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국은 세계가 주목한 기적의 나라다. 불과 반세기 만에 최빈국에서 선진국으로 도약한 유일한 사례다. 저렴하고 숙련된 노동력, 정부 주도의 자본 투자와 제도, 재빠른 기술 학습 등을 원동력으로 꼽는다. 그러나 올해 노벨경제학상 수상자인 조엘 모키어 노스웨스턴대 교수는 이보다는 ‘문화’가 국가 성장을 이끄는 핵심이라고 봤다. 모키어 교수에 따르면 문화는 사회 구성원들의 신념, 가치 체계로서 국가의 지식과 혁신이 생산·확산되는 방식을 결정한다. 따라서 문화는 풍습이나 전통처럼 주어진 환경 요인이 아니라 경제성장과 혁신을 결정하는 선택적 요인으로 봐야 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역설적으로 지금 우리는 그 문화의 그늘을 마주하고 있다. 세계 최고 수준의 자살률, 최저 출산율, 극심한 경쟁과 고립은 경제나 사회구조 문제가 아니라 문화의 위기로 봐야 해법이 보인다는 것이다. 풍요 속에서도 불안은 커지고 신뢰는 줄어들고 있다. 사회는 ‘함께 사는 법’을 잃고 각자 살아남기 위한 ‘각자도생’의 논리가 지배하고 있다.
모키어 교수의 관점에서 보면 이는 문화가 정체된 것이 아니라 문화의 양면성 때문에 잘못된 방향으로 진화한 결과다. 산업화 시기의 근면과 성취의 문화가 ‘비교와 서열의 문화’로 변했고 공동체 정신은 집단 이기주의로 왜곡됐다. 교육은 협력보다 성적을, 기업은 지속 가능성보다 단기 성과를 추구한다. 과거의 성공 요인이 오히려 실패 원인으로 작동하는 ‘이카루스 패러독스’와도 같은 맥락이다. 과거 ‘급속 성장’ 문화가 오늘날 ‘소진의 문화’를 탄생시킨 것이다.
이제는 문화의 재설계가 필요하다. 문화는 의지에 상관없이 주어지는 종속변수가 아니라 우리가 선택하고 바꿀 수 있는 독립변수로 다뤄야 한다. 제도 개혁도 필요하지만 그에 앞서 사람들이 공유하는 가치와 행동 양식을 바꾸는 일이 중요하다. 단기 성장 중심에서 행복 중심으로, 경쟁에서 협력으로, 효율에서 돌봄으로 문화의 축을 이동시켜야 한다. 학교는 협력적 문제 해결을, 기업은 인간 중심의 경영을, 정부는 사회적 관계망 회복을 우선해야 한다.
문화의 재설계는 추상적 이상이 아니다. 산업화 시대의 급속 성장 문화가 한국의 경제 기적을 만들었다면 이제는 ‘공존 공생 문화’가 새로운 도약을 이끌 차례다. 기술은 이미 선진국 수준에 이르렀지만 문화가 바뀌지 않는 한 미래를 위한 핵심 동력이 만들어지기 어렵다. 지난 세기 산업화와 민주화를 이뤄낸 성취의 문화가 지금은 과도한 경쟁과 압박의 문화로 변질됐기 때문이다. 이제는 지식과 혁신의 문화는 유지하되 성취의 압박을 완화하고 일상의 행복감을 높이는 방향으로 재설계해야 한다.
이를 위해 교육·노동·돌봄·정신건강·미디어를 아우르는 정책 묶음을 마련할 필요가 있다. 협력적 학습, 인간 중심의 노동, 돌봄과 휴식의 제도화, 정신건강 지원, 공존 공생의 미디어 서사를 통합적으로 추진해야 한다. 이는 단순한 선언이 아니라 현장 실험으로부터 출발해야 한다. 지역이나 학교·기업 단위에서부터 실험과 평가를 거쳐 확산시키는 방식으로 문화 진화를 설계할 필요가 있다.
원래 각자도생은 인간의 본성이 아니고 성공 문화도 아니다. 인류는 협력과 연대를 통해 진화해왔고 우리 민족은 한마음 공동체 속에서 신바람을 낼 수 있다. 문화의 방향을 다시 설계해 각자도생의 경쟁 사회를 극복한다면 우리는 또 한 번 인류사적 전환의 주인공이 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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