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르에서 죄수로!” [김태훈의 의미 또는 재미]

2024-10-20

‘차르’(Tsar)는 라틴어의 ‘카이사르’(Caesar)에서 유래한 단어로 알려져 있다. 옛 제정 러시아의 황제를 뜻하는 용어다. 러시아 외에 불가리아, 세르비아 등 다른 슬라브계 국가들도 군주의 호칭으로 사용했다고 한다. 영국, 네덜란드, 스웨덴 등 서유럽과 북유럽 국가들이 진작 입헌군주제로 바뀌며 왕권이 약화한 것과 달리 러시아는 1917년 공산주의 혁명으로 망하기 직전까지도 차르의 위세가 대단했다. 그래서인지 오늘날에도 차르는 러시아는 물론 전 세계에서 ‘절대 권력자’의 상징으로 통한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2000년 취임했다. 당시만 해도 러시아 헌법상 대통령 임기는 4년이었고 3연임은 불가능했다. 그래서 푸틴은 한 차례 연임에 성공해 2008년까지 8년간 재임한 뒤 물러났다. 이후 푸틴 밑에서 총리를 지낸 드미트리 메드베데프가 2008∼2012년 대통령을 지냈다. 문제는 그 기간 메드베데프 대통령은 허수아비나 다름없었고 총리인 푸틴이 ‘상왕’처럼 모든 의사결정권을 행사했다는 점이다. 2012년 권좌에 복귀한 푸틴은 헌법을 고쳐 대통령 임기를 6년으로 늘리고 연임 제한 규정도 무력화했다. 그 뒤 2018년, 2024년 대선에서 연거푸 압도적 지지율로 당선되며 오는 2030년까지 대통령직 수행이 예정돼 있다. 일각에선 ‘현재 72세인 푸틴이 사실상 종신 대통령이 되는 길을 걸을 것’이라고 전망한다. 명실상부한 ‘21세판 차르’인 셈이다.

푸틴보다 꼭 24살 어린 러시아 야권 지도자 알렉세이 나발니는 한때 푸틴의 가장 강력한 정적으로 꼽혔다. 변호사 출신인 나발니는 2011년 ‘반(反)부패재단’을 세우고 푸틴의 측근 등 러시아 고위 관료들의 부정부패 의혹을 폭로했다. 푸틴의 3번째 집권을 앞둔 2011∼2012년 러시아 전역에서 일어난 대규모 반정부 시위를 주도했다. 2020년 푸틴이 배후로 추정되는 독극물 테러를 당해 목숨까지 잃을 뻔했으나 독일에서 치료를 받고 가까스로 회생했다. 이듬해인 2021년 서방 국가 인권단체들의 만류를 무릅쓰고 러시아로 되돌아갔다가 경찰에 체포된 후 북극과 가까운 시베리아 최북단의 감옥에서 수감생활을 하다가 2024년 2월 옥사했다. 당시 나이 47세였다.

나발니의 부인으로 현재 독일에 살고 있는 율리아 나발나야(48)가 남편을 죽음으로 몰아넣은 푸틴을 향해 저주를 퍼부었다. 나발니의 회고록 출간을 앞두고 20일 영국 신문과 가진 인터뷰를 통해서다. 나발나야는 “푸틴이 러시아의 차르에서 끌어내려져 한 사람의 평범한 죄수로서 투옥되는 모습을 꼭 보고 싶다”며 “(남편과 마찬가지로) 나는 러시아를 절대로 포기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남편을 대신해 러시아 민주화 운동을 계속하겠다는 뜻이다. 2022년 러시아의 침공으로 시작된 우크라이나 전쟁이 어서 끝나길 바라는 이들 대다수가 나발나야와 같은 생각을 갖고 있을 것이다.

김태훈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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