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추미애 국회 법제사법위원장은 21일 법사위 국정감사에서 여야가 충돌하며 언성을 높이자 이렇게 소리쳤다. 하지만 추 위원장 역시 지난 13일 대법원 국감에 조희대 대법원장을 참고인으로 앉혀 놓고 질의응답을 강행하는 등 논란의 중심에 서 있다. 이처럼 국회는 지난 13일부터 이재명 정부 출범 이후 첫 국감을 진행하고 있지만 “역대 최악의 국감”이란 혹평을 받고 있다. 헌법이 입법부에 부여한 행정부 감시 권한을 행사하고 있다고 하지만, 국민이 보기에 낯 뜨거운 장면이 수도 없이 연출되고 있기 때문이다.
법사위에선 최소한의 존중이 사라진 풍경이 연일 이어지고 있다. 지난 20일 무소속 최혁진 의원은 국민의힘 나경원 의원의 배우자 김재호 춘천지방법원장을 증언대로 불러 “김건희의 계부, 최은순의 내연남 김충식을 아느냐”고 물었다. 김 법원장이 “모른다”고 하자 최 의원은 “김충식의 내연녀를 나 의원 언니가 소개했다”고 몰아세웠다. 하지만 김 법원장은 황당하다는 듯 “나 의원은 언니가 없다”는 대답을 반복했다. 나 의원 부부를 공격하려다 있지도 않은 ‘나경원 언니’ 논란을 일으킨 것이다. 최 의원은 지난 13일엔 일본식 상투를 튼 모습에 조희대 대법원장 얼굴을 합성한 ‘조요토미 희대요시’ 사진을 담은 패널을 들어 보여 망신 주기 논란을 일으켰다.

올해는 유독 ‘국감 스타’도 자취를 감췄다. 역대 국감은 스타 정치인의 산파 역할을 했다. 2018년 민주당 초선 박용진 의원은 사립유치원의 회계 비리 문제를 처음 공론화해 전국구 스타가 됐다. 같은 해 유민봉 자유한국당 의원도 서울교통공사 노조의 고용 세습 문제를 처음 폭로해 국정조사로까지 이어졌다.
하지만 이번 국감에선 강성 지지층을 의식한 ‘억지 스타’만 양산되고 있는 실정이다.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의 국민의힘 박정훈 의원은 지난 17일 자신의 유튜브 채널에 ‘국민 찌질이 박살내는 박정훈’이란 제목의 쇼츠(Shorts) 영상을 올렸다. 자신과 욕설까지 주고받으며 싸웠던 민주당 김우영 의원을 겨냥한 영상이었는데, 영상 화면엔 “니네 아빠 병역 브로커라매”라는 자막도 붙었다. 추미애 위원장은 지난 15일 대법원으로 찾아가 현장 국감을 한 뒤 ‘추미애TV’에 ‘대법원 현장 검증 진행 중입니다’라는 17초짜리 쇼츠를 올렸다. 이 영상 하단엔 추 위원장의 후원 계좌번호도 함께 노출돼 논란이 일었다.

자정을 넘기며 치열한 토론과 정책 질의를 이어가는 국감도 옛말이다. 과방위(13일), 국방위(14일) 등에서 오후 6~7시면 감사를 마치고 의원들이 일어나는 ‘칼퇴형 국감’까지 속출하고 있다. 그렇다 보니 정책에 관한 밀도 있는 국감이 진행되는 사례는 거의 찾아볼 수 없는 상황이다. 의원 스스로 공부했다는 발언이 나오긴 했지만 외려 논란을 부추기는 역효과가 있을 뿐이었다. 최민희 과방위원장은 국감 기간 도중 국회에서 결혼한 딸 문제가 불거지자 지난 20일 “문과 출신인 제가 양자역학과 내성 암호를 공부하느라 잠도 못 잘 지경”이라고 말했다 논란을 일으켰다.
이처럼 국정을 감시하고 정책적 대안을 제시해야 할 국감의 본래 취지와는 거리가 먼, 강성 지지층을 겨냥한 자극적 언사나 개별 의원의 사적 논란이 국감장을 가득 채우자 비판의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강원택 서울대 정치외교학부 교수는 “사회 문제를 해결할 정책적 대안도, 송곳 같은 질문으로 국민의 박수를 이끌어내는 스타 의원도, 그렇다고 상대 정당에 대한 최소한의 존중마저도 찾아볼 수 없는 3무(無) 국감”이라고 지적했다.

의원들조차 “국감이 이런 식으로 가면 안 된다”(국민의힘 초선의원)고 우려하기 시작했다. 국민의힘 중진 의원은 “예전엔 여야가 국감에서 싸워도 꼼꼼하게 준비한 자료를 바탕으로 국정을 놓고 공방을 벌였다”며 “하지만 요즘은 인신공격도 불사하는 쇼츠용 윽박지르기에만 혈안이 된 것 같다”고 했다. 민주당 다선 의원은 “예전에는 싸워도 선을 지켰고, 망신주기에만 집중하는 분위기는 결코 아니었다”며 “국민과 피감기관 앞에서 부끄러운 모습”이라고 했다.
원로들도 “정치 상실이자 국감 실종의 시대”(임채정 전 국회의장)라고 입을 모았다. 김형오 전 국회의장은 “국감장은 입에 담을 수 없는 말이 난무하고, 보는 국민의 마음마저 멍들게 하는 몰염치한 장으로 전락했다. 헛웃음이 나온다”고 비판했다. 임 전 의장은 “국감에서 일부러 자극적인 싸움을 유도해 강성 지지자들에게 잘 보이려는 의원들만 많다”고 지적했다.
이선우 전북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과거엔 여야가 싸우더라도 행정부 견제라는 공통된 목표를 가지고 정책 감사를 했다”며 “하지만 최근 야당은 무조건 정부·여당을 흠집 내고, 여당은 눈감고 행정부 편만 드는 정치 행태가 국감장에 그대로 이식된 모양새”라고 비판했다. 오랜 기간 국감을 겪은 국회의원 보좌관은 “솔직히 F학점도 주기 아까울 정도로 형편없는 국감을 진행한 상임위도 여러 곳”이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