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 사료서 빠진 ‘조단백’ 표기…“알권리·형평성 해쳐”

2025-04-27

조단백(가공되지 않은 상태의 단백질) 함량이 사료 포장재에 표기되지 않으면서 한우농가를 중심으로 불만이 커지고 있다. 사료 조단백이 가축의 비육·성장에 결정적 영향을 미치는 상황에서 정작 농가는 해당 정보를 알기 어려워 알권리를 침해받는다는 것이다. 정부는 질소·메탄가스 저감 등을 이유로 조단백 함량 표기를 제한하겠다는 태도를 고수 중이다.

농가, “알권리 침해” 반발=“여기 포장재 좀 보세요. 사료에 중요 성분이 얼마나 들어 있는지 알 길이 없어요. 소비자 눈과 귀를 가려서야 되겠습니까?”

최근 만난 한우농가 박영철씨(70·강원 춘천)는 정부 규제 탓에 소비자의 알권리가 침해당한다며 분통을 터뜨렸다. 박씨는 “사료에 조단백 함량이 표시되지 않아 어떤 제품이 좋은지 비교할 수 없다”면서 “이런 상황에서 어떻게 최고 품질의 한우를 생산할 수 있겠느냐”고 목소리를 높였다.

박씨가 보여준 배합사료 포장재엔 조지방·조섬유·조회분·칼슘·인의 성분량은 표시됐지만 조단백은 빠져 있었다. 농가들에 따르면 단백질은 가축 생장에 가장 중요한 요소로 꼽힌다. 동물의 성장과 조직 형성에 필수성분으로 작용하는데, 특히 한우에 있어서 육질을 개선하고, 비육하는 데 지대한 영향을 미친다.

인근의 다른 한우농가는 “조단백 표기가 빠진 이후 사료를 먹이면 단백질 함량이 낮아서인지 좀처럼 소 생체중이 늘지 않는다”며 “울며 겨자 먹기로 첨가제를 더 많이 먹이게 되는데 생산비가 덩달아 올라가니 황당한 노릇”이라고 했다.

정부, “탄소저감 중요”=사료 포장재에 조단백 표기가 사라진 것은 2022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농림축산식품부는 조단백을 표시하는 것을 제한하는 내용으로 2022년 3월 ‘사료 등의 기준 및 규격’(농식품부가 고시한 행정규칙)을 개정했다. 가축이 과도하게 조단백을 섭취하면 대표적인 온실가스인 메탄·아산화질소를 많이 배출한다는 이유에서다. 실제로 행정규칙에 명시된 ‘배합사료의 성분등록 사항’을 살펴보면 고기소·젖소 등이 먹는 양축용 배합사료엔 조단백의 최소량 또는 최대량을 밝히지 않아도 된다.

생산자단체에서는 행정규칙 개정 과정에서 절차상 하자가 있었다고 지적한다. 전국한우협회 관계자는 “개정 당시 정부가 농가의 의견은 무시하고 사료업계·학계 의견만을 반영하면서 이같이 현실과 동떨어진 정책이 나오게 됐다”면서 “조단백이 과잉 급여된다면 상한선을 정하고 함량을 표기하면 될 일”이라고 꼬집었다.

이런 가운데 정부는 시중에 나온 질소저감사료의 영향 분석 등도 제대로 하지 않았다는 정황이 포착됐다. 농식품부 축산환경자원과 관계자는 “조단백 등을 줄인 질소저감사료가 환경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 알아보고자 올해 연구용역을 준비하고 있다”면서 “개정된 행정규칙은 ‘탄소 배출 저감’이라는 정부 정책의 큰 틀에서 움직이고 있어 당장 손보기가 어렵다”고 설명했다.

사료업계도 불만, 형평성 논란까지=사료업계에서도 볼멘소리를 낸다. 한 사료업체 관계자는 “제도가 개편된 지 3년이 넘은 지금도 ‘왜 조단백 함량을 숨겨 농가를 속이느냐’는 민원 전화가 걸려온다”면서 “규칙 개정과 상관없이 지금도 적절한 단백질이 들어간 양질의 제품을 생산하는데, 마치 농가를 기만하는 것처럼 오해하는 것 같아 난감하다”고 귀띔했다.

축종간 형평성 논란도 불거진다. 사료업계에 따르면 돼지·닭 사료는 단백질을 이루는 성분인 라이신·메티오닌을 표기하고 있다. 민경천 한우협회장은 “고품질 한우를 생산하려면 한우가 먹는 사료에 어떤 성분이 들어가 있는지 농가가 알아야 한다”면서 “지금이라도 농가가 계획적으로 사양관리를 할 수 있도록 정부는 이들의 선택권을 보장하는 쪽으로 행정규칙을 개정해달라”고 말했다.

이문수 기자

Menu

Kollo 를 통해 내 지역 속보, 범죄 뉴스, 비즈니스 뉴스, 스포츠 업데이트 및 한국 헤드라인을 휴대폰으로 직접 확인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