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공지능(AI) 등 정보통신기술(ICT)의 눈부신 진화로 경제·사회 전반의 디지털 전환이 무서운 속도로 전개되고 있다. 전 세계 곳곳에서 도도하게 흐르는 디지털 전환의 물결을 슬기롭게 넘어서는 일은 이 시대 ICT산업 종사자의 기본 책무라 할 수 있다.
그 과업을 차질 없이 수행하기 위해서는 혁신의 고삐를 바짝 조여야 한다. 변화는 선택의 문제가 아니라 생존을 위한 필수요건이 된 지 오래다. 고(故)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이 30여 년 전 독일 프랑크푸르트에서 ‘신경영’을 선언하며 부단한 변화를 주문했던 기억이 생생하다. 이 회장은 “국제화 시대에 변하지 않으면 영원히 2류나 2.5류가 될 것”이라며 “마누라와 자식만 빼고 다 바꾸자”고 호소했다.
이 회장의 절박한 호소는 삼성이 국내 일등에 안주하지 않고 글로벌 초일류 기업으로 도약할 수 있었던 원동력이 됐다. 하지만 수년간 철옹성 같던 삼성 그룹의 위상도 흔들리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주력 사업의 부진과 성장 정체 때문이다. 이런 복합 위기를 헤쳐나가는 길은 결국 뼈를 깎는 변화와 혁신밖에 없다는 공감대가 커지고 있다.
AI가 주도하는 변화의 시대를 어떻게 헤쳐나갈 것인가. AI 시대에 대처하기 위한 기업인의 고민도 깊다. 지난해 11월 한국경제인협회가 개최한 ‘AI 혁명 시대의 기업가정신과 한국경제의 재도약’ 세미나는 이런 고민을 풀기 위한 자리였다.
기조연설을 맡은 이근 서울대학교 석좌교수는 “증기기관(1차 산업혁명)과 철도(2차 산업혁명), ICT(3차 산업혁명)를 지나 신기술이 주도하는 AI 혁명 시대를 맞이하고 있다”면서 “AI 혁명 시대에는 정부와 대·중소기업이 협업하는 K-기업가정신 모델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AI와 새로운 기회에 관한 발표를 맡은 윤상두 네이버클라우드 AI랩 소장은 AI 시대에 한국이 가진 강점으로 “생성형 AI와 클라우드, 데이터센터, 반도체, 컴퓨팅 인프라 등 전체 밸류체인을 갖춘 것”을 꼽았다.
윤 소장은 “국가나 기업이 자체 인프라·데이터를 활용해 독립적인 AI 역량을 구축하는 ‘소버린(sovereign) AI’를 바탕으로 새로운 사업 기회를 창출하고 해외 진출을 도모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를 위해 정부와 통신사, 대기업, 스타트업, AI 반도체 기업 등이 ‘원팀 코리아’로 글로벌 경쟁력을 높여야 한다고 덧붙였다.
나인성 티나클론 대표는 바이오 연구에 AI를 접목시켜 노벨화학상을 받은 알파폴드를 예로 들며, 제약·바이오 분야에도 새로운 시대가 도래했다고 강조했다. 알파폴드는 딥러닝 알고리즘을 활용하는 AI 프로그램으로, 단백질 접힘구조의 난점을 돌파하기 위해 개발됐다.
나 대표는 “신약개발 과정에 AI를 적극 활용한다면 한국의 제약바이오 역량이 한층 성장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또한 “국내 AI 바이오 등 미래 유망분야에서 개발된 신기술이 창업으로 이어지려면 기업가정신이 필요하다”고 부연했다.
오늘날 글로벌 경제환경은 하루가 다르게 바뀌고 있다. 국가 간 경쟁은 더욱 치열해지고 있으며, 강대국은 노골적으로 자국 기업을 편들고 있다. 험준한 글로벌 경제환경에 능동적으로 대처하기 위한 기업가정신이 절실하다. 기업가정신의 요체는 변화와 혁신이요, 그 성과는 정부와 대·중소기업의 긴밀한 협력으로 배가되리라 믿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