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3년 미국 켄터키주(州) 소도시 오네이다의 침례교 기숙학교. 만 아홉 살 대만 소년이 기숙사 입소 첫날 밤 마주한 건 자신보다 여덟 살 많은 룸메이트가 웃옷을 올려 자랑스럽게 보여준 7곳의 ‘칼빵’(칼에 찔린 상처)이었다.
명문 사립학교라 믿은 부모의 기대와 달리 이 학교는 교도소에서 갓 출소한 소년의 룸메이트를 비롯해 모든 학생이 주머니칼 하나쯤은 지니고 있는 험악한 곳이었다. 더구나 오네이다에 온 최초의 중국인이던 이 소년을 백인 학생들이 가만둘 리 없었다. 소년은 이름보다 ‘칭크’(중국인 비하 표현)로 불렸고, 구타와 왕따가 일상이 됐다.
‘학폭’에 시달렸던 소년은 반세기 뒤인 지난 6월 뉴욕증시에서 시가총액 3조3350억 달러(약 4600조원)로 ‘세계에서 가장 비싼 기업’ 타이틀을 거머쥔 회사를 이끌고 있다. 그의 이름은 젠슨 황(황런쉰·黃仁勳, 61), 엔비디아 창업자 겸 최고경영자(CEO)다. 그가 가진 자산만 1210억 달러(약 170조원)로, 포브스 세계 부자 순위 11위(12월 2일 기준)다.
젠슨 황은 오네이다에서 겪은 고통이 성공을 이룬 자양분이라 강변한다. 그는 어떻게 ‘오네이다 잔혹사’를 극복하고 ‘인공지능(AI) 칩 대부’, ‘반도체 산업의 나폴레옹’ 자리에 오를 수 있었을까.
“지금 하는 일이 인생을 바꾼다” 아르바이트 성공학
젠슨 황은 1963년 대만 중부 타이난에서 태어났다. 부모를 따라 다섯 살 때 대만을 떠나 태국에서 자랐다. 화학공학을 전공한 아버지 황싱타이(黃興泰)는 미국의 에어컨 제조사 캐리어(Carrier) 자회사에서 근무했다. 미국 연수 후 황싱타이는 번영하면서 진보적인 미국에 반해 아이들과 미국에 이민을 가기로 결심했다.
황싱타이는 아들 둘을 먼저 워싱턴주에 살던 젠슨 황의 삼촌에게 보낸다. 삼촌은 명문인데 등록금까지 저렴하다고 생각한 오네이다 기숙학교에 황을 입학시켰다. 그런데 학비가 싼 이유가 있었다. 이곳은 사고 친 아이들이 모이는 학교였다. 황은 뉴요커에 “모든 학생이 담배를 피웠고, 학생 중 칼을 들고 다니지 않는 학생은 내가 유일했다”고 그때를 회상했다. 당시 황의 친구였던 벤 베이스는 “황은 완벽한 (인종차별과 괴롭힘의) 표적이었다”고 말했다. 생명의 위협을 느낄 정도의 폭력이 황에게 쏟아졌다.
하지만 황은 개의치 않았다. 오히려 1년쯤 지나자 친구들을 이끌고 숲에서 놀이를 즐기는 ‘인싸’(인사이더)가 됐다. 비결은 공부였다. 성적에 자신이 있었던 황은 자상(刺傷)을 훈장처럼 자랑했던 열일곱 살 룸메이트에게 글자를 가르쳐 주고 친구가 됐다. 대신 친구로부터 벤치프레스 등 운동하는 법을 배웠다. 황은 매일 밤 잠 자기 전에 팔굽혀펴기를 100번씩 하며 누구도 깔보지 못할 힘을 키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