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전공자 코딩 교육, 대기업 취업문 안 열리고 국비만 낭비?

2024-11-22

[비즈한국] “훈련비 약 500만 원 6개월 교육을 무료로 들었습니다. 발을 담그고 보니 비전공자 대기업 취업도 결국엔 학벌순이에요. 대기업을 떠나서 지금은 개발자 채용이 자체가 극소수고, 비전공자 쪽은 말 그대로 얼어붙은 상황입니다.”

#국비로 코딩 입문했지만 ‘불취업’ 매한가지

코로나 팬데믹 당시 비대면 수요가 크게 늘면서 IT 업종의 몸값이 치솟았다. 대학생부터 재취업을 원하는 직장인들 사이에서 코딩 열풍이 불었다. 개발자 영입을 위해 높은 연봉과 좋은 복지 조건을 제시하는 기업들을 지칭하는 ‘네카라쿠배’(네이버·카카오·라인플러스·쿠팡·배달의민족), ‘당토직야’(당근·토스·직방·야놀자)라는 신조어까지 생겼다.

IT 인력 수요가 공급을 따라가지 못해 발생한 개발자 구인난은 구직 청년들이 코딩에 입문하는 계기가 됐다. ‘경험 없어도 가능한 비전공자 코딩 교육’, ‘국비지원으로 대기업 취업’ 등을 내건 국비지원교육이 성행했고, 1000만 원 안팎의 코딩 부트캠프(단기 집중 교육)도 급증했다.

서울 소재 상경대학을 나온 장 아무개 씨(27)는 지난해 말 국비지원교육을 신청해 올해 자바웹 개발자 과정을 수료했다. 비전공자라서 권유받은 선수과목은 자부담으로 수강했다. 장 씨가 코딩 교육을 시작한 당시에도 이미 개발 직무 취업준비생 사이에서는 ‘막차는 떠났다’는 이야기가 있었지만 본인 역량에 달렸다고 판단했다. 장 씨는 “취업문이 좁아지면서 불안감이 컸다. 대기업 신입 입사가 아니더라도 실무 경험을 쌓아 경력을 개발하고 좋은 조건에 이직할 수 있는 직무라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장 씨는 개발자 공고를 올리는 ​중소기업까지 지원서를 넣고 있지만 취업이 막막한 상황이다. 장 씨는 “올해는 개발자 공부와 취준에 올인했는데 잘 안 풀렸다. 그나마 전해 듣는 취업 성공 사례도 중고신입이나 전공자의 경우다. 주변의 준비생이 거의 다 비슷한 처지”라고 전했다.

#‘모시기’ 끝나고 고스펙 선별, ‘정부 지원’ 국비 교육 개선 지적 꾸준

신입 초봉 천 단위 앞자리가 바뀔 정도로 달아올랐던 ‘개발자 모시기’는 지난해 열기가 식은 후로 좀처럼 살아나지 못하고 있다. 글로벌 경제 불황과 투자 시장 위축으로 주요 IT 기업들과 스타트업 모두 신입·경력 개발자를 더 이상 뽑지 않거나 줄이는 상황이다. IT 인력 채용 플랫폼 원티드랩의 보고서에 따르면 현직자들은 ‘재직 중인 회사·팀의 채용 규모 축소(29.3%)’를 작년 IT 현장의 가장 큰 변화로 꼽았다. 취업·이직 경험과 관련한 설문에서는 ‘이전보다 어려웠다’고 답변한 비율이 42.9%로 가장 많았다.

실제로 채용 공고도 얼어붙었다. 상위권 채용 플랫폼 진학사 캐치 공고를 분석한 결과 지난 15일부터 일주일간 웹 개발, 프로그래밍 관련 직무 공고는 총 133건으로 집계됐다. 이 가운데 신입이 지원 가능한 공고는 14건에 불과했는데, 컴퓨터학과 등 관련 전공과로 제한을 걸어둔 경우가 3건이었고, 나머지 11건 중 3건은 단기 계약직 채용이었다.

외국계기업도 별반 다르지 않다. 외국계기업 취업전문사이트 피플엔잡의 동기간 개발자 구인 공고는 총 50건으로 모두 3년 차 이상 사원 이상 경력직을 찾고 있다. 이 중 한 건만 대학에서 ‘컴퓨터/전자공학 관련 학과’를 졸업했을 경우 신입 지원이 가능하다고 명시했다.

경력 7년 차의 대기업 현직 개발자 A 씨는 지금의 IT 채용 시장에 대해 “정확히는 거품이 꺼졌다”고 평가했다. 개발자 인력난은 IT 인력 수요 급증 문제에 국한되지 않는데 사안을 단순하게 본 결과라는 것이다. A 씨는 “실무에 즉시 투입될 역량을 가진 인재가 부족한 게 당시의 문제였다. 이게 해결돼야 했는데 높은 연봉이 부각되면서 신규 개발자 유입에 집중됐다. 지금 현직들은 임금 인상률이 낮아졌고 이직 시장도 어려워졌다”며 “회사도 급할 땐 채용했지만 막상 뽑아놓고 보니 실무가 안 되는 경우가 있어 비전공자 채용에 악순환으로 작용한 것 같다”고 밝혔다.

스타트업 관계자도 “국비 교육이나 부트캠프를 수료한 지원자들이 많고 거기서 쌓은 포트폴리오를 주요 성과로 제출한다”며 “하지만 코딩은 현업에서 더 공부를 많이 해야 하는 직무다. 일정 수준에 이르면 전공 지식 없이는 해결하기 어려운 문제가 많다. 이건 전공생도 마찬가지다. 6개월, 8개월 만에 개발자가 될 수는 있어도 한계가 보여 여러 가지를 고려한다”고 설명했다.

국비 교육이 커리큘럼에 비해 질이 낮다는 지적도 꾸준히 나온다. 개발자 시장이 요동치자 정부가 나서서 코딩 취업을 독려하면서 국비 코딩 교육 학원이 우후죽순 늘어난 반면 강사진의 역량 등 경쟁력은 낮다는 것이다. 지난 9월 7개월짜리 풀스택 과정 수료를 마친 박 아무개 씨(29)는 “중간에 강사가 교체됐는데 스타일이 전혀 다른 두 대체 강사가 두 달 남은 강의 일정을 소화했다. 실습은 예제를 따라하는 수준으로 진행하고 커리큘럼상 손도 안 댄 자바 프로그램 강의는 소홀해 수강생들의 이해도가 떨어졌다”고 전했다.

직업훈련을 돕는 내일배움카드는 원칙상 1년에 한 번 계좌발급일로부터 1인당 5년간 300만 원까지 지원받을 수 있지만 IT는 ‘국가 집중 육성 분야’로 구분돼 한도를 넘어 전액 지원된다. 고용노동부가 세금으로 교육기관 운영을 지원하는 만큼 체계적이고 전문적인 교육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매년 컴퓨터공학 관련 전공생이 1만 6000명에서 2만 명이 생기지만 전문성을 갖춘 개발자를 양성하는 건 별개의 문제라는 시각도 있다. 서정연 서강대학교 연구석학교수(LG AI연구원 인재육성위원장)는 “좋은 개발자를 단기 학원 교육으로 뽑겠다는 건 욕심이다. 전공생이더라도 현업에서 업무를 배우면서 전문가가 된다”고 말했다. 서 교수는 “다만 비전공자를 아우르는 대안 교육 기관격의 ‘이노베이션 아카데미’는 좋은 사례다. 2년 동안 석사급으로 강도 높게 개발자를 양성하는 정부의 혁신교육 기관인데 수도권에서 경북 경산으로 확대된다. 그나마 이것이 보장된 단기 모델이라고 평가할 수 있다”고 짚었다. ​

강은경 기자

gong@bizhankook.com

[핫클릭]

· '의대생 빠진 자리 전공의가 채우나' 의료취약지역 공보의 공급 전망

· 독도함서 이륙한 미국산 드론에 한화 로고 그려진 까닭

· "수익성 부족하면 합친다" 서울에 부는 통합재건축 바람

· 코로나 당시 '이례적 세무조사' 신천지, 법원서 뒤집혔다

· [현장] 코코몽·롯데월드 모인 콘텐츠 IP 마켓, 해외 판권계약 날개 달까

<저작권자 ⓒ 비즈한국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Menu

Kollo 를 통해 내 지역 속보, 범죄 뉴스, 비즈니스 뉴스, 스포츠 업데이트 및 한국 헤드라인을 휴대폰으로 직접 확인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