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다 사고 나겠어. 버스 들어오는데 위험해.” 정류장에서 스마트폰을 보고 있는 젊은이에게 할아버지가 한마디 하신다. “온종일 그렇게 스마트폰만 보면 눈도 나빠지고 머리도 나빠진다고. 뉴스에 나왔다니까.” 계속되는 참견에 젊은이가 멀찍이 물러서버리자 “다 걱정되어서 하는 소린데”라며 혀를 차신다.
노인이라고 모두 그런 것은 아니다. 나이와 상관없는 ‘참견쟁이’가 있기는 하지만, 늙으면 다른 사람의 일에 참견하는 경우가 많다. 삶의 경험 속에서 얻은 확신으로 타인에게 좋은 영향을 미치고 싶다는 의도가 클 것이다. 소통의 부재로 인한 외로움 때문일 수도 있다. 노인에게 참견은 잘난 척이 아닌 소통의 수단인 셈이다. 또한 사회적으로 점차 위축될 수밖에 없는 존재감을 회복하고, 의존적일 수밖에 없어 떨어져 버린 자존감을 보상하려는 심리적 의도도 있다. 노인에게 참견은 자기방어기도 하다.
문제는 세상이 바뀌었다는 것. 아무리 부정적인 의도가 없다고 해도, 개인의 취향과 프라이버시를 매우 중요시하는 시대에 참견은 그 자체만으로도 부정적인 요소가 되고 말았다.
마음의 여유가 있는 젊은이라면, 노인의 참견에 긍정적인 반응을 보여주면 좋겠다.
물론 참견하기 전에 상대의 눈치를 살피는 센스 있는 노인의 자세도 필요하지만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