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취임한 지 9일로 80일이 됐다. 트럼프는 대통령에 오른 뒤 중동과 우크라이나에서 벌어지고 있는 전쟁을 멈추라고 압박했다. 그러나 정작 본인은 전 세계를 상대로 관세를 이용한 전쟁을 시작했다. 미국은 중국과 갈등은 물론 대서양 동맹을 맺었던 유럽과 파열음을 내고 있다. 한덕수 대통령 권한대행이 트럼프와 8일 처음으로 통화하고 동맹 관계를 확인했지만 한·미·일 안보 협력은 안갯속이다. 트럼프 행정부가 본토와 대만 방어에 집중하겠다는 입장을 정했고, 동맹 관계조차 거래로 여기는 듯하고 있어서다. 말 그대로 혼돈과 격랑의 시간이다. 이런 와중에도 트럼프는 지난달 31일(현지시간) “북한과 소통하고 있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과 뭔가 할 것”이라며 러브콜을 날렸다. 브로맨스라 불리는 트럼프와 김정은의 공통점을 보여준 80일이다.
일단 지르고, 협상은 나중에
관심 끌기 위해 악평도 불사
치킨 게임 즐기기도 판박이
‘절대 케미’, 긍정 결과 내놔야

① “강경에는 초강경”
트럼프 행정부는 무역 적자 해소를 명분으로 중국산 제품에 대해 기본 관세(10%+10%)에 상호관세(34%)를 추가했다. 이에 중국은 같은 비율의 관세를 부과하겠다며 맞섰다. 중국의 보복 관세 예고에 트럼프는 50%의 추가 관세 부과 카드를 꺼냈다. ‘내 요구에 저항하면 나는 더 세게 나간다’는 식이다. 캐롤라인 레빗 백악관 대변인은 지난 8일(현지시간) “미국은 맞으면 더 세게 맞받아칠 것이고, 이것이 중국에 대한 104% 관세가 시행되는 이유”라고 밝혔다. 이는 “강경에는 초강경”이라는 주장을 일삼는 김정은을 연상시킨다. 북·미가 긴장을 한껏 고조시키던 2017년 말 트럼프가 미사일을 쏘아 대던 김정은을 향해 “꼬마 로켓맨”이라고 비꼬자 김정은은 “늙다리 미치광이”라고 받아쳤다. 대북 제재와 압박에 북한은 수소폭탄 실험과 미국 본토를 공격할 수 있는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카드로 맞서고, 한·미 연합훈련에는 미사일 발사로 응수하기도 했다. 북한은 대내적으로는 “조선(북한)이 깨지면 지구가 깨진다”며 주민들의 결사항전을 주문한다. 북한은 최근 들어선 ‘초강경’보다 한발 나간 ‘최강경’이라는 표현을 쓰고 있다. 전쟁이냐 대화냐 양자택일하라거나, 일단 크게 질러 놓고 나중에 협상하는 식으로 소심한 이들은 피하는 치킨 게임을 즐기는 것이다.
② ‘관심종자’
관심을 끌려는 심리 역시 트럼프와 김정은의 공통점이다. 지난해 11월 미국 대통령 선거 직후 미국의 정치 평론가 카라 스위셔는 CNN에 출연해 “트럼프가 (일론) 머스크의 존재감을 불편해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두 사람 모두 세간의 관심을 받고자 하는 ‘관심종자’(관종) 성향이 강하기 때문이라는 이유에서다. 실제 트럼프는 1기 때 자신의 책사였던 스티브 배넌 전 백악관 수석전략가가 타임지 등에 실리며 주목을 받자 순식간에 해고했다. 트럼프는 또 지난주 전 세계를 향해 관세 폭탄을 날린 뒤 자신의 골프장을 찾아 티샷하는 장면을 촬영한 영상을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올려 뒷말을 남겼다. 관심을 유도하려는 그의 행동은 호평과 악평을 가리지 않는 듯하다.
김정은이 선대 지도자와 가장 큰 차이라면 외부를 향해 ‘친절’해졌다는 점이다. 김정은은 핵 관련 시설이나 미사일 기지를 방문하고, 군사 기밀에 속하는 관련 시설의 사진을 북한 매체에 그대로 노출한다. 최근 일부 모자이크 처리를 하기는 하지만 군사 작전지도 역시 공개한다. 김일성·김정일 때는 상상하기 어려운 장면이다. 김정일(2011년 사망) 국방위원장은 2000년 남북 정상회담 당시 “서방에서 나를 은둔의 지도자라고 한다. (김대중) 대통령님 덕분에 은둔에서 해방됐다”고 했을 정도다. 김정은이 부인과 딸을 이용한 관심 끌기는 관종의 하이라이트다. 김정일은 공개 석상에서 부인을 공개한 적이 없다. 그런데 김정은은 2012년 7월 25일 북한 매체를 통해 이설주가 부인이라고 알렸다. 두 사람은 팔짱을 끼고 현지지도에 나서 눈길을 끌었다. 당시 북한을 대변하는 재일본조선인총연맹(총련) 기관지 조선신보는 이설주 공개와 관련해 “(김정은은) 공개성의 과정을 중시한다”며 “명확한 의도에 따라 준비됐고, 자신감의 표현”이라고 전했다. 김정은은 2022년 11월엔 주애라고 알려진 딸을 데리고 나오기도 했다. 북한의 핵과 미사일에 ‘식상’해진 서방 언론이 그해 9월 9일 북한 정부수립기념 공연에 나온 한 여학생을 김정은의 딸이 아니냐고 보도하며 주목하자 아예 실제 딸을 공개하며 관심 끌기에 나선 것이다.
③ “무조건 내 뜻대로”
김정은은 집권 후 간부들에게 “불가능이라는 단어가 있다면 그건 조선말(북한말)이 아니다”고 강조했다. “계란에 사상을 담으면 바위를 뚫을 수 있다”라고도 했다. 이후 북한에는 “대답은 오직 하나! 네 알겠습니다”라거나 “당(최고지도자)이 결심하면 무조건 한다”는 등 무조건 복종만을 요구하는 구호가 북한 전역으로 퍼져 나갔다. 이런 몰아붙이기식 주문은 핵, 대륙간탄도미사일, 극초음속미사일 등 군사분야에서 ‘결과물’도 낳았다. 2021년 1월 매년 평양에 1만 채의 살림집(아파트)을 지으라는 지시에 군과 주민, 학생들은 24시간 건설 현장에 투입됐다. 2022년 송화 지구를 시작으로 화성 지구에 1·2·3단계 각각 1만 채의 아파트가 들어섰다. 한국에선 아파트 단지를 건설하는 데 32~36개월이 소요된다. 북한의 아파트는 지하 주차장이 없고, 철거할 대상이 없는 곳에 건설하고 있어 공사 기간을 단축할 수 있다지만 장비와 자재가 부족한 상황에서 한국의 3분의 1 수준으로 기간을 단축한 건 부실의 우려를 낳고 있다.
지금까지 보여준 트럼프의 정책을 좋게 표현한다면 기존 질서의 해체다. 하지만 브레이크 없는 질주다. 공무원 감축이나 관세 전쟁으로 인한 인플레이션 등 미국 내 우려와 경고조차 뭉개기 일쑤다. 관세 시행으로 1경원에 달하는 주가가 증발해도 트럼프는 “약이 필요하다”라거나 “과도기”라고 합리화한다. 오히려 독불장군식 막무가내라는 표현이 어울린다.
트럼프는 수시로 “김정은과 잘 지냈다”고 밝혔다. 외형적으로 두 사람이 ‘절대 케미’임에는 틀림없다. 북한은 미국 정부를 비난하면서도 트럼프 때리기는 주저한다. 자신과 잘 맞는 트럼프를 활용한 북·미 관계 개선을 노리는 김정은의 지시가 있었을 거다. 하지만 서로를 너무 잘 알고 있는 두 사람의 성향상 ‘모’가 아니면 ‘도’가 될 수 있다. 어떤 경우에도 한반도를 위험에 빠뜨리는 일은 없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