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대통령이 지난 11일 수석비서관회의에서 “임기 후반기에는 소득·교육 불균형 등 양극화를 타개하기 위한 전향적인 노력을 해야 한다”고 말했다. 윤 대통령은 양극화 문제 해결을 강조하며 “미국 대선에서 교훈을 얻어야 한다”는 말도 덧붙였다. 양극화로 미국 사회에 쌓인 갈등과 불만이 도널드 트럼프 후보의 대선 승리 요인이 됐다고 본 것이다.
윤 대통령이 양극화 문제를 언급한 것은 반가운 일이다. 그런데 집권 후 일관되게 ‘부자감세’를 밀어붙이고 정부 역할을 축소해 사회 양극화를 키운 장본인이 바로 윤 대통령이다. 윤석열 정부는 지난해와 올해 발생한 90조원 가까운 세수 결손을 메우기 위해 저소득층 공공임대주택 예산도 2조5000억원 삭감했다. 비수도권 지역에 지원을 늘려도 부족할 판에 지방교부세·교부금을 6조5000억원을 감액한 게 불과 보름 전 일이다. 윤 대통령 발언이 진정성을 가지려면 지금까지 펼친 민간·시장 중심 정책과 부자감세에 대한 통렬한 반성과 구체적인 실천 대책이 뒤따라야 한다.
경제가 누란의 위기이고, 민생은 최악이다. 자영업자 4명 중 3명은 한 달 소득이 100만원에도 미치지 못하고, 일자리가 없어 일도 않고 구직 활동도 않는 청년 실업자가 넘쳐난다. 전망은 더욱더 어둡다. 한국개발연구원(KDI)은 12일 내수 회복 지연과 미국의 ‘트럼프 2기’ 출범에 따른 대외경제 불확실성 확대 등으로 향후 경기의 급하강을 경고했다. 올해 성장률 전망치를 2.5%에서 2.2%로 3개월 새 0.3%포인트 끌어내리고, 내년은 2.1%에서 2.0%로 낮췄다.
이날 서울 외환시장에서 원·달러 환율은 2년 만에 종가 기준으로 달러당 1400원을 넘었다. 지난주 미국이 기준금리를 낮췄지만 원화 가치는 되레 떨어졌다. 1997년 외환위기와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에 준하는 비상 상황이다. 정부의 증시 부양 노력에도 코스피 지수는 추락하고 있다. 내린 주가가 환율 상승을 부르고, 상승한 환율이 다시 주가 하락을 부르는 악순환 중이다. 환율이 오르면 수출이 늘어야 하지만 ‘트럼프 체제’에서는 기대 난망이다. 트럼프 당선인 공언대로 10~20%의 관세가 도입되면 자동차나 배터리 업계는 가격 경쟁력 하락과 수출 감소가 불가피하다. 미국의 대중국 제재 강도가 높아지면 반도체 수출도 악영향을 받는다.
윤 대통령은 지금이라도 정책 방향을 전면 전환해야 한다. 양극화 주범인 부자감세부터 철회하고, 재정을 풀어 서민 복지를 확대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10%대로 추락한 지지율과 김건희 여사에 대한 시민들의 분노를 희석하기 위한 말로 볼 수밖에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