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말만 장애인 검진기관…필수장비 완비 82곳 중 1곳뿐

2025-10-29

전동휠체어를 타는 뇌병변 장애인 문경희(55)씨는 건강검진에서 가장 기본적인 키와 몸무게 측정도 제대로 해본 적이 없다. 휠체어를 탄 채로 체중을 재려면 특수한 체중계가 필요한데, 이를 갖춘 검진 기관을 찾기란 '하늘의 별 따기'다.

그나마 엑스레이는 의료진 도움을 받아 겨우 찍는다. 하지만 구강검진이나 각종 여성질환 관련 검사는 엄두도 내지 못한다. 문씨는 "장애인이 건강검진을 제대로 받을 방법이 사실상 존재하지 않는다"며 "장비에 몸을 억지로 맞춰야 하는데, 사실상 검사를 포기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이러한 현실을 개선하기 위해 정부가 장애인 건강검진 기관을 지정했지만, 2년이 지나도록 필요한 장비를 모두 갖춘 곳이 사실상 없는 것으로 나타났다. 제도를 만들고도 예산 지원이 미비해 '장애인 건강권 보장'이란 취지가 무색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29일 서미화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보건복지부에서 받은 자료에 따르면, 올 6월 기준 장애인 건강검진 당연지정기관 82곳 중 51곳(62.2%)은 정부가 규정한 필수장비 9종 중 단 한 가지도 갖추지 못했다. 장비 하나만 있는 기관도 14곳(17.1%)에 달했다. 규정대로 9종을 모두 갖춘 곳은 대구의료원 한 곳뿐이었다. 그다음으로 많은 장비를 갖춘 곳은 정선군립병원(5종)이었다.

장애인 건강검진 당연지정기관은 장애인 건강권법 개정에 따라 2023년 12월부터 시행 중이다. 3년 이내에 법에 따른 시설·장비·인력을 모두 갖추도록 규정했지만, 시행 2년이 다 되도록 필수장비도 못 갖춘 곳이 태반이다. 필수장비 9종은 ▶휠체어를 타고 체중 측정이 가능한 휠체어 체중계 ▶누운 자세에서도 신장을 잴 수 있는 장애특화 신장계 ▶시각장애인을 위한 확대 모니터 등이다.

장애인과 거리가 먼 장애인 건강검진기관은 수치로도 나타난다. 서 의원이 국민건강보험공단에서 받은 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장애인 건강검진 수검률은 65.9%에 그쳤다. 비장애인(76%)에 비해 10%포인트 이상 낮았다. 특히 2022년 기준 장애인이 건강검진에서 '정상' 판정을 받는 비율은 18.3%로 비장애인(41.6%)과 차이가 크다. 장애인의 전반적인 건강 상태가 비장애인보다 좋지 않음에도 건강검진조차 받기 어려운 셈이다.

복지부는 일부 기관에 장비 구입비를 지원하지만, 82곳 중 8곳만 대상이다. 예산 집행도 더디다. 올해 예산을 지원받은 8곳 가운데 집행을 완료한 병원은 2곳에 불과했다(올 8월 기준).

내년 말까지 기준 충족이 어려운 기관들이 '꼼수'로 지정 취소를 자처해도 막을 방법이 없다는 우려도 나온다. 법적으로 장애인 건강검진기관 지정 취소는 건보공단의 확인 절차와 복지부 청문까지 거쳐야 한다. 하지만 해당 기관이 일반 건강검진기관에서 해제되면, 이런 절차 없이 장애인 건강검진기관에서도 자동으로 빠진다. 실제로 올 들어 근로복지공단 경기요양병원·서울특별시장애인치과병원·전주시립요양병원 등 3개 기관이 이렇게 지정 취소됐다.

서미화 의원은 "현행법상 장애인 건강검진 기관인 공공병원들은 내년 말까지 시설·장비·인력 기준 모두 맞춰야 한다. 공공병원 소관 부처간 협의를 통해 특단의 대책을 마련하는 것이 시급하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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