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피지기(知彼知己)면 백전불태(百戰不殆)’라는 말이 있다. 적을 알고 나를 알면, 백번 싸워도 위태롭지 않을 수 있다는 말이다. 이와 댓구를 이루는 ‘부지피부지기(不知彼不知己)면 매전필태(每戰必殆)’라는 말도 있다. 적을 모르고 나도 모르면 매번 싸움이 위태롭다는 뜻이다. 이 말은 비단 사람들끼리 부딪치는 전쟁터에서뿐 아니라, 내 몸속에서 은밀하게 이루어지는 쟁투의 해결, 즉 질병과 그 치료에도 훌륭히 적용된다.
먼저 알고, 맞춰 치료한다
몸에 이상이 생겨 병원에 가면 가장 먼저 하는 일은 각종 검사다. 체온과 혈압·맥박·호흡수와 같은 활력 징후(vital sign)를 측정하고, 의사가 청진과 문진 등을 통해 직접 상태를 진찰하는 것은 가장 기본이다. 여기에 필요하면 소변이나 혈액을 채취해 검사를 진행하기도 하고, 엑스레이(X-ray)나 초음파·CT·MRI 같은 영상 검사를 통해 간접적으로 인체 내부를 들여다보거나, 내시경이나 복강경 등을 통해 직접 몸속을 들여다보는 다양한 검사가 추가되기도 한다. 이러한 검사 과정은 매우 중요하다. 이 과정을 통해 우리는 적(질병의 원인)뿐 아니라 나 자신(환자의 건강 상태 및 반응 정도)에 대해 알게 되며, 이 검사 결과를 통해 병인과 상태를 진단할 수 있다. 평균적으로 사전 진단검사 자체에 소요되는 비용은 전체 의료비의 5%에 불과하지만, 이 결과값은 향후 치료의 방향을 결정하기에 전체 의료비 70%의 사용처가 좌우하는 중요한 일이다. 비슷하게 발열과 기침을 호소하는 환자라 하더라도 세균성 폐렴이라면 항생제를, 독감이라면 타미플루를 써야 하지만, 그저 단순한 감기라면 진해거담제와 해열진통제만으로도 충분히 호전될 수 있는 것처럼 말이다.
진단·치료 동시에 치료진단학
방사선 항암치료 과정이 시작
나노기술 더해 활용범위 확대
사회병폐에도 적용되는 진리
하지만 대부분의 환자는 이 진단을 위한 검사 과정을 번거롭거나 불필요하게 여기곤 한다. 의학적 처치를 바라는 이들의 목적은 현재의 통증과 불편함을 빠르고 효율적으로 해결하는 것에 맞춰지곤 하는데, 검사는 병증을 해결하지 못할 뿐 아니라, 종종 추가적인 불편함을 감수해야 하는 경우도 많다. 그렇게 기다려 검사 결과가 나오더라도, 실제 치료에 들어가는 건 이후의 일이며, 치료에는 또 다른 비용이 들기 마련이다. 그러니 생각이 아니 들 수 없다. 진단과 치료가 동시에 진행될 수는 없는 걸까.
아이오딘의 두 얼굴
치료학(therapeutics)과 진단학(diagnostics)이라는 단어가 더해져 만들어진 치료진단학(Theranostics)은 바로 그러한 요구에 부응하는 것처럼 보인다. 치료진단학은 방사선 항암 치료 과정에서 처음 시작되었다. 암세포가 위험한 이유 중 하나가 바로 전이될 수 있다는 것이다.
이 특징 때문에 처음 생긴 암(원발암)을 제거한 이후에도 전이암으로 인한 재발 가능성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하지만 아직 덩어리를 이루지 않은 작은 암세포가 전신의 어디에 어느 만큼 퍼져 있는지 일반적인 영상검사로는 도무지 파악할 길이 없었다. 이럴 때 도움이 되는 것이 조영제다. 조영제는 인체의 특정 조직이나 혈관 등과 잘 결합하는 특성이 있어, 영상검사에서 세밀한 혈관의 모습이나 암세포 등을 뚜렷하게 구분할 수 있게 해주는 약물을 말한다.
예를 들어, 아이오딘 조영제는 갑상선 세포들을 뚜렷하게 구분하는 데 효과적이다. 갑상선에서 분비되는 갑상선 호르몬을 만드는 데 필수적인 요소가 바로 아이오딘이기에, 갑상선 세포들은 혈액 속에 존재하는 아이오딘을 끌어들여 농축하는 특성을 가진다. 따라서 인체에 해롭지 않은 아이오딘-123으로 만든 조영제를 투여하면, 영상검사에서 갑상선과 갑상선에서 유래한 암세포들이 뚜렷하게 보여 구분이 쉬워진다. 그런데, 조영제에 포함된 아이오딘-123을 세포를 파괴하는 기능을 가진 아이오딘-131로 바꾸면 어떨까. 이 약물은 진단 기능을 하는 조영제처럼 갑상선 암 세포들에 결합하는 동시에 방사선 항암제로서 암세포를 파괴하는 치료제의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이다. 진단과 치료의 두 마리 토끼를 한꺼번에 잡은 셈이다.
개인 맞춤 약물의 미래
이후 치료진단학은 표적 항암제를 중심으로 발전해 왔다. 특정한 암 세포만을 골라서(진단) 이를 효과적으로 파괴(치료)하므로, 치료와 진단이 결합하는 동시에 개인의 신체 특성에 맞춰 부작용을 최소화하는 방식으로 접근하는 맞춤 의학으로 진화되어 왔다. 최근에는 나노기술이나 유전체학 등과 결합하여, 개개인의 특성에 부합하여 부작용을 최소화시키고, 암 치료를 넘어 병변 부위에만 국한해 효과적으로 약물을 전달하고, 유전질환을 치료하는 분야까지 확장되고 있기에 그 활용 범위가 점차 확대되고 있다. 질병에서 진단의 정확성은 치료의 효율성을 판가름하는 잣대가 된다. 그건 신체적 질병에도 사회적 병폐에도 모두 적용되는 진리일 것이다.
이은희 과학커뮤니케이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