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극화를 완화하기 위해 정부의 시장 개입 강화도 불사하겠다는 의지를 밝힌 윤석열 대통령이 12일 “불법 채권추심 행위는 서민의 삶을 무너뜨리는 악질적인 범죄”라며 “검·경은 수사 역량을 총동원해 불법 채권 추심을 뿌리 뽑으라”고 말했다. 금융당국엔 “서민금융지원 정책을 전면 재점검해 서민들이 불법 사채의 덫에 빠지지 않도록 하라”고 지시했다.
윤 대통령은 불법 추심에 시달리다 6살 딸을 남겨둔 채 극단적 선택을 한 30대 싱글맘 A씨의 사연을 최근 언론 보도로 접한 뒤 “분노하지 않을 수 없었다”며 이같은 지시를 내렸다고 정혜전 대통령실 대변인이 전했다. A씨는 ‘죽어서도 다음 생이 있다면, 다음 생에서도 사랑한다. 내 새끼 사랑한다’는 유서를 남기고 지난 9월 전북 한 펜션에서 세상을 떠났다.
대통령실은 윤 대통령의 불법 채권추심 관련 지시가 양극화 해소 대책의 일환이라 설명했다. 윤 대통령은 전날 “중산층이 탄탄한 마름모 사회로 나가야 한다”며 “임기 후반기에는 정부가 직접 개입해서라도 소득·교육 불균형 등 양극화를 타개하기 위한 전향적인 노력을 해야 한다”고 밝혔다.
대통령실 고위 관계자는 이날 브리핑에서 “불법 금융도 양극화 문제의 사례로 볼 수 있어 개선 방안을 강구해나갈 것”이라며 “시장의 일차적 분배 기능이 작동하지 않아 양극화가 초래된다면 정부가 나서 이차적 분배 기능을 수행하겠다”고 말했다. 재정 기조와 관련해선 “단순한 확장재정이 아니고 양극화 타개에 필요한 부분을 집중적으로 지원하겠다는 취지”라고 덧붙였다.
내달 초 발표 예정인 소상공인 종합 지원 대책에 대해 이 관계자는 “소상공인의 생업 관련 피해를 해결하는 내용을 포함해 논의할 것”이라며 “‘노쇼(예약부도)’ 문제에 대한 대책도 발표할 예정”이라고 설명했다. 핵심 쟁점인 배달 플랫폼 수수료 문제는 난항을 겪고 있는 배달앱 상생협의체 논의 결과를 더 지켜보겠다는 입장이다.
대통령실은 양극화 대책의 기본 뼈대로 ‘사다리론’을 강조하고 있다. 서민이 중산층으로, 중소기업이 중견기업으로 올라설 수 있는 성장의 사다리를 시장이 놓을 수 없다면, 정부가 나서야 한다는 취지다. 윤 대통령은 전날 참모들과의 회의에서 장기간 일자리를 얻지 못해 사실상 구직을 포기한 청년 백수 사례 등을 거론하며 “미래 세대가 공부와 일자리를 구하려 할 때 제약이 되는 일이 없도록 장학금 확대 등 기회의 사다리를 만들어줘야 한다”고 강조했다고 한다.
대통령실 핵심관계자는 “예를 들어 방산과 원전 수출의 경우 그 수혜를 대기업뿐 아니라 중견·중소 기업도 함께 누려야 하지 않겠느냐”며 “부처별로 어떤 사다리를 놓아야 양극화 해소에 도움이 될지 검토 중”이라고 말했다.
여권 일각에선 윤 대통령의 이런 행보가 이명박(MB) 정부의 지지율 반등 사례를 참조한 것이라는 말도 나온다. 광우병 파동과 ‘강부자(강남 땅 부자) 정권’이란 비판을 받으며 취임 첫해 지지율이 10%대까지 추락했던 MB는 집권 2년 차에 ‘친서민 중도실용'으로 국정 기조를 확 바꿨다. 이후 보금자리주택과 소외 계층을 대상으로 한 미소금융, 저금리 장학금 대출 등의 정책으로 지지율을 50%대까지 끌어올렸다.
대통령실 관계자는 “양극화 타개는 경제 지표가 아무리 좋더라도 서민들이 체감하지 못하면 큰 의미가 없다는 윤 대통령의 문제의식에서 출발한 것”이라며 “앞으로 정부가 더 적극적으로 역할 할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