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산과학대학교(총장 조홍래) 이정학 전(前) 교수가 최근 연구에서 울산 최초의 극장인 일제강점기 방어진 ‘상반관’ 극장의 사진을 찾아 실체를 규명했다.
일제강점기 방어진 상반관(전신: 1920년경 상반좌, 1925년 상반관으로 명칭 변경)은 울산 최초의 극장으로 1937년에 울산극장이 준공하기 전까지는 울산의 유일한 극장이었다.
상반관은 울산 최초의 극장이라는 상징성에도 불구하고 한국 연극‧영화사(혹은 극장사)에 아직은 온전하게 기록되지 않은 채 울산의 향토 사학자와 일부 지역인의 구전, 그리고 당시 신문 기사 기록에만 일부 그 정체가 드러났을 뿐 실체가 불분명하거나 존재 자체를 증명하기 어려웠다.
그런데 최근 울산과학대학교 이정학 전 교수는 국제일본문화연구센터 사이트에서 상반관의 모습이 담긴 당시의 엽서 사진을 찾아 상반관 건물의 실체를 확인했다. 일제강점기 후등상점(後藤商店)이 발행한 ‘방어진(方魚津(영정, 榮町))’이란 엽서의 사진에서 상반관을 발견했다.
엽서의 발행 연도가 없어서 시기를 특정할 수는 없지만 건물의 형태와 크기가 근대식이어서 1937년에 상반관이 확장된 이후부터 1941년에 소실되기 이전 사이에 찍힌 사진으로 추정된다. 영정(榮町)은 일제강점기 일본식 도로명 표기로서 주로 상점들이 늘어선 번화한 거리에 이름 지었다.
사진 속의 상반관은 벽돌과 콘크리트로 건축된 것으로 보이며, 아치형 지붕의 근대식 건물이었다. 2층 정면에는 세로로 3개의 창이 있으며, 2층 난간에는 영화 간판이 세워져 있었다. 건물 외관은 2층 위에 한 층이 더 있는 것으로 보여 3층 건물로 보였다. 그러나 외부에서는 3층으로 보이지만 내부는 2층 구조였을 것으로 추정되는데 객석은 2층까지인데 영화관 특유의 높은 천장 때문에 외부에서는 3층으로 보였을 것이다.
방어진 근대화의 상징이었던 상반관은 1941년 소실되기 전까지 약 20년간 운영됐고, 영화뿐만 아니라 각종 예술공연이 열리거나 집회나 공공의 회의, 토론 등이 진행되는 공회당의 기능까지 함께한 다목적 복합문화공간이었으며, 영화관보다는 극장의 성격이 강했다.
울산과학대학교 이정학 전(前) 교수는 “일제강점기 방어진에 울산 최초의 극장인 상반관이 들어섰다는 것은 방어진이 일본 어민의 집단 이주 지역이자 울산에서 경제‧문화적으로 가장 발달한 곳으로 동해안 최대의 항구 도시인 것을 증명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남주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