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년 만에 병명 알았다" 희귀질환자 희망된 진단사업

2024-12-15

8살 박이준 군은 태어나기 전부터 뱃속에 물이 차는 등 이상 신호가 나타났다. 세상에 나온 뒤엔 발달 지연과 뇌성마비, 호흡·식이곤란 등의 크고 작은 증세가 이어졌다. 지금은 집에서 온종일 누워 지내고 있다. 그간 여러 병원을 돌면서 염색체 등 각종 검사를 다 받아봤지만, 뚜렷한 병명이 나오지 않았다.

하지만 올해 질병관리청의 희귀질환 진단 지원사업 대상이 되면서 희망이 생겼다. 정밀 유전자 검사를 거친 뒤 10월 양산부산대병원에서 '하쥬체니 증후군' 진단을 받았다. 치아 이상과 난청, 골절 등을 일으키는 유전성 희귀질환이다. 박군이 싸워야 할 대상이 보다 명확해진 것이다. 어머니 하이슬씨는 "이 병이 모든 증상을 설명할 순 없지만, 앞으로 아들 병세가 어떻게 될지 예측이라도 가능해졌다. 희귀질환 산정특례 대상이 되면서 의료비 부담이 줄어든 것도 가계에 큰 도움이 된다"고 말했다.

2012년 시작된 희귀질환 진단 지원사업은 수도권보다 희귀질환 검사·진단 인프라 접근성이 떨어지는 지방 환자들을 위한 정책이다. 권역별 주요 병원이 희귀질환 의심환자 혈액을 채취해 전문검사기관으로 보낸 뒤 유전자 검사 등을 진행하고, 양산부산대병원이 최종 진단을 내린 뒤 그 결과를 공유하는 식이다.

환자는 검체 채취 후 4주 정도면 1000여개 희귀질환에 해당하는지, 정확한 병명은 무엇인지 등을 알 수 있게 된다. 병원을 찾아 떠도는 '진단 방랑' 없이 집 근처에서 진단받고, 맞춤형 치료도 안정적으로 받을 수 있다.

특히 환자뿐 아니라 가족(부모·형제)까지 검사 지원이 이뤄진다. 유전적 요인이 큰 희귀질환은 추가 발병 위험이 높은 게 반영됐다. 이에 따라 수십만~수백만원의 검사비를 아낄 수 있다. 검사 결과 희귀질환자로 인정되면 산정특례 대상으로 진료비 본인 부담률이 0~10%까지 떨어진다. 장기간 치료에 따른 경제적 부담을 대폭 줄이는 것이다. 진단 결과 '음성'으로 나와도 희귀질환에 걸렸다는 두려움에서 벗어날 수 있다.

올해는 400명 넘는 환자가 혜택을 받았다. 희귀질환 특성상 어린 환자가 많지만, 뒤늦게 빛을 찾은 경우도 적지 않다. 전종근 양산부산대병원 소아청소년과 교수는 "증상이 시작된 지 10년 넘었는데 검사·진단을 받게 된 사람만 50명 이상이다. 30여년 만에 어떤 병인지 알게 된 환자도 있다"고 말했다.

지난 9월 PPP2R5D라는 신경발달 장애 진단을 받은 전서준(3)군 어머니는 "당장 치료법이 바뀌는 건 아니지만, 그동안 정보가 없어 답답했던 게 풀렸다"고 말했다. 김존수 충북대병원 소아청소년과 교수는 "비수도권에서 받기 어려운 검사·진단이 이뤄지면 적절한 치료법을 찾는 건 물론이고, 다음 세대 유전 가능성 확인에도 도움이 된다"고 밝혔다.

정부는 이 사업을 꾸준히 확대하고 있다. 의료계에서도 도움이 필요한 환자가 여전히 많은 만큼 안정적 지원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김지영 질병관리청 희귀질환관리과장은 "내년엔 예산을 두 배가량 늘려서 환자 800여명에게 검사·진단이 이뤄질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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