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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그계의 대부 이경규씨는 2022년 MBC 연예대상에서 공로상을 받은 뒤 “많은 분들이 ‘박수칠 때 떠나라’라고 얘기한다. 정신 나간 놈이다. 박수칠 때 왜 떠나냐. 한 사람이라도 박수를 안 칠 때까지 그때까지 활동하겠다”고 소감을 밝힌 바 있다. 많은 이들에게 울림을 준 명소감이었다.
‘배구여제’ 김연경도 이경규씨의 수상 소감을 언급한 적이 있다. 2023~2024 V리그 시상식에서 개인통산 6번째 MVP를 수상한 뒤 현역 연장을 선언하며 “늘 정상에 있을 때 은퇴하고 싶다고 얘기하곤 했다. 그런데 이경규씨의 말도 맞는 것 같다. 아무도 박수 치지 않을 때까지 선수 생활을 계속할지도 모르겠다”고 웃으며 말한 뒤 “열린 결말 어떤가. 괜찮았나”라며 되묻기까지 했다.
1988년생으로 어느덧 30대 후반에 접어든 김연경. 여전히 최고 수준의 기량을 뽐내고 있다. 올 시즌 28경기에 득점 6위(521점), 토종 선수 1위다. 여기에 공격성공률 2위(45.36%), 퀵오픈 1위(54.59%), 후위공격 4위(41.94%), 리시브 2위(42.34%)까지 효율 스탯에서도 최고다. 이미 7번째 MVP도 사실상 예약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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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전히 큰 박수를 받고 있고, 내년 시즌에도, 내후년 시즌에도 큰 박수를 받을 것이 분명한 김연경. 그가 박수칠 때 떠나는 것을 선택한 모양새다. 2024~2025시즌을 마치면 성적에 관계없이 은퇴하겠다는 선언을 했다.
김연경은 13일 인천 삼산월드체육관에서 열린 2024~2025 V리그 여자부 5라운드 GS칼텍스와의 홈 경기에서 세트 스코어 3-1 승리, 흥국생명의 8연승을 이끈 뒤 수훈선수 인터뷰에서 “올 시즌을 끝으로 은퇴하겠다. 시즌 끝나고 성적이랑 관계없이 은퇴를 생각하고 있다”고 털어놨다.
지난 9일 페퍼저축은행전을 마치고 진행된 리베로 전설 김해란 은퇴식 때 “곧 따라가겠다”라는 발언이 그저 인사치레인 줄 알았지만, 김연경의 진심이 담긴 말이었던 셈이다.
김연경은 “좀 빠르게 많은 분께 알려드리고 싶다는 생각이 컸는데 빨리 말씀을 못 드려서 죄송하다”면서 “그러나 얼마 남지 않은 시합 잘 마무리할 거고 많은 분이 와서 제 마지막 경기를 봐주셨으면 한다”고 많은 응원을 부탁했다.
은퇴 결심 계기에 대해선 “조금씩 생각을 하고 있었다. 오랫동안 배구를 해왔고, 많이 고민했었다. 주변 얘기도 있었고. 제가 생각했을 때는 지금이 좋은 시기라는 생각이 들었다. 아쉽다면 아쉬울 수 있지만 언제 은퇴해도 아쉬울 거라 생각한다. 올 시즌 잘 마무리하고 제2의 인생을 살기 위해서 그런 선택을 내렸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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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연경은 흥국생명과도 올 시즌 종료 후 은퇴하겠다고 조율을 마친 상태다. 흥국생명 구단 관계자는 “김연경 선수가 올 시즌을 끝으로 은퇴하겠다는 뜻을 밝혔고, 구단도 거기에 동의한 상태”라고 전했다.
이제 관심은 김연경의 ‘라스트 댄스’의 결말과 그의 향후 진로에 대해 쏠린다.
우선 흥국생명의 챔피언결정전 직행은 매우 유력한 상황이다. 13일 GS칼텍스전 승리를 통해 승점 67(23승5패)이 된 흥국생명은 2위 정관장(승점 53, 19승8패), 3위 현대건설(승점 53, 17승10패)와 승점 차가 14까지 벌어졌다. 흥국생명의 전력을 감안하면 결코 뒤집어지기 쉽지 않은 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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챔프전 직행 여부는 흥국생명의 챔프전 우승과 직결된 문제다. 당장 지난 시즌만 해도 승점 1 차이로 현대건설에게 챔프전 직행 티켓을 내준 흥국생명은 정관장과의 플레이오프를 2승1패로 힘겹게 뚫어낸 뒤 챔프전에 올랐다. 체력의 열세를 이겨내지 못한 흥국생명은 현대건설과의 챔프전 3경기를 모두 풀세트 접전 끝에 3-2로 패하며 3전 전패로 준우승에 머물렀다.
챔프전 파트너가 될 수 있는 두 팀, 정관장과 현대건설을 상대로도 올 시즌 상대전적에서 크게 앞서있는 흥국생명이다. 현대건설에 3승1패, 정관장에 4승1패로 절대 우세를 보이고 있다. 단기전 승부는 한 치 앞도 알 수 없지만, 모든 요소가 흥국생명에 웃어주는 양상이다.
당장 김연경에게도 V리그 우승은 절실하다. 일본 진출 전인 2008~2009시즌이 마지막 V리그 우승이다. 이번에 우승을 하게 되면 무려 16년 만의 우승이다. 과연 김연경은 현역 마지막 시즌을 챔프전 우승, 정규리그 MVP, 챔프전 MVP까지 ‘세 마리 토끼’를 모두 잡을 수 있을까.
남정훈 기자 che@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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