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리걸테크(legal tech)란 계약과 소송 업무를 포함하는 법률업무(legal)와 기술(tech)의 결합이다. 연간 58조원 이상 규모의 글로벌 테크산업으로 급성장 중이다. 특히 챗GPT의 등장으로 생성형인공지능(GAI) 기술이 리걸테크에 본격적으로 도입돼, 기업 법무에 필수적인 ‘계약생애주기관리(Contract Lifecycle Management, CLM)’ 시스템 분야와 기업 간 소송에서 승패를 좌우하는 ‘전자 증거개시(E-Discovery)’ 분야가 폭발적으로 성장하고 있다.

더욱이 미국 정부의 전방위적인 관세 정책과 보복적 무역장벽이 대한민국 수출기업 법무팀을 긴장하게 만들고 있다. 기업별 공급망 가치사슬에 근거해 만든 표준화된 영문 공급계약서들이 수십 년간 관성적으로 유지됐다. 관련 문서를 원점부터 재정립하는 게 시급해졌다. 지금은 관세정책의 불확실성과 지역별 지정학적 불안정성으로 인해 불가항력 조항의 범위가 확대·다양화 과정을 거치고 있다. 갑작스러운 보복적 전략물자 수출규제와 병행해 특허 소송이 증가하고 있다. 또한, ‘부정경쟁(unfair competition)’ 문제로 국제분쟁이 소용돌이칠 것이라고 예상하는 것이 합리적인 시점이다. 이러한 상황을 배경으로 글로벌 리걸테크는, 기업 법무팀의 효율성 제고와 분쟁 대응 및 효과적인 소송 전략 수립에 꼭 필요한 기술이자 서비스다.
북미에서는 캘리포니아 헤이스밸리, 텍사스 오스틴, 캐나다 토론토 등에서 1000여개 리걸테크 스타트업들이 GAI 기술에 기반을 둔 다양한 리걸테크 솔루션을 미국 기업 법무팀과 로펌에 역동적으로 공급하고 있다. 아쉽게도 우리나라 리걸테크 분야는 아직 걸음마 단계다. AI 기술 주도가 아니라 사업 또는 플랫폼 주도형인 경우, 한동안 ‘무늬만 리걸테크’라는 평가도 나올법하다.
고무적이고 희망적인 트렌드도 있다. 우리나라 수출기업 변호사들이 글로벌 법무 위기 대응 차원에서 호주 변호사 또는 미국 변호사 자격을 추가로 취득하고 있다. 이들은 소위 ‘양손잡이(ambidextrous)’ 법률 전문가다. 국내법 전문성과 영미권 법무 전문성을 동시에 적극적으로 확보한다는 의미다. 최근 법원을 대신하여 기업 간 무역 분쟁을 단심제로 다루는 국제 중재소의 역할이 확대되면서 ‘양손잡이’ 법률 전문가들의 활약이 두드러지는 추세다.
대항해 시대부터 시작된 대륙 간 무역의 역사를 보면, 상단(商團)의 물품과 이권을 보호하는 호위무사들의 역할이 지대했다. 글로벌 리걸테크 능력으로 재무장한, 대한민국 수출 기업의 ‘양손잡이’ 호위무사들이 앞으로 어떤 활약을 펼칠지 기대된다.
심재훈 법무법인 혜명 외국 변호사·KAIST 겸직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