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놈'은 금융사기 취재하는 기자까지 사칭했다

2025-04-30

[비즈한국] 검사, 변호사, 경찰에 이어 기자를 사칭하는 금융사기가 등장했다. 사칭 피해자가 바로 기자 본인이다. 사기범은 기자의 명함을 이용해 금융사기 피해자들에게 접근해 취재를 핑계로 개인정보를 빼갔고, 변호사 소개비를 받는 방식으로 2차 금융사기 행각을 벌였다. 그러나 새로운 수법의 금융사기를 경찰이 제대로 수사하기는 어려워 보였다. 기자를 사칭한 금융사기 수법과 수사기관의 대응에 어떤 문제가 있는지, 기자가 직접 겪은 경험을 공개한다.

지난 3월, 독자로부터 제보를 받았다. 기자를 사칭하는 사람이 있다는 내용이었다. 기자의 명함을 이용해 ‘금융사기 피해자’에게 접근한 후 취재를 빌미로 금융정보를 빼가고, 변호사 소개비를 받는다는 것이었다. 다행히 제보자는 피해를 보기 전 기자에게 이 사실을 알렸다.

그동안 유명인, 법조인 등을 사칭해 금융사기를 벌이는 행각은 익히 알려졌지만, 기자를 사칭하는 사기 유형은 처음이었다. 제보자에게는 사칭임을 밝히고, 금융사기 수사를 담당하는 국가수사본부(국수본) 관계자에 상황을 공유했다.

“내부에서 새로운 사기 유형이 있다고 공유는 했지만, 기자가 직접 업무방해 등으로 고소하는 게 좋다”고 국수본 관계자는 조언했다. 원활한 수사를 위해서는 당사자의 고소가 필요하다고도 설명했다.

제보자의 협조를 받아 고소장과 증거물을 정리한 후 회사 관할 경찰서에 찾아갔다. 민원실로 들어가 준비해온 고소장과 증거물 파일이 담긴 USB를 건네며 ‘고소장’을 접수하고 싶다고 말하자, 수사민원상담센터로 가라고 했다. 상담센터로 가니, 고소장 접수는 민원실로 가야 한다고 안내했다.

민원실의 경찰관은 고소장을 ‘수기’로 작성해야 한다며 종이와 펜을 건넸다. 펜으로 고소장 한 페이지를 써 내려가던 중, 갑자기 경찰관은 “아, 그냥 가지고 온 거 줘도 된다”며 고소장을 다시 들고 갔다. 고소장을 들고 경찰서에 온 지 20분이 훌쩍 지난 시점이었다.

이후 경찰관은 기자에게 ‘진정서 접수증’을 내밀었다. 사건을 ‘고소’가 아닌 ‘진정’으로 접수하겠다는 의도였다. 경찰에게 ‘고소’를 원한다고 밝히자 “일단 진정서로 접수됐고, 담당 수사관이 내려오면 고소로 변경할 수 있는지 물어보겠다”고 답하면서 상담센터로 이동하라고 안내했다.

곧 담당 수사관이 도착했고, 상담센터 경찰관이 관련 상황을 요약해 전달했다. 수사관은 고소장을 읽지도, 증거물을 열람하지 않은 채 “사칭만으로는 수사를 할 수 없다. 이 사람이 사칭해 얻은 정보를 이용해 피해자를 구제하는 좋은 방향으로 썼다면 어떻게 할 거냐? 고소를 취하하든지, 아니면 지금 이 상태로는 사건을 종결할 수밖에 없다”고 전했다.

즉 ‘자력 구제’를 권유했다. 직접적인 피해액이 없으면 수사할 수 없다는 것. 수사관은 “(피해자와) 직접 소통하면서 소명하는 게 좋다. 그게 자력구제라는 거고, 충분히 자력구제 할 방법이 있다”고 설명했다. 제보자 외에 다른 피해자가 없다고 단정 지을 수 없는 상황이었지만, 수사관은 수사가 불가능하다고 단언했다. 고소장은 아직 한 줄도 읽지 않은 상태였다. 결국 기자는 진정을 취하하고 경찰서를 그냥 나올 수밖에 없었다.

만약 제보자가 기자 사칭범에게 속아 변호사 선임비를 전달했다면 고소가 성립됐을까. 고소장을 토대로 수사는 제대로 될까. 이런 의문과 함께 그간 금융사기를 취재하며 피해자들이 공통으로 했던 이야기들이 하나둘 떠올랐다. 수사에 의지를 보이는 경찰서를 찾느라 열 곳 이상 경찰서를 돌았다던 A 씨, 피해 증거를 보여줘도 현재 진행 중이 아니면 잡을 수 없다는 경찰의 말에 직접 ‘미끼’가 돼 사기임을 알고도 돈을 지불한 B 씨…. 이들은 입을 모아 “일선 경찰서에서 수사 의지를 보이지 않는다”고 하소연했다.

그러는 사이 금융사기는 더 진화했다. 2년 동안 사칭 사기로 피해를 입고 있다는 김민경 법무법인 에스엔 변호사는 매일 3~4통의 항의 전화를 받고 있다. “피해자들로부터 하루에도 몇 차례 항의 전화가 온다. 더 견디기 어려운 건, 이제는 금융사기 집단이 피해자들을 ‘협박’까지 한다는 점이다.”

김민경 변호사는 ‘변호사 사칭 광고’의 피해자다. 금융사기 집단은 김 변호사를 사칭해 금융사기 피해자들을 모으고, 이들에게 ‘피해자금을 회수해주겠다’며 착수금을 받았다. 금융사기 피해를 두 번 입은 피해자들은 김민경 변호사와 직접 통화한 후에야 자신이 ‘사기’를 당했음을 깨달았다.

김 변호사에 따르면 금융사기 집단은 단순 사칭을 넘어 ‘협박’까지 해서 피해자들에 돈을 뜯어낸다. “피해자들에게 사칭임을 밝힌 후, 피해자가 사기 집단에 돈을 입금하지 않겠다고 말하면 가짜 ‘소장’을 보낸다. 이걸 본 피해자는 엄청난 두려움에 빠진다.”

지난해 10월, 김민경 변호사를 포함해 서울지방변호사회에서 변호사 사칭을 단체 고발했지만, 수사엔 진전이 없다. 결국 ‘자력 구제’하는 방법밖에 없다. 김 변호사는 2차 금융사기에 당하지 않으려면 ‘온라인’을 통한 거래를 지양하고 ‘정보 확인’을 ​확실히 ​해야 한다고 말한다. 대한변호사협회에 등록된 변호사 번호 등을 확인하고, 변호사와 ‘직접 만나’ 상담해야 한다는 것이다.

대한변호사협회는 이 같은 사기에 직권 조사로 대응하고 있다고 밝혔다. 대한변협 관계자는 “대한변협 소속 법질서위반 감독센터에서 변호사 사칭 사이트 등에 대해 논의할 예정”이라고 설명했다.​

전다현 기자

allhyeon@bizhankook.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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