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사에 대한 실질적 위험, 합리적 근거와 함께 비례성 인정되어야"
최근 고려아연의 경영권 분쟁 사건으로 인해 경영권 방어 수단 중 하나인 포이즌필이 주목받고 있다. 포이즌필은 특정 주주가 경영권에 영향을 미칠 정도로 많은 주식을 취득할 경우, 다른 주주들에게 시가보다 낮은 가격에 주식을 매입할 수 있는 권리를 부여하는 제도이다. 이를 통해 특정 주주의 지분이 희석되면서 경영권 인수가 어려워지는 효과가 발생한다.
포이즌필이 존재하면 경영권 인수 시도자와의 협상력이 높아져 기업가치 저평가 및 적대적 인수 시도를 방지할 수 있고, 경영권 방어를 위한 기업 자원의 불필요한 소모를 줄여 장기적인 주주가치 제고에도 기여할 수 있다. 반면 포이즌필로 인해 기존 주주들이 경영권 인수자로부터 프리미엄을 받고 주식을 매각할 기회를 상실하거나 무능한 경영진을 교체하지 못하는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는 비판도 존재한다. 특히 경영진이 포이즌필을 남용할 경우 경영진 보호 수단으로 변질될 위험이 있다. 예를 들어, 경영권을 장기적으로 유지하려는 이사회가 포이즌필을 경영권 인수 시도를 원천 차단하는 방식으로 활용할 경우, 경영진의 독단적 운영을 초래할 수 있다. 이는 결국 기업 운영의 효율성을 저하시킬 뿐만 아니라 주주들의 이익을 훼손하게 된다.
포이즌필 도입엔 상법 개정 필요
포이즌필은 모든 주주가 행사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경영권 인수를 시도하는 주주를 제외한 나머지 주주들만 행사할 수 있는 권리이므로, 우리 상법의 기본원칙인 주주평등원칙에 위배될 소지가 있다. 이에 따라 포이즌필을 도입하려면 상법 개정이 필요하다. 우리나라에서는 과거 몇 차례 포이즌필 도입을 위한 상법 개정안이 발의되었으나, 모두 임기 만료로 폐기되었다.

포이즌필은 미국에서 고안된 경영권 방어 수단으로, 그 제도의 발전 과정을 검토하는 것은 도입 여부를 논의하는 데 유의미한 시사점을 제공할 수 있다. 아래에서는 미국에서의 포이즌필 관련 주요 판례가 어떻게 발전해 왔는지 살펴보겠다.
미국 델라웨어 회사법 제141조(a)와 제157조는 포이즌필 도입의 근거가 되는 조문이다. 제141조(a)는 회사의 모든 사업 및 업무는 이사회가 관리하거나 그 지시에 따라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고, 제157조는 이사회가 주주들에게 특정 조건하에서 회사 주식을 매입할 권리를 부여하는 옵션을 발행할 수 있다고 명시하고 있다. 이를 근거로, 포이즌필 도입은 회사의 업무 범위에 포함되며, 이사회가 특정 조건에서 기존 주주들에게 할인된 가격으로 추가 주식을 매입할 권리를 부여하는 것이 가능하다고 해석된다.
미 델라웨어 주 법원에서 포이즌필의 유효성이 최초로 인정된 사건은 Moran v Household International, Inc.(1985)이다. 이 사건에서 Household International, Inc.의 이사회는 적대적 인수를 방어하기 위해 특정 조건 충족 시 기존 주주들에게 우선주 매입권을 부여하는 방식의 포이즌필을 도입하였다. 델라웨어 주 대법원은 Unocal Corp. v Mesa Petroleum Co.(1985)에서 확인된 비즈니스 판단 원칙(Business Judgment Rule)을 적용하여, 이사회의 적대적 인수 사전적 방어 조치로서 포이즌필의 도입이 합리적일 수 있음을 인정하였다.
합리적 근거 · 비례적 조치
Unocal 판례에서는 회사가 적대적 인수에 대응하여 특정 주주를 배제하는 방식으로 방어 조치를 취한 사안에서, 비즈니스 판단 원칙 적용을 위한 추가적인 요건(이른바 "Unocal Test")을 설정하였다. 이에 따르면, 1) 이사회가 기업 정책 및 운영의 효과성에 대한 위험이 존재한다고 합리적으로 믿을 만한 근거(reasonable grounds)가 있는지, 2) 해당 방어 조치가 그 위험에 비례적으로(proportional) 이루어졌는지가 방어 조치의 유효성을 판단하는 기준이 된다. 이러한 Unocal Test는 이후 이사회의 경영권 방어 조치가 과도하지 않은지 심사하는 기준으로 자리 잡았다.
또한 Air Products and Chemicals, Inc. v Airgas, Inc.(2011) 판례에서는 Unocal Test에 따라 방어 조치의 적합성을 판단하면서, 이사회가 장기적인 기업 가치를 보호하기 위해 단기적인 이익을 추구하는 주주의 의사에 반하더라도 포이즌필을 유지할 수 있다고 판결하였다. 이 판례는 포이즌필이 단순한 일시적 경영권 방어 수단이 아니라 장기적인 기업 가치 보호수단으로도 활용될 수 있음을 인정한 것으로 평가된다.
'포이즌필 남용' 제한 판례도 등장
반면 포이즌필의 남용을 제한하는 판례도 등장하였다. Revlon Inc. v MacAndrews & Forbes Holdings, Inc.(1986)에서 델라웨어 주 대법원은 기업이 경영권 매각 국면에 들어간 경우, 이사회의 의무는 주주가치 극대화로 전환되므로 특정 인수자를 배제하거나 특정 인수자에게만 락업 옵션(Lock-up Option), 단독 협상 조항(No-Shop Clause), 계약 해지 보상금(Break-up Fee)과 같은 과도한 보호 수단을 부여하면 그 수단은 정당화될 수 없다는 이른바 Revlon Duties 개념을 확립하였다. 이 판례의 취지에 따르면, 경영권 매각 상황에서 포이즌필을 유지하는 것은 주주의 이익을 해칠 수 있어 부적절한 조치로 평가될 수 있으며, 이사회는 주주에게 가장 높은 이익을 제공하는 인수자를 선택해야 한다.
Unitrin, Inc. v American General Corp.(1995) 판례에서도 Unocal Test를 적용하여 포이즌필과 자사주 매입 조치의 정당성을 판단하였다. 이 사건에서 포이즌필은 적절한 경영권 방어 조치로 인정되었으나, 자사주 매입 조치는 경영진의 지분을 증가시켜, 경영진이 합병과 같은 주요 의사결정을 좌우할 수 있는 수단이 될 수 있어 비례성 기준(Proportionality Test)에 어긋난다고 판단하였다. 이 판례는 경영권 방어 조치의 정당성을 판단함에 있어 Unocal Test의 비례성 기준을 엄격하게 적용한 사례로 평가된다.
정리하면, 미국에서는 포이즌필을 경영권 방어 조치로 인정하면서도, 이를 발동하기 위해서는 회사에 대한 실질적인 위험이 존재한다는 합리적인 근거가 있어야 하고, 방어 조치의 비례성이 인정되어야 하며, 포이즌필을 장기적인 기업 가치 보호를 위한 수단으로도 활용할 수 있지만, 경영권 매각 국면에서는 주주가치 극대화를 위해 포이즌필의 발동이 제한될 수 있다는 법리가 확립되어 있다.
이러한 미국 판례의 발전 방향을 고려할 때, 우리나라에서 포이즌필을 도입하려면 단순한 경영권 방어 수단이 아니라 주주가치 보호수단으로 기능할 수 있도록 설계하는 것이 중요하다. 특히 미국 판례에서 제안된 Unocal Test를 참고하여, 포이즌필 발동이 기업가치 보호라는 정당한 목적을 가지며 그 방식이 과도하지 않도록 하는 법적 장치를 마련해야 하겠다. 또한 Revlon Duties에서 확인된 바와 같이, 경영권 매각 국면에서는 포이즌필이 주주 이익을 해치지 않도록 그 적용을 제한하는 기준이 필요할 것이다.
경영권 안정과 주주 보호 균형 중요
미국의 사례를 참고하면서도, 우리나라 기업 환경과 법적 체계를 고려한 적절한 제도 설계도 고민해야 할 것으로 보인다. 우선 포이즌필의 남용을 방지하기 위해 도입 및 발동 절차에 관한 명확한 기준을 마련해야 하는데, 이사회가 포이즌필을 도입할 경우 그 내용을 정관에 미리 정하도록 하여 주주총회 결의를 요하도록 하고, 발동시에는 일정 비율 이상의 주주 승인을 요구하는 방안도 고려할 수 있다. 궁극적으로 포이즌필 도입 논의는 기업의 경영권 안정과 주주 보호 간의 균형을 어떻게 조화롭게 설정할 것인가에 대한 문제로 귀결된다.
포이즌필이 효과적인 경영권 방어 수단이 됨과 동시에 경영진에 의해 남용될 가능성도 존재하므로 이에 대해 신중하게 접근해야 하겠지만, 이미 주요 선진국에서 포이즌필을 도입하여 활용하고 있는 만큼 우리나라에서도 기업이 경영권 위협으로부터 스스로를 방어할 수 있는 수단의 도입을 적극적으로 고려해야 하고, 이를 위해 각계 전문가들의 심도 있는 논의가 필요한 시점이라고 생각한다.
서민아 변호사(법무법인 지평, maseo@jipyo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