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리미엄 베트남 평화여행’으로의 초대 ‘하미’…“우리 정말 평화로운가요?”

2025-07-07

객석에 스팟 조명이 비추면 그 자리 관객은 베트남 전쟁 학살 생존자가 된다. 배우들은 그가 베트남어를 하고 있다는 가정하에 연기를 이어가는데, 갑작스런 상황에 객석에는 옅은 웃음이 번진다. 하지만 속사포처럼 쏟아지는 학살의 진상에 이내 어색한 침묵이 감돌고, 홍삼 캔디와 파스 따위 값싼 선물을 피해자에게 건네는 데서 위화감은 커진다. 무대 위 지리멸렬한 소동이 이어지면서 다시 객석에는 웃음이 퍼지지만, 그 웃음은 이전과 같은 것일까.

연극 <하미>는 베트남 전쟁 종전 50주년을 기념하여 ‘프리미엄 베트남 평화여행’을 떠난 한국 관광객의 여행기를 그린다. ‘경기도 다낭시’로 불릴 정도로 한국인이 많이 찾는 다낭은 베트남전의 격전지였고, 다낭 인근 하미 마을에선 한국군이 민간인 135명을 학살했다. 마을에는 2000년 피해자 위령비가 세워졌는데, 현재는 한국 정부의 압력으로 비문이 연꽃 모양 대리석으로 가려진 상태다. ‘평화여행단’이 이 곳에서 벌어진 학살 사건을 마주하면서 예상치 못한 소동에 휩싸인다는 것이 작품의 얼개다.

극단 신세계의 김수정 연출은 이전부터 한국사회 모순을 날것으로 들이미는 연극을 선보여왔다. 김 연출은 2021년 <별들의 전쟁>에서 베트남전 민간인 학살을 둘러싼 ‘가해자성’에 대한 이야기를 풀어놨다. 미국의 전쟁에 ‘용병’으로 참여해 피를 흘린 피해자이면서 민간인 학살을 저지른 가해자였던 한국, 뒤엉킨 현실을 이유로 진상규명과 사과를 애써 외면해온 한국적 상황 같은 것들이다. 이러한 문제의식으로부터 <하미>는 ‘불편한’ 질문들을 던진다.

“사실 우린 휴전국이기 때문에 언제 전쟁이 날지 몰라, 간신히 미국한테 빌붙어 나라 지키고 있는 것 아닌가요? … 휴전국인 것도 망각하고, 우리가 과거에 한 잘못도 망각하고, 그래서 베트남 학살 피해자들을 보고 아무런 인정도 사과도 하고 있지 않은 우리는, 정말 평화로운가요?” “그동안 관심도 없던 사람들이 여행 와서 피해자 몇 명 만나고 갑자기 우리가 한국 대표다, 사과하자. 본인들이 가해자가 아니니까 대신 사과해서 편하게 도덕적 우월감을 느끼고 싶은 거잖아요.”

<하미>의 문제의식은 우리 안에 내면화한 ‘군사주의’로 확장된다. 배우들은 가해 책임, 군대의 필요성 등을 두고 팽팽하게 대립하며 논쟁을 벌이지만, 현실은 단순하게 양분되지 않는다. <하미>는 관객들을 연극에 끌어들여 저마다의 판단을 요구한다. 관객들을 베트남 마을 주민에 위치시키고, 무대 위 ‘피해자 관광’을 다니며 추태를 부리는 한국인들을 지켜보게 하는 것이다.

배우들은 민망할 정도로 관객들을 응시한다. 차별적 발언을 숨쉬듯 내뱉으며, 카메라를 총구처럼 객석에 들이댄다. ‘주민 되어보기’는 하미 마을 어린이들에게 장학금을 나눠주는 장면에서 극적으로 표출된다. 배우들이 객석으로 들어와 관객 모두에게 봉투를 나눠주는데, 베트남어로 무언가 쓰여 있는 봉투 안에는 1000동(약 50원) 지폐가 들어있다. 연극이 끝나고 난 뒤 번역기로 확인한 봉투의 문구는 다음과 같았다. “평화가 항상 당신 곁에 있기를 바랍니다.”

파국에 이르는 ‘평화여행’의 시점은 2025년 2월. 상상도 못한 계엄이 발생할 수 있던 밑바탕이 한국사회의 과거 청산 회피와도 무관치 않다는 암시로 읽힌다. 새 정부 출범에 맞춰 지난달 두 명의 베트남전 학살 피해생존자가 한국을 찾았다. 이들은 베트남전 민간인학살 국가배상소송 1·2심 판결을 수용하고, 진상조사를 통한 사실 인정과 공식 사과를 촉구했다. 아르코예술극장 소극장에서 13일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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