무성한 숲에서는 식물이 증발시키는 수증기가 토양에서 직접 증발하는 수증기보다 많다. 또 숲에는 바이러스, 미생물, 꽃가루, 곰팡이 균사, 잎·나무껍질·털 조각 등 다양한 유기물질 조각들이 방출되어 공중으로 올라간다. 이런 미세 유기물 조각들은 숲이 뿜어낸 수증기와 만나 구름을 만들고, 여기서 비가 내리면 숲이 더 성장한다.
즉 숲은 비와 물의 순환을 촉진한다. 아마존 숲은 매일 200억톤의 물을 대기 중으로 방출하는데, 이는 아마존 강이 매일 바다로 내보내는 물의 양보다 약간 많다. 이 수증기들은 남미로 퍼져 곳곳에 비를 내리게 하고, 연쇄적인 물 순환 과정을 거쳐 북미 대륙의 강수량도 좌우한다. 아마존 숲이 사라지면 미국 서부 시에라 네바다 산맥의 눈 덮인 지역이 절반으로 감소할 것이란다.
특히 인류의 작용은 산업혁명기 이후의 일만은 아니다. 과거 북반구는 매머드만 아니라 마스토돈, 코뿔소, 들소, 곰, 사자, 늑대, 사향노루 등이 서식하는 매머드 대초원으로 덮여 있었다. 5만 년에서 1만 년 전, 인간은 대형 동물을 꾸준히 사냥했고, 그렇게 야기된 생태계 변동 때문에 매머드 대초원은 종 다양성이 부족한 현재의 시베리아 침엽수림에 자리를 내주었다. 시베리아에 대형 초식동물들을 풀어 놓아 생태계 다양성을 회복해보려는 프로젝트 '홍적세 공원'의 책임자 말에 따르면 시베리아의 숲은 "매머드 대초원의 공동묘지를 덮고 있는 잡초”란다.
이처럼 생태계와 지구는 서로 구별된 존재가 아니라, 생태계가 지구를 구성했고 현재도 구성하고 있기에 인간을 포함한 생태계가 곧 지구라는 것이 책 제목 『비커밍 어스』(Becoming Earth)에 담긴 뜻이리라. 그럼 뒤집어 지구가 생태계를 낳은 것은 아닐까? 지은이는 그럴 가능성을 열어두고 있는 듯하다. 저명한 SF작가 킴 스탠리 로빈슨의 소설을 빌려, 지구 생물이 다른 행성계에서는 살아갈 수 없을 가능성을 소개한다.
책 말미에 재작년 타계한 제임스 러브록과의 인터뷰를 소개한 것에서도 알 수 있듯이 러브록의 가이아 가설이 이 책을 구상한 동기였다. 지은이는 이에 대한 미련을 완전히 떨쳐버리지는 않은 듯하다. 분명 가이아 가설은 지구시스템에 대한 인식이 바뀌기 시작하게 만든 방아쇠였다. 생명계과 무생명계의 경계가 전지구적 규모에서도 명확하지 않다는 점은 절대로 잊지 말아야할 지침이다.
하지만 지은이도 강조하듯이 “지구에 ‘최적’ 상태라는 것은 없다.” 지구는 특정 상태를 향해 목적의식적으로 이행하지 않는다. 책에 소개된 무수한 연구들이 보여 주듯이, 이제는 어머니 여신 가이아로부터 독립해서 생물과 무생물을 모두 아우른 지구시스템 자체를 바라보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