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다와 와인

2024-10-20

딸을 데리고 캐나다 토론토 온타리오 호숫가를 날마다 산책하며 근처 수족관도 자주 간다. 지구의 70% 이상의 면적이 바다지만, 그중 인간이 탐험한 부분은 고작 5%에 불과하다. 바다는 우주 탐사보다 더 어려운, 우리의 이해를 초월하는 암흑의 공간이다. 더구나 심해 화산활동으로 생긴 열수분출공(熱水噴出孔)에서 지구상 생명의 근원을 찾을 수 있다는 이론이 근래에 가장 유력하다.

삼면이 바다로 둘러싸인 한반도처럼 고대 그리스에 있어 바다는 풍요로운 음식의 공급처인 동시에 끝없이 탐험하고 정복해야 하는 대상이었다. 청동기 시대부터 발달한 뛰어난 항해술로 BC 8세기께에 이르러 에게해·지중해와 흑해를 모조리 둘러싸는, 서쪽으로는 아프리카 북부, 동쪽으로는 러시아까지 이르는 그리스 식민지 세상을 이룩했다.

호메로스의 서사시 ‘오디세이’는 바로 그리스의 적극적인 식민지 개척의 산물이다. 항해가 상징하는 미지의 세계와 그 공포감을 그렸다. 바다의 신 포세이돈의 노여움을 산 오디세우스는 결국 바다의 시험을 극복했다. 전쟁 영웅 아킬레우스가 죽음으로써 이룬 영광을 오디세우스는 성공적인 귀가로 이룩했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그리스인들은 바다에 대한 경이로운 감정을 일상생활에서 늘 마시는 와인을 통해 코믹하게 승화했다. “와인빛의 바다”라는 호메로스의 은유적 표현을 말 그대로 응용한 재치있는 도기화를 수없이 남겼다. 와인쿨러로 쓰이는 도기(사진)에 얼음을 가득 담고 와인이 가득한 널찍한 항아리에 둥둥 띄운다. 그러면 도기화에 그려진 돌고래를 탄 병사들이 와인빛 파도를 헤치며 빙글빙글 돌게 된다. 와인잔 모양을 새긴 방패를 들고 “나는 돌고래 기병대!”라고 외치는 해학적인 영상은 바다에 대한 공포감에 맞서는 희랍인의 진취적 기상을 상징한다. 왜를 쫓아내는 고구려의 병사들이 이런 기품을 지녔을 것이다.

김승중 고고학자·토론토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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