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촉발한 관세 전쟁에 세계가 긴장하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2기 행정부 출범 직후 자유무역협정(FTA)을 맺은 우방국임에도 캐나다·멕시코에 대한 25% 관세 부과 카드를 꺼내 들며 압박했고 중국에 대해서는 10%의 추가 관세를 예고했다.
캐나다·멕시코가 이 조치 직후, 관세 부과의 명분으로 내세웠던 불법 이민과 마약(펜타닐) 밀수에 대한 조치를 내놓자 이를 한 달 유예했으나 전 세계는 여전히 불안감을 떨치지 못하고 있는 상황이다.
국가와 품목을 가리지 않을 관세 폭격에 한국도 예외가 아니라는 전망이 나오면서 트럼프 행정부의 보편관세 정책 현실화에 맞설 한국 정부의 대응책이 시급하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5일 국회 의원회관 제3세미나실에서 열린 <트럼프2기 행정부 출범, 글로벌 무역 전쟁의 시초 보편관세 정책 대응 어떻게 해야하나?>도 그중 하나다.
더불어민주당 이재관 국회의원과 미래경제성장전략위원회가 주최하고 무역구제학회, 대한상공회의소, 한국무역협회가 주관·산업통상자원부와 KOTRA가 후원하는 이날 정책세미나에서 발제를 맡은 최창환 단국대학교 무역학과 교수(무역구제학회 회장)은 “트럼프 대통령을 움직일 수 있는 외부 국가나 국제기구는 지금 존재하지 않는다”며 “따라서 트럼프 대통령에게 전화할 수 있고 대화할 수 있는 미 상원 의원들과의 협력 관계를 조속히 구축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최 교수는 “텍사스, 조지아, 알라바마, 인디아나, 미시간 등 이 5개주 상원 의원이 매우 중요하다”며 “텍사스 경우 삼성전자가 450억 달러, 약 70조를 투자하고 있고 현대와 SK도 각각 수조 원을 투자하고 있기 때문에, 이들 상원 의원들이 이 투자 속도를 늦추거나 투자를 철회할 경우 사안은 굉장히 민감해진다”고 우려했다.
이어 “우리 산업계가 미 의회와 협력하고 의회간 협의채널을 구축하거나 연방법원에 제소하는 전략, 미국 내 소비자단체와의 협력, 또 한국이 미 함정 선박 수리를 해주는 등의 레버리지를 활용한다면 우리에게 기회가 될 수도 있다”고 덧붙였다.
최 교수는 트럼프 대통령의 독특한 성향을 파악해 공략할 필요가 있다고 제시했다. 그는 “트럼프 대통령은 자신이 외국으로부터 뭔가를 받아냈다는 걸 SNS에 올리는 걸 좋아하는 것 같다”며 “예를 들어 우리가 어떤 품목에 대해 수입을 두배 늘리겠다 등을 약속해주는 게 필요할 것 같다. 방위비 협상의 경우에도 당장 방위비를 올려주는 것보다 미국의 최첨단 무기를 10년 내에 구입하겠다는 식의 계획을 제시해주면 우리도 실리를 챙기고 요구도 들어주는 결과의 협상 전략이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최 교수는 “향기가 나지 않는 멋진 꽃다발을 준비하자”며 한국은 실속을 챙기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그는 향후 예상되는 관세 인상, 방위비 분담금 대폭인상, 한미FTA재협상, 북미협상에서의 한국배제 등에서 ▲대미투자를 확대하고, ▲조선산업 협력 ▲한미 원자력 협정 개정 ▲미사일 협정 개정 ▲미국 내 이해관계자와의 협력 등 대응전략을 준비해 경제와 안보를 연계하는 장기적 비전을 제시, 미국의 날카로운 예봉을 피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트럼프2기 행정부의 보편관세에 맞서 기업의 대응차원에서 발제를 이어간 김성중 변호사(무역구제학회 부회장)은 “우리의 대응에서 가장 중요한 포인트 중 하나는 조용하고 의연한 대응”이라고 설명했다. 문제를 일으켜 상대방에게 심각한 문제로 인식하게 만든 다음 협상을 끌어내 원하는 것을 얻어내는 기술이 트럼프 대통령의 협상전략이라는 게 김 변호사의 분석이다.
김 변호사는 “미국이 보편 관세를 도입하고 여러 보호무역 조치를 하는 것이 우리 경제에 상당한 타격을 주고 어려움을 야기할 것은 분명하지만 그 위기를 과장하거나 과잉 대응을 하는 것 자체가 그 페이스에 말리는 것이라 조용하고 의연하게 대응하는 것이 정말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김 변호사는 미국의 보편관세 조치에 대한 우리의 보복관세는 자해적 성격으로 맞대응하기 어렵고 막대한 무역적자는 트럼프행정부 입장에서 심각한 문제이기 때문에 대통령의 국가경제비상권한법(IEEPA)에 의한 조치에 대해 미국 국내법상 법원제소를 통해 해결하기도 불가능에 가깝다고 지적했다.
그는 “보편 관세의 경우에도 먼저 때린 뒤 한 국가씩 만나자 해서 이야기 하고 대외 협상을 하게 될 가능성이 높다. 어떤 품목에 얼마만큼의 세율이 매겨질 것인가는 기업들 입장에서는 제일 궁금하고 문의도 많이 들어오지만 이 부분은 여전히 오리무중”이라며 “트럼프 대통령의 예측불가능성이 예측 가능한 유일한 부분”이라고 했다.
김 변호사는 그러면서 “보편 관세 부분에서 한국의 특정 품목에 대해 제외할 수 있는 설득 논리를 정부와 국회가 만들거나 루트를 뚫어주시면 기업들이 그 루트를 활용해 관세부과 제외가 필요하다는 설득을 진행하는 방식의 대응이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그는 또 미국의 관세부과 이슈로만 국한하지 말고 우리 무역구조의 벨류체인 차원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한 중국을 미국이 단절하겠다는 것이 큰 그림이니만큼 중국 의존도가 높은 기업들을 위해 길을 열고 방향을 전환해주는 것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한편, 이날 토론에는 이주형 서울시립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가 좌장을 맡고 안흥상 산업통상자원부 미주통상과장, 문종철 산업연구원 연구위원, 김영귀 대외경제정책연구원 선임연구위원, 박성주 대한상공회의소 통상조사팀장, 조성대 한국무역협회 통상연구실장, 양은영 대한무역투자진흥공사 지역통상조사실장이 참여했다.