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민간 주도로 우주를 개발하는 뉴스페이스 시대에 접어들며 중국·러시아 등의 우주안보 위협도 커지는 만큼 관련 대비가 시급하다고 우주·국방 분야 권위자들이 입을 모았다. 발사 비용을 10분의 1로 낮추는 민간의 혁신으로 비단 우주관광이나 자원채굴 같은 청사진만이 아니라 우주군(軍)이 신기술을 악용해 국가 인프라를 공격하고 인공위성을 오가는 민감 정보를 탈취하는 식의 위협도 현실화할 거라는 전망이다. 특히 한국은 선진국에 크게 밀리는 우주 분야 예산을 국방 강화의 연장선에서 과감히 늘릴 필요성이 제기됐다.
존 패트릭 주한 미우주군 사령관은 28일 ‘서울포럼 2025’의 특별행사 ‘서경우주포럼 2025’에서 “정부가 우주 관련 위험을 관리할 수 있다는 생각은 더이상 유효하지 않다”며 “지난 10년 간 중국의 궤도 수행 능력은 260% 증가했고 궤도에 배치된 탑재체 217개 중 절반이 정보 수집과 감찰 임무에 쓰인다”고 말했다. 그는 그러면서 “장기적으로 국가 안전은 ‘우주우위’ 달성에 달렸다”며 “우주에서 경쟁국들의 위협이 증가하면서 우위를 위한 군의 필요성이 명확해졌다”고 강조했다. 미국 스스로도 재사용 발사체로 발사 비용을 10분의 1로 낮춘 스페이스x가 최근에는 군수물자를 수송할 수 있는 대형 우주선 ‘스타폴’ 개발에 나서는 등 민간의 기술 혁신이 국방으로도 확산되는 양상이다.

기조강연에 나선 윤영빈 우주항공청장은 관련 대비를 위한 예산 확대를 강조했다. 그는 “현재 우주 분야 예산은 1조 원, 국내총생산(GDP) 대비 0.03%밖에 안 된다”며 “우리도 선진국처럼 GDP 대비 0.1% 이상인 3조 원까지 늘려야 한다”고 말했다. 특히 우주는 인공위성은 물론 데이터센터 같은 핵심 정보기술(IT) 시설이 들어설 공간으로서 안보 체계가 점점 필요해지고 있다. 윤 청장은 “인공지능(AI) 산업에 필요한 전력을 우주 데이터센터로 해결할 수 있다”며 “대형발사체를 이용하면 부품들을 어느 정도 조립한 모듈 채로 실어올려 연결하는 방식으로 쉽게 데이터센터를 건설할 수 있다”고 했다.
이날 축사와 패널 토론에 나선 관계자와 전문가들도 이들의 말에 동의했다. 이영수 이영수 공군 참모총장은 “우주 경제와 안보는 불가분의 관계”라며 “우주청과 군이 협력해야 한다”고 말했다. 권현준 우주청 우주항공정책국장은 “(약 4조 원 규모의) 한국형 위성항법시스템(KPS) 개발사업처럼 우주 개발 사업은 막대한 예산이 들어 민과 군이 단독으로 추진해서는 타당성을 확보하기 어렵다”ㅕ “양측의 협력이 반드시 필요하다”고 했다. 이상철 한국항공우주연구원장은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을 통해 우주가 얼마나 중요한 전장인지 여실히 드러났다”며 “(한국도) 과거와 달리 지켜야 할 우주자산도 점점 늘어나고 있다”고 짚었다. 박장현 한국천문연구원장도 “오늘날은 전략적으로 가장 복잡한 시대이며 우주 기술은 생존을 위해 반드시 필요하다”며 “우리는 특히 우주에서도 지정학적으로 중국·러시아·북한 위협의 한가운데에 있다”고 경고했다.
산·학·연 전문가들은 이를 위한 다양한 보완책이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임종인 대통령실 사이버특별보좌관은 단순 우주군 강화를 넘어 민·관과 국제 협력을 포괄하는 사이버안보 체계 구축이 병행돼야 한다고 봤다. 그는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에서 저궤도 위성 같은 우주자산이 보안체계가 전혀 갖춰지지 않아 쉽게 해킹이 가능했던 사례가 있다”며 “(군뿐 아니라) 사이버보안에 대한 기술적 대비 역시 동맹국들과 협업해서 초기에 갖춰야 한다”고 말했다. 정해욱 공군본부 우주센터장은 “우주 작전을 위해서는 국제 협력이 필수적”이라며 우주군 간 국제 공조 필요성을 강조했다. 또 “공군의 우주력 확보는 공군만을 위한 것이 아니며 획득한 정보는 다양한 분야에 전파되고 기여할 수 있다”며 군의 우주안보 강화가 민간의 우주산업 발전으로도 이어지는 호혜적 관계를 구축할 수 있다고 조언했다.

유창경 한국항공우주학회장은 “우주청은 조직구조상 발샃, 수송, 위성탐사 등 세 가지 R&D에 집중하고 있다”고 지적하며 “우주 서비스, 제조, 바이오 등 우주기술이 응용될 다양한 분야에서도 거버넌스를 가져갈 수 있는 구조인지 되돌아봐야 한다”고 했다. 우주 산업이 국방을 포함해 다양한 분야로 확산되는 만큼 R&D 조직도 개편할 필요성이 있다는 것이다. 이재우 한국우주안보학회장도 우주청의 조직 개편 필요성을 시사했다. 그는 “우주청에는 군과 국방(협력)과 관련된 기능이 빠져있다”며 “민·관·군 협력을 실현하기 위해서는 이 부분을 고민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런가하면 곽신웅 한국국방우주학회장은 우주 분야에서도 우리 군의 ‘자강(自強)’을 강조했다. 그는 “한반도에서 미군이 레이더 같은 우주자산을 확보하는 데는 한계가 있다”며 “우리 공군이 이를 확보하면서 미군과 공조해야 양국 협력이 강화될 수 있다”고 말했다.
산업계를 대표해 참석한 이준원 한화에어로스페이스 전무는 미국 항공우주국(NASA)이 스페이스X 등 자국 우주기업 기술을 적극 도입하는 것처럼 한국도 정부가 민간 수요를 충족해주는 풍토가 뒷받침돼야 한다고 봤다. “민간이 개발한 기술은 비싸기 때문에 (이를 사줄 수 있는) 군의 수요가 가장 중요하다”며 “군은 이 부분에 대해 미온적인데 어떻게 해결할 수 있을지 같이 고민해봐야 한다”고 했다. 다양해지는 기술 경쟁 속 제도적 뒷받침도 요구된다. 김덕수 스페이스맵 대표는 “전 세계적으로 (우주기술 관련) 규제가 만들어지고 있는데 (자국 기업 보호를 위해서는) 선제적으로 규제 정비에 나서야 한다”고 제언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