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 임종을 지킬 때, 가족 모두 어찌해야 할지 몰라 두서없이 작별을 고했어요. 누구부터 인사해야 할지,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모르겠더라고요. 아버지의 죽음을 착실히 준비했지만, 임종 직전 마지막 인사만큼은 그러지 못했습니다. 결혼식, 돌잔치는 다 사회자가 있는데 임종에는 왜 사회자가 없을까요?”
죽음에 관한 르포르타주『그렇게 죽지 않는다』(어떤책)를 쓴 홍영아(53) 작가가 취재한 50대 여성의 이야기입니다. 부모의 임종 순간 무엇을 해야 하는지 알려주는 사람은 없습니다. 죽음에 관한 이야기는 금기시돼 대화의 주제도 되기 어려워요. 그러다 보니 대부분 경황 없이 부모의 죽음을 맞이하게 됩니다.
홍 작가는 이 생략된 이야기에 귀 기울였습니다. 그는 KBS 다큐멘터리 ‘인간극장’ ‘병원 24시’ ‘한국인의 밥상’ 등을 집필하며 20년 넘게 방송작가로 활동했습니다. 2013년 ‘KBS파노라마-우리는 어떻게 죽는가’를 제작하며 수많은 말기 암 환자의 투병 과정을 지켜보았어요. 취재하며 보게 된 죽음의 실체는, 드라마나 영화 속 죽음과 달랐다고 합니다.
이후 홍 작가는 암 전문의부터 중환자실 간호사, 요양병원 의료진, 유골함 판매원, 장례지도사, 가족을 떠나보낸 사람들까지 수십 명을 만나 이야기를 듣고, 죽음의 순간을 관찰했습니다. 그렇게 8년간 취재한 내용을 모아 책으로 펴냈습니다.
오늘 ‘더, 마음’에선 홍 작가와 함께 부모의 임종에 대해 이야기합니다. 부모의 마지막을 어떻게 준비해야 할까요. 어느 공간에서 어떤 방식으로 임종해야 후회가 없을까요. 부모의 주치의와 잘 소통하는 방법은 무엇일까요. 꼭 알아야 하지만, 어디에서도 듣기 힘든 진짜 죽음의 이야기를 들려드릴게요.
✅1. 임종실 없는 병원, 그럼 어디서 죽나
Q : 수많은 임종을 곁에서 지켜봤을 텐데, 죽음은 어떤 모습으로 오나요?
돌아가시기 직전 유언을 남기고 숨을 가쁘게 쉬다 잡았던 손을 툭 떨구는 장면, 드라마에 많이 나오잖아요. 근데 우린 그렇게 드라마처럼 죽지 않아요. 돌아가신 건지, 살아 계신 건지 갸웃할 정도로 죽음은 아무렇지 않게 갑자기 와요. 우리가 죽음에 대해 잘 모르니, 드라마와 영화에서 죽는 모습을 보며 오해하는 거죠.
Q : 우린 왜 이렇게 죽음에 무지한 거죠?
예전엔 가족의 임종을 집에서 맞는 게 당연했어요. 근데 지금, 죽음은 병원과 장례식장으로 싹 들어가 버렸어요. 1990년대 아파트가 기하급수적으로 늘면서 장례 문화가 다 바뀐 거죠. 일상과 죽음은 점점 분리됐고, 더는 죽는 모습을 볼 수 없게 된 겁니다. 죽음에 대해 배울 기회가 사라진 거죠.
Q : 그럼 병원에서 부모님 임종을 하는 사람이 대부분이겠네요.
거의 병원 아니면 요양원이죠. 그나마 임종실이 있으면 다행인데, 만약 없는 곳이라면 그때부턴 조금 복잡해집니다. 임종실은 임종기에 접어든 환자가 보호자와 마지막으로 인사를 나누며 죽음을 맞을 수 있도록 마련한 병실이거든요. 그런데 호스피스 병동이 설치된 의료기관을 제외하면, 임종실을 운영하는 곳이 많지 않아요. 대안으로 1인실을 생각해 볼 수 있지만, 1인실은 건강보험이 적용되지 않아 비싸거든요. 물론 1인실 잡기도 쉽지 않고요.
Q : 임종실도 없고 1인실도 잡지 못하면, 어디서 임종을 하나요?
임종 직전 병실에서 옮겨지는 곳이 바로 처치실입니다. 처치실은 간호 데스크 옆에 딸린 공간입니다. 물품을 쌓아 놓거나 다인실에서 할 수 없는 붕대 교체 작업 등을 위해 마련한 곳이에요. 임시로 임종실처럼 사용하는 거죠. 병원 임종은 여기서 많이 이뤄져요.
Q : 다인실에서 임종할 수는 없나요?
만약 6인실에 있다고 가정해 보세요. 병실에 있는 사람들 모두 저희 부모님이 언제 돌아가시나 귀를 쫑긋 세우고 있을 거예요. 아무리 커튼을 친다고 해도, 그런 상황에서 어떻게 부모님에게 허심탄회한 마지막 인사를 나눌 수 있겠어요. 게다가 다인실에선 부모님이 돌아가셨다고 펑펑 울면 안 되거든요. 그 공기가 병실 안으로 쫙 퍼지니까요. 다큐멘터리를 제작하기 위해 찾아갔던 요양원에는 아예 ‘대성통곡 금지’ 조항이 있기도 했어요.
✅2. 의사에게 ‘쫄지’ 마시라
Q : 죽음에 대해 잘 모르다 보니, 경황없이 부모님 임종을 하게 되는 것 같아요.
제가 『그렇게 죽지 않는다』라는 책을 쓴 이유이기도 해요. 보호자의 시선으로 보는 죽음 이야기가 필요하다고 생각했어요. “우리 아버지는 이렇게 돌아가셨어, 너희 어머니는 어땠니?” 이런 내용, 궁금하잖아요. 그런데 어디에서도 알려주지 않거든요. 미리 알았더라면 좀 더 장례를 잘 치렀을 텐데, 허둥대지 않았을 텐데 말이죠. 부모님 임종을 앞둔 분들께 실질적이고 구체적인 정보를 주고 싶었어요.
Q : 책에 나온 ‘의사를 향한 기계적인 믿음을 경계하라’는 말도 그런 맥락에서 나온 말인가요?
네. 우린 의료진이 시키는 대로 해야 부모님이 산다는 믿음이 있잖아요. 의사가 검사하자고 하면 안 하기도 어려워서 대부분 수락한다고요. 그런데 어떤 검사는 죽음을 기다리는 노인에게 치명적으로 위험하기도 해요.
Q : 그런 사례가 있었나요?
폐암 말기의 시한부 아버지를 둔 가족 이야기인데요, 아버님이 되게 낙천적이고 씩씩하셨어요. 잘 이겨내 보자며 병원에 입원했는데, 다음 날 의사가 대장 내시경 검사를 해야 한다는 거예요. 아버님은 장 청소를 위한 약물을 모두 마셔요. 이 약물을 마셔본 분들은 얼마나 고통스러운지 알잖아요. 손발이 차가워지고 진이 다 빠져요. 여든 살의 말기 암 환자가 감당하기엔 너무 힘든 거죠. 딸은 이해가 잘 안 가서 의사에게 묻거든요. 대체 말기 암 환자가 대장 내시경 검사를 왜 해야 하냐고 말이죠. 근데 의사가 이렇게 대답해요. “그럼 안 하셔도 돼요.”
Q : 안 해도 되는 검사였던 거예요?
꼭 필요하진 않았던 거죠. 제가 만난 보호자들이 하나같이 하는 말이 있어요. 의사에게 ‘쫄지 말라’고. 의사가 보호자인 나를 미워해서 치료에 최선을 다하지 않으면 어쩌나 하며 주눅들지 말라고요. 진짜 좋은 의사들 많거든요. 물어보면 다 설명해 줍니다. 의사의 말에 기계적으로 따라가지 마시고, 의사의 판단을 듣고 남은 가족들이 한 번 더 판단해야 해요.
Q : 이건 특히 자식들이 잘 챙겨야겠네요.
맞아요. 부모님들은 의사에게 잘 물어보지 못하세요. 자녀가 물어봐야 해요. 의사에게 “당신의 아버지라면 이 검사를 추천하는지” 물어보시고, 전문용어를 써서 못 알아듣겠으면 적어 달라고 하세요. 처방한 약 이름과 효능도 질문하고, 임상적 효과가 나온 논문이 있으면 보내 달라고 요구도 해보시고요.
의사에게 질문을 많이 하면 좋은 점이 또 있어요. 부모님이 “자식 둔 보람 있네” 하며 든든해 하신다는 거예요. 본인이 하고 싶은 말을 자식이 대신해 주니까요. 의사가 하는 말을 다 못 알아들어도, 이 정도의 연기는 괜찮지 않을까요.
✅3. 부모님 임종, 꼭 지켜야 할까
부모가 죽음을 앞두고 있을 때, 자녀가 꼭 살펴야 하는 게 있을까요?
암에 걸린 어머니를 호스피스에 모신 딸을 만난 적이 있어요. 어머니의 통증을 잡느라 딸은 정신없이 지내요. 그러다 하루는 어딘가에서 들려오는 장구 소리에 어머니가 눈을 반짝이거든요. 그때 깨달은 거죠. 어머니가 심심했구나. 아무리 아파도, 아픈 게 일상이 되면 심심하거든요. 딸은 어머니의 죽음을 두려워하느라 어머니가 어떻게 일상을 보내는지 까맣게 잊은 거죠. 많은 자식이 이 부분을 놓치더라고요.
Q : 부모의 임종을 지켜야만 자식의 도리를 다하는 거라는 믿음도 있죠.
부모의 죽음이 임박하면 임종을 지키려고 가족과 친척을 전원 집합시키잖아요. 사실 그런 임종은 불가능에 가까워요. 한 할아버지 유가족을 취재한 적이 있어요. 할아버지 임종이 다가오자 의사가 가족들을 다 부르거든요. 전국 각지에 흩어져 살던 자식들이 다 병원으로 와요. 할아버지에게 인사하고 쓰다듬고 손도 잡고, 울면서 마지막 인사를 나누죠. 그런데 하루가 지나도 할아버지가 안 돌아가시는 거예요.
자식들은 당황하기 시작해요. 결국 장남이 의사에게 “그래서 언제 돌아가신다는 거냐”고 묻거든요. 정말 아이러니죠. 회사에 휴가 내고 온 자식, 가게 문 닫고 온 자식은 일상으로 돌아가고, 평소 병시중 들었던 막내딸만 남아요. 그리고 그날 새벽에 할아버지는 돌아가세요. 결국 막내딸 외엔 아무도 임종을 못 지킨 거죠.
Q : 임종 지키는 것도 쉬운 일이 아니네요.
저희 아버지께 자녀들이 임종을 지켰으면 좋겠냐고 물어봤어요. 근데 “임종 지켜서 뭐해”라고 반문하시더라고요. 자녀들은 임종에 큰 가치를 두잖아요. 꼭 그러지 않아도 괜찮을 거 같아요. 오히려 부모님께서 살아계실 때 관계를 돈독하게 만드는 게 더 중요합니다. 장례식장에서 제일 크게 우는 자식이 가장 불효자라는 말이 있잖아요. 돌아가시고 나서 잘해드려 봐야 소용없으니까요.
✅4. 임종에도 사회자가 필요해
Q : 임종에 사회자가 필요하다는 건 어떤 의미인가요?
가족이 죽을 때, 보호자는 그 순간 뭘 해야 하는지 잘 몰라요. 인사를 해야 하는지, 울어야 하는지, 쓰다듬어도 되는지 몰라 우왕좌왕하거든요. 그걸 정리해 줄 사람이 필요해요. 아무래도 임종의 순간 항상 의료진이 함께하거든요. 그래서 의료진이 사회자 역할을 할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예를 들면 진행 멘트를 짜서 매뉴얼을 만들어 두는 거죠. 이런 매뉴얼은 의과대학이나 병원에서 별도의 커리큘럼으로 의료진에게 알려주면 정말 좋을 것 같고요.
Q : 만약 의료진이 없다면요?
우리 가족 안에서 누가 그런 역할을 할 것인지 미리 생각해 두는 게 필요해요. 아픈 엄마가 6개월을 못 넘긴다고 했을 때, 한 명이 사회자를 맡아 가족의 스케줄을 잡아주는 거죠. 예를 들어 첫 달은 첫째, 다음 달은 둘째, 그다음 달은 막내가 주관해 엄마를 돌보도록 하자. 그 한 달 동안 엄마와 어떻게 시간을 보내고, 어떤 이야기를 나누자 같은 거요. 임종이 급박해져서 돌아가며 한마디씩 하면, 시간에 쫓겨 진짜 하고 싶은 말을 할 수 없어요.
Q : 장례 치르는 순간에도 사회자가 필요할까요?
그럼요. 염할 때, 발인할 때, 납골당에 모실 때 가족끼리 모일 수 있는 시간을 주거든요. 그때 누군가가 “우리 돌아가면서 인사할까요”라고 진행해 보세요. 제 친구가 시아버지 돌아가셨을 때 그 역할을 했거든요. 장례 마지막 날 부조함을 여는데, 시아버지 영정 앞에 둘러앉아서 “50만원 나왔습니다, 박수!” “아버님 편히 가시라고 어린 조카가 5만원을 보냈네요, 이것도 박수!” 하면서 가족끼리 웃으며 시아버지를 추억했어요. 이 가족만의 ‘애도 세리머니’인 거죠. 이 시간을 어떻게 보내느냐에 따라 장례가 끝난 후 가족의 모습이 완전히 달라지더라고요.
(계속)
부모님과 잘 이별하는 방법, 또 어떤 것들이 있을까요.
부모님 임종 전 꼭 체크해야 할 정보 6가지는 아래 링크를 통해 보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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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희연([email protect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